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틱> 18화. 베르톨트 브레히트 -자두나무
어느 날 K 씨가 그의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얼마 전부터 나는 건너편에 사는 한 남자와 교제하고 있다네. 그런데 이제 그와 교제할 마음이 사라졌지 뭔가. 하지만 내겐 교제할 이유만 없는 것이 아리나 헤어질 이유도 없다네. 그런데 그가 세 들어 살고 있던 작은 집을 최근에 구입했는데, 그의 창문 앞에 서 있으면서 빛을 차단했던 자두나무를 그가 당장 베어 버리게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네. 자두가 아직 반밖에 익지 않았는데 말일세. 이 사건을 , 적어도 외적으로 또는 내적으로, 그와의 교제를 그만 둘 이유로 삼아야 하겠나?"
며칠 후 K 씨는 그의 친구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제 그 녀석하고의 교제를 끊어 버렸다네. 생각해 보게. 그는 벌써 수개월 전부터 그에게서 빛을 앗아가는 나무를 베어줄 것을 당시의 집주인에게 요구했었네. 하지만 집주인은 그렇게 하고자 하지 않았네. 나중에 그 열매들을 갖고자 했기 때문이지. 그런데 내가 아는 자에게 집이 넘어간 지금 그는 정말 나무를 베어버리게 했네. 아직 익지 않은 열매들이 잔뜩 달려있는데 말일세! 난 그의 일관되지 않은 행동 때문에 그와의 교제를 끊어 버렸다네.
성숙
베르톨트 브레히트: 자두나무
이 이야기는 헤르메틱적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 해석학적으로 그것은 모순과 패러독스일 뿐이다. 헤르메틱적으로 그것은 사태의 일관성이 존재한다는 것으로부터 설명된다. 사람은 사물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열매를 산출하고 있는 자두나무는 사람들이 그 열매를 전혀 원하지 않을지라도 베어 넘어뜨려서는 안 된다. 성숙, 그것이 나무의 일관성이다.
"녀석"의 비일관성은 그가 사태의 일관성에 어긋난다는 데에 있다. 사태들과 시물들의 일관성은 인간의 일관성에 선행한다. 그렇데 여기지 않는 자는 세계에 폭행을 가하는 것이다.
K 씨는, 그에게 모든 외적인 이유보다 자신의 내적인 소리가 더 중요한, 헤르메스적 인간이다. 그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끊는 것은 본래 그에게 그럴 이유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럴 이유를 그는, 내적인 소리가 (또는 강한 반감이) 그에게 그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에, 찾는다. 내적인 소리를 따르는 자는 스스로, 자신의 열매들을 성숙시키는 자두나무처럼 행동한다. K 씨의 본래 이웃은 나무이지 그 "녀석"이 아닌 것이다.
이 연재 브런치북 <헤르메틱>은 헤르메틱에 대한 필사로 이어가면서 헤르메틱에 대한 묵상을 하고 있다.
헤르메스는 정신분석을 받으면서 꾼 수많은 꿈들 중 유일하게 보인 신의 이름이다.
오랫동안 헤르메스라는 키워드로 찾아 헤매면서 헤르메틱이라는 정신적 지향, 작가적 고향에 도달했다.
헤르메틱은 어둠 속에서의 비상이다. 헤르메스적 근본 경험은 붕괴와 근원적 도약, 발견, 건너감이다.
자신의 고유한 본질을 찾아내고, 끝까지 살아남으며, 스스로 힘을 갖는 존재 방식이다.
헤르메틱에 대해서 가장 잘 정리되어 있는 책이라고 생각되는 H. 롬바흐의 저서 <아폴론적 세계와 헤르메스적 세계 -현실에 관한 사유의 전환: 철학적 헤르메틱>의 내용을 필사. 요약하는 것으로 '존재의 헤르메틱', '예술 작품의 헤르메틱'에 대해 소개하고 정리해 나가려고 한다.
이 정리본이 차후에 어떤 형상으로 드러나든 그 뼈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