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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Apr 13. 2024

인간의 시기심

-신데렐라와 그 자매들


나는 처음부터 모든 것이 완전한 상태로 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조각난 나의 각 부분을 소중하게 돌볼 뿐입니다.



<신데렐라와 그 자매들 -인간의 시기심> | 앤 . 베리 율라노프 공저 | 이재훈 옮김 | 한국심리치료연구소



<신데렐라와 그 자매들>은 인간의 시기심에 대한 깊은 통찰을 주는 책으로, 시기심의 심리학적 통찰과 신학적 성찰을 제시하고 있다. 오래전 집단 상담을 받을 때, 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공부했던 텍스트로 제목에서 암시한 바와 같이 하나의 동화로 알려진 신데렐라 이야기 안에 담긴 깊은 인생의 진리를 탐독할 수 있었고, 그 이후 세상을 살아가면서 시기심의 불이 난 현장을 목도하거나 나 자신이 시기에 사로잡혔을 때, 다시금 읽어보면서 회개하고 동의하고 감사를 회복함으로써 시기심을 극복하는 치료제로 사용하고 있다. 저자들은 인간의 감정 중에 특별히 시기심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시기심이야말로 한 사람의 마음을 깊은 데서부터 파괴하고 내면세계를 황폐하게 하는 주된 원인이라는 주장을 놀랍도록 섬세하고 확고하게 전개해 나간다. 가정이 파괴되고, 공동체가 깨어지고, 고부 갈등이 일어나고, 개인이 황폐해지는,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지옥의 한 가운데 시기심이 있다. 질투와 시기는 좀 다르다. 질투는 상대방이 가진 재능을 부러워하면서 나도 그렇게 되고자 열의와 노력을 일으키는 감정이라면, 시기는 나는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자기 비하와 박탈감이 타자에게 전이되면서 분노를 촉발한다. 시기를 알아차려야 하는 이유는 시기를 극복하고 치유하지 않으면, 시기하는 사람과 시기받는 사람, 모든 선함을 파괴시키기 때문이다. 시기는 우리 자신이 되고자 하는 우리의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기의 반대는 선함이다. 사랑이다.



우리는 선 그 자체보다도 이상적인 선, 완벽한 선, 모든 것을 치유하는 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선한 선이라는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선을 선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시기하는 사람은 시기받는 사람의 관점을 깨달아 알기 시작하며, 시기받는 사람을 통해서 선함 자체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자체에게 가해진 공격에 대해 느끼는 슬퍼하는 선함(sorrowing goodness)이요, 악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비참한 현실에 참여하는 고통받는 선함(suffering goodness)이며, 모든 공포와 두려움과 시기심을 견디어내고 살아남을 수 있는 충분히 좋은 선함(good-enough goodness)이다. (191쪽)


이상적이고 완성된 선함보다는 비록 단지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 번에 조금씩 주어지는 충분히 좋은 선함이 더욱 중요하다. 선함은 위대한 순간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사건에서도 나타난다. 우리가 병들었을 때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사람의 친절, 도움이 되기 위해 애쓰는 어린아이의 열심, 우리가 화 나있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이 보여주는 뜻밖의 정중함, 누군가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한 교회에서의 특별헌금, 아우슈비츠의 가스실로 가는 유대인을 구하려고 자신이 대신 그 죽음의 행렬에 끼는 수녀,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구조 헬리콥터에 계속해서 다른 사람을 먼저 올려 보내다가 자신은 마침내 차가운 물속으로 가라앉는 노인 등, 선함은 늘 우리의 주변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196-197쪽)


타자에 대한 의심과 비관주의의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우리는 모두 자신에 대한 확신이 충분치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낮은 자존감을 느끼게 하는 어떤 작은 것에도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잘못된 것이기를 바라는 강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자신을 보잘것없는 존재로 느끼는 자기 비하감을 타자에게 매우 쉽게 전가한다. (......) 우리는 점점 더 극도로 선함을 거부하고 오해하게 되는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우리는 선함을 점점 더 멀리 밀어낸다. 우리는 선함이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으며, 맞지 않는다고 느낀다. 우리의 거부와 몰이해에도 불구하고, 선함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좋은 것들을 풍성하게 제공함으로써, 영원한 잔치가 벌어지는 천국에서처럼 모두의 필요를 채우고도 남는다. 우리가 만약 가장 작은 선함의 씨앗이라도 갖고 있다면, 우리는 비록 악과 고통과 죽음 한가운데서도 그 만찬에 참여할 수 있다. 우리가 나쁜 생각, 고통스러운 실패, 질병, 그리고 상실 등의 위협적인 진공 속으로 빠져드는 대신에 선함의 부스러기를 맛보겠노라고 선택할 때, 우리는 풍성한 선함에 참여하게 된다. (222-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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