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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Feb 06. 2024

배움은 자의식을 해체할 때 일어난다

-류시화 '오늘은 뭘 배웠지?'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오늘은 뭘 배웠지? 

-류시화 작가  

        

 북인도 바라나시의 한 여인숙에서 묵고 있을 때였다. 낮에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돌아오면 늙은 여인숙 주인이 내게 묻곤 했다.

 “오늘은 뭘 배웠소?”

 그는 여행을 하러 온 내게 “오늘은 뭘 구경했소?”라고 묻지 않고 항상 그렇게 물었다. 그 질문이 이상하기도 했지만, 못 들은 척할 수도 없어서 나는 아무렇게나 둘러대곤 했다.

 “오늘은 인도가 무척 지저분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는 내 대답에 무척 신기해하며, 심부름하는 아이까지 불러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손님이 오늘, 인도가 무척 지저분하다는 걸 배웠다는구나.”

 그러면 아이도 덩달아 “그래요? 그런 걸 배웠대요?” 하면서 맞장구를 치는 것이었다.

 다음날 주인은 또 물었다.

 “오늘은 뭘 배웠소?”

 나는 또 아무거나 둘러댔다.

 “오늘은 인도에 거지가 무척 많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는 “그래요? 그런 걸 배웠어요?” 하면서 또 심부름하는 아이를 불러 자랑하듯이 설명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아이와 짜고서 나를 놀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복수를 하기로 작정하고 다음날 똑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오늘은 인도에 쓸데없는 걸 묻는 사람이 참 많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러자 여인숙 주인은 정색을 하며 물었다.

 “누가 어떤 쓸데없는 걸 묻던가요?”

 나는 그가 내 말뜻을 못 알아듣는 건지, 아니면 알아듣고서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몰라서 이렇게 말했다. 

 “그냥 희한한 사람이 있습디다. 안녕히 주무시오,”

 그런데 그다음 날도 어김없이 여인숙 주인은 똑같은 걸 묻는 것이었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내방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주인은 심부름을 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저 손님이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는구나.”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괴상한 여인숙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당장 다른 곳으로 옮길까도 생각했지만, 곧 떠나야 했기 때문에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바라나시에 있는 동안, 나는 매일 저녁 그 이상한 여인숙 주인에게서 그 질문을 들어야만 했다.

 “그래, 오늘은 뭘 배웠소?”

 그러다 보니 차츰 나도 세뇌가 되었다. 그래서 일주일쯤 지났을 때는 여인숙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도 모르게 스스로 자신에게 묻게 되었다.

 “오늘은 내가 뭘 배웠지?”

 그것은 바라나시를 떠나 인도의 다른 도시들로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딜 가든지 저녁에 숙소로 돌아올 때면 그것을 나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알고 보니 그 여인숙 주인은 좋은 스승이었다.




배움은 자의식을 해체할 때 일어난다


 흙수저로 자수성가한 것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역행자>의 저자, 자청의 책과 영상 강연을 보면서 중요한 것을 깨닫고 배웠다. 바로 배움은 자의식을 해체할 때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자청이라는 사람이 유튜브에서 인플루언서라는 것을 알고 자주 마주치면서도 굳이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않으려고 했다.) 자청을 비롯해서 신사임당, 캘리최, 김미경 강사 등 소위 자기 계발 분야의 유명 강사, 크리에이터라는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뭐든지 돈! 돈! 하는 품세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돈이 되는 글쓰기부터 시작해서 자신을 소개할 때도 과거에 가난했는데 책을 읽고 시도하면서 지금 연 매출 얼마를 달성하고 경제적 자유를 성취했다는 스토리 전개도 자극적이긴 하지만 그곳에서 기웃거린다는 게 자존심 상하는 기분이어서 관심없는 척 했던 것 같다. 게다가 사실 나는 돈도 없다.


 심지어 자청이나 신사임당, 캘리최 등 언급한 성공한 부자들을 디스 하는 내용으로 하나의 채널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거나 얼굴은 나오지 않게 편집한 상태로 그들이 거짓말을 했다거나 사기라는 등의 내용을 전파하고 있었고, 놀랍게도 "안 그래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속 시원하다", "더 파헤쳐달라", "파이팅!" 과 같은 댓글이 수 천 개가 달려 있었다. 팩트란 것을 온전히 알수는 없지만,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타자를 저격하는 모습에서 이미 불편한 정서가 느껴졌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가 아무 이유 없이 그들을 탐탁지 않아 했던 마음의 실체가 얼굴을 가리고 험담을 하는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유 없이 싫은 누군가는 바로 나의 그림자'라는 심리학 이론이 생각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저렇지 않은데 어떤 면이 나와 같다는 것일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그림자의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알아차리고 깨닫기가 어려운 것이다.


 나는 내가 왠지 불편하게 여겼던 돈! 돈! 하는 사람들의 책과 영상을 찾아보고 들었다. 불편한 점들은 여전히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책을 읽든, 어떤 영상을 보든 배울 점이 꼭 한 가지는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찬양하는 작가들을 통한 배움보다 어쩌면 더 임팩트 있고 강렬한 배움이 일어났다. 왠지 불편했던 그들은 내가 찬양했던 사람들보다 어쩌면 나에게 더 필요하고 좋은 스승이었다.


 자청님은 자신이 은둔형 외톨이로 집안에서만 지낼 때 악플을 달며 잘 나가는 사람들을 비난하면서 어느 날 문득, 그런 자의식을 해체하지 못하면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그런 깨달음 속에서 '배움은 자의식을 해체할 때 일어난다'는 사실을 배운다. 그 고백과 배움에 감동 받으면서 나 또한 자의식이 해체되고 배움이 일어났다. 단단한 아집의 에고를 깨부수자 신사임당, 캘리최, 김미경 선생님께도 내가 인생에서 놓치고 있었던 너무나 중요한 에센스들을 배울 수 있었다.


 배우는 능력이 없는 사람은 부처님 앞에서도 배우지 못하고, 배우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세 살 아이에게서도 배운다. 어둡고 부정적인 열등감, 내 안의 그림자가 회개하고 동의하고 감사가 살아나면 모든 것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 배움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오래전에 읽고 너무 좋았던 류시화 님의 글, <오늘은 뭘 배웠지?>가 떠 올랐고, 찾아서 베껴 적어 보았다.  

 간디학교 교가인 <꿈꾸지 않으면>도 배움의 배경음악으로 떠 올랐다. 

 자의식을 해체하고 배우려는 열린 마음에 부록으로 주어진 선물이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하네 


아름다운 꿈꾸며 사랑하는 우리 

아무도 가지 않는 길 가는 우리들 

누구도 꿈꾸지 못한 우리들의 세상 만들어가네 


배운다는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우린 알고 있네 우린 알고 있네 

배운다는 건 가르친다는 

희망을 노래하는 것



꿈꾸지 않으면 | 간디학교 교가

https://www.youtube.com/watch?v=J9Ij8dzJ_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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