영화 [반지의 제왕, 2001-2003]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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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라드리엘, 반지의 제왕 l, [반지원정대] 중.
프로도의 반지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대변합니다.
쉬운 인생은 없다고들 합니다. 우리의 삶은 때로 너무나 힘겹고 어려운 싸움입니다. 마치 프로도와 샘의 여정 처럼요. 심지어 프로도는 그 길을 원해서 선택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스스로 자원하여 나서기는 했지만, 그 자원하는 마음이 꼭 온전히 무엇을 얻기 위해서나 어떻게 될 것을 예상하고 선뜻 원한 것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무엇인가의 이끌림에 의해서 선택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 반지와 프로도와의 연결점은 단지 그 반지를 자신의 친척 아저씨가 남기고 갔다는 사실 외에는 없습니다. 그가 반드시 그것을 운반해야 할 필요는 솔직히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프로도는 그 일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프로도는 그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프로도는 그 일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임을 인식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프로도의 하인이자 파트너인 샘 감지 역시 마찬가지의 처지입니다. 그가 주인인 프로도를 따르겠다고 스스로 자원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 역시 자신의 이익이나 앞뒤를 고려해서 결정했다기 보다는 자신을 꼭 필요로 하는 상황이라는 느낌에 충실히 따른 것입니다. 아무도 샘이 프로도를 따라가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고, 안그래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 상황이었습니다만, 이 역시 이끌림에 의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둘은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생사고락을 함께 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대신 겪어줄 수 없는 고난의 길을 함께 겪습니다. 동기는 달랐을지언정 샘 역시 자신의 소명을 인식합니다. 그리고 받아들입니다.
영화 속에서 프로도는 몇번이나 그 임무를 포기하고 싶어하며 낙오 직전, 또 실패 직전까지 가게 됩니다. 하지만 중간 휴식 지점에서 만난 갈라드리엘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이 임무는 오직 프로도에게 맡기워졌으며, 그가 그 일을 할 수 없다면 아무도 그 일을 대신 할 수 없다고. 이 말은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를 정확히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은 아무도 대신 짊어지고 갈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의 삶은 우리 자신만이 감당해야 합니다. 아무도 우리를 대신 살아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 숨쉬고 의식하는 이 세상은 백만분의 일초도 남이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삶은 그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 삶은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계획에 맞추어 창조 이전에 이미 계획되어 오직 우리 자신에게 딱 맞추어 베풀어주신 삶입니다. 그 분은 그분의 섭리를 위하여, 또한 그 안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실수도 없이 포함되어 있는 우리 자신을 위해 그 삶들을 계획하셨습니다.
소명은 어떤 거창한 꿈을 이루고 굉장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 어느 순간 하나님의 택하심을 온전히 깨달은 순간 나에게 펼쳐져 있는 그 상황 자체가 바로 소명의 한 가운데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인식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소명의식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그가 주어진 삶을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가를 결정할 것입니다. 그 일은 스스로 원한 일일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면 좋겠지만 혹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일일수도 있습니다. 소명은 자신이 만들어내거나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친히 소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조력자를 보내실 수도 있고 의지를 주실 수도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그 소명을 반드시 이루게 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감당해 가는 소명 - 삶 가운데 닥치는 어려운 시련은 그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분명히 성장하게 합니다.
지금부터는 스포일러입니다.(영화나 소설을 보지 않으신 분은 되돌아...)
이 영화는 톨킨의 크리스챤 마인드에서 나온 동명 장편 소설을 영화화 한 것인데요, 편당 세 시간이 넘는 영화 세 편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에서도 미처 다루지 못한 부분이 소설에는 남아 있습니다.
프로도 일행이 모든 임무를 마치고 - 반지를 파괴하고 - 고향으로 돌아가니 고향은 앞서 패배하여 사라진 줄만 알았던 사루만 일당에 의해 점령당한 채 지내고 있었습니다. 호빗 마을은 너무나 구석진 곳에 있어서 사우론이 몰락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며, 사루만은 실제 마법의 힘은 없으나 겁을 주며 마을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루만과 인간 들 몇명은 그런식으로 순박한 호빗 마을 전체를 호령하며 주인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마을에 이제 산전수전을 다 겪은 프로도 일행이 도착합니다. 아마 전 같았으면 그들도 마을 사람들처럼 상황에 굴복한 채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프로도와 친구들은 결코 예전의 그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아주 조직적으로 작전을 짜서 결국 사루만을 몰아냅니다. 그저 평화로운 삶 가운데서 강함과는 거리가 있었던 호빗들이, 엄청난 시련과 고통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 비로소 성장하고 힘을 얻은 것입니다. 저는 [반지의 제왕] 전체의 핵심은 바로 이 부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주께서 주신 소명을 기꺼이 감당한 자의 성장과 성숙"입니다. 주어진 소명을 감당한 이들의 전과 후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장과 성숙은 자신의 마을에 유익을 끼쳐 악을 몰아내고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시련은 분명히 우리를 성장케 합니다. 우리는 시련을 통해서 연단되며 강해지고 성숙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만큼 우리가 도달하기 원하시는 수준 또한 높을 것입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우리가 우리의 삶을 그 연단의 장으로 얼만큼 인식하며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힘든 훈련을 잘 받은 자는 더욱 성숙할 것이요, 하나님의 원하시는 수준에 가까이 갈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듯이 주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만큼 자라시길 원하십니다. 훈련을 거부하고 불순종한다면 그만큼 도달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주님은 우리보다 강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반드시 그분이 원하시는 수준까지 끌어올리실 것입니다. 그리고 결코 포기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포기하게 만들만한 능력이 있는 존재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당신은 주어진 소명의 삶에 순종하여 더 빨리 하나님의 계획만큼 성장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불순종하여 더 오랜 시련과 고통 후에 나아가겠습니까? 어쨌거나 결과는 같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의 선택은 우리 자신이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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