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틱> 20화.
지금까지의 헤르메틱에 관한 필사는 롬바흐의 <아폴론적 세계와 헤르메스적 세계>로 이어갔다면, 환상문학의 대가 이탈로 칼비노의 헤르메스 관련한 좋은 텍스트를 찾았다. 롬바흐는 아폴론과 대비시켜 헤르메스의 우월성을 강조했다면, 이탈로 칼비노는 사투르누스와의 대비로 헤르메스를 설명한다. 이 내용은 이탈로 칼비노의 유작이 된 <이탈로 칼비노의 문학강의>에서 발췌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연관성을 바탕으로 한 이 강의가 여러 방향으로 뻗어 나가 이리저리 흩어져버릴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 저녁 내가 다룬 모든 주제는, 어쩌면 지난번 강의의 주제들까지, 내가 특별히 숭배하는 올림포스 신의 상징 아래 있기 때문에 통합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신은 의사소통가 중재의 신인 *헤르메스-메르쿠리우스로, 문자를 발명한 신 토트와 동일시된다.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가 로마 신화에서는 메르쿠리우스이고, 토트는 고대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신이다.) 또 카를 융의 연급술적 상징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메르쿠리우스 정신"으로 개성화의 원리를 나타내기도 한다.
발에 날개가 달려 있고 공기처럼 가볍고 영리하고 민첩하고 융통성 있으며 자유분방한 메르쿠리우스는 신들, 신과 인간, 우주적인 법칙과 개별 사례들, 자연적인 힘과 문화적인 형식, 세상의 모든 물체들, 생각하는 모든 주체들의 관계를 설정한다. 나의 문학적 제안을 위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지원군은 누구일까?
심리와 점성술이, 기질, 성질, 행성, 별자리들이 상응하여 소우주와 대우주가 서로를 반영하던 고대에 메르쿠리우스의 위치는 가장 불안정하고 변화무쌍하다. 하지만 널리 퍼진 일반적인 생각에 따르면, 교역과 상업에 능하고 기민한 메르쿠리우스에게 영향을 받은 기질과 우울하고 사색적이며 고독한 사투르누스에게 영향을 받은 기질은 서로 반대이다. 고대부터 예술가, 시인, 사상가는 사투르누스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로 생각되어 왔다. 내가 보기에 실제로 그러한 특징을 띠는 것 같다. 물론 인간 대부분이 내향적인 성향이 강하며, 세상에 대한 불만을 지니기도 하고, 소리 없는 부동의 언어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시간과 나날을 잊는 성향이 없었다면 문학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내 성격도 내가 속한 범주의 전통적인 성격과 일치한다. 나 역시 언제나 사투르누스적인 인간이었다. 다른 가면을 써보려 애썼지만 그저 하나의 열망, 그렇게 되고 싶다는 바람일 뿐인지도 모른다. 나는 메르쿠리우스적 인간이 되고 싶은 사투르누스적 인간이다. 그래서 내가 쓴 모든 글에서는 이 두 가지 자극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융학파의 집단적 상상력을 연구하는 저자에 따르면 메르쿠리우스와 불카누스는 떼려야 뗄 수 없고 상호보완적인 삶의 두 가지 기능을 나타낸다. 메르쿠리우스는 조화, 다시 말해 우리 주위 세상에 대한 참여를, 불카누스는 집중, 다시 말해 건설적인 집중을 나타낸다. 메르쿠리우스와 불카누스 둘 다 유피테르의 자식이다. 유피테르의 왕국은 개인화되고 사회화된 의식의 왕국이다. 그런데 메르쿠리우스의 어머니는 우라노스의 혈통이다. 우라노스의 왕국은 확일적인 연속성을 지닌 "순환하는" 시간의 왕국이다. 한편 불카누스는 사투르누스의 혈통인데 사투르누스의 왕국은 자기중심적인 고립을 의미하는 "정신분열적" 시간의 왕국이다. 사투르누스는 우라노스를 내몰았고 유피테르는 사투르누스를 내몰았다. 마침내 균형 잡힌 눈부신 유피테르의 왕국에서 메르쿠리우스와 불카누스는 각각 어두웠던 원시 왕국의 기억을 간직한 채, 파괴적인 질병을 조화와 집중이라는 긍정적인 두 개의 특질로 변화시킨다.
대립적이면서도 상호보완적인 메르쿠리우스와 불카누스에 대한 이런 설명을 읽고 난 뒤로 나는 비로소 막연하게만 느껴 왔던 무엇인가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에 대한,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어떤 글을 쓰고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을지에 대한 무엇인가를, 불카누스의 집중력과 장인다운 솜씨는 메르쿠리우스의 모험과 변신을 글로 쓸 때의 필요조건이다. 메르쿠리우스의 이동성과 신속성은 불카누스의 끝없는 노동의 의미를 전달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다.
작가가 글을 쓸 때는 다양한 시간들을 고려해야 한다. 메르쿠리우스의 시간과 불카누스의 시간, 끈기 있고 세심한 조절을 통해 즉각 얻어지는 메시지, 형성되자마자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게 결정적인 형태를 위하는 순간적인 직관, 아무 목적 없이 흘러가서 감정과 생각들이 제자리를 잡고 성숙해지며 성급함과 일시적인 모든 우연성과 거리를 두게 내버려 두는 시간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면서 이 강의를 마치려고 한다. 중국에서 전해지는 고사이다.
여러 가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장자는 그림 실력도 탁월했다. 왕은 그에게 게 그림을 그리라고 명했다. 장자는 5년의 시간과 열두 명의 하인이 딸린 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5년이 지났지만 그림은 시작도 되지 않았다. "5년이 더 필요합니다." 장자가 말했다. 왕은 5년의 기한을 더 주었다. 10년이 다 되어 갈 무렵 장자가 붓을 잡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단 한 번의 동작으로 게를 그렸다.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게 그림이었다.
이탈로 칼비노의 문학강의 : 새로운 문학의 길을 찾는 이들에게
2강. 신속성 (150 - 155쪽) 발췌. 편집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에디토리얼
이 연재 브런치북 <헤르메틱>은 헤르메틱에 대한 필사로 이어가면서 헤르메틱에 대한 묵상을 하고 있다.
헤르메스는 정신분석을 받으면서 꾼 수많은 꿈들 중 유일하게 보인 신의 이름이다.
오랫동안 헤르메스라는 키워드로 찾아 헤매면서 헤르메틱이라는 정신적 지향, 작가적 고향에 도달했다.
헤르메틱은 어둠 속에서의 비상이다. 헤르메스적 근본 경험은 붕괴와 근원적 도약, 발견, 건너감이다.
자신의 고유한 본질을 찾아내고, 끝까지 살아남으며, 스스로 힘을 갖는 존재 방식이다.
헤르메틱 관련한 텍스트를 엄선하여 내용을 필사. 요약하는 것으로 '존재의 헤르메틱', '예술 작품의 헤르메틱'에 대해 소개하고 정리해 나가려고 한다.
이 정리본이 차후에 어떤 형상으로 드러나든 그 뼈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