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틱> 최종화.
어떤 것을 발견했을 때,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것, 즉 그의 고유한 역동성에 있어서 발견되고 해방되기를 바라는 그 발견물에 완전히 몰입하면, 그 근원으로부터 광범위한 생활 세계적 귀결들로 인도하는 한 헤르메스적 운동이 전개된다. 이 몰입(자신을 들어가게 함)은 신뢰라 불릴 수 있다. 이때 신뢰라 함은 전 영역이 함께 간다는 조건 아래서만 자신의 본질을 충족시키려는 시도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 창조적인 발전은 신뢰의 문제이다. 신뢰는 존재의 신뢰성을 믿는다. 신뢰는 한 열린 장 속으로 자신을 기투함으로써 그 열린 장이 모든 것을 받쳐주는 것으로서 판명날 수밖에 없게 만들고, 그 열린 장으로 하여금 그 속에서 펼쳐질 힘들을 환대 하며 불러일으키게 한다. 신뢰는 자신, 즉 신뢰를 산출하는 것을 산출한다.
신뢰는 현실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지향한다. 그것도 준비되어 있는 가능성이 아니라 비로소 생겨나는 가능성, 즉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되는 바로 그 순간에 가능성으로서 생겨나는 그런 가능성을 지향한다. 신뢰는 무로부터 자신을 창조하는 현실의 자의식이다. 신뢰는, 현실이 자신을 넘어서는 곳까지 미치고 자신을 뒤쫓는 한, 현실의 존재방식이다. 신뢰와 사랑은 헤르메스적 현실 자체의 운동형식들이다.
헤르메스적 현실이 어디서 생기하더라도 그 존재는 존속에 근거를 두는 것이 아니라 힘과 행운과 성공에, 신뢰와 사랑에 근거를 둔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신을 믿고 현실을 믿으며,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자신을 자기 자신 너머로 내몬다. 꽃은 그 열매를 믿는다. 매는 바람을 믿고 그가 반한 바람과의 유희를 믿는다. 매가 한순간이라도 이를 의심하면 그는 흔들리게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이 흔들리게 된다. 모든 것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평형을 되찾기도 하지만 다시 떨어지게 되고 결국은 붕괴하고 만다. 존재는 단 하나의 신뢰운동이다. 그 속에서는 사물들이 자기 자신 너머로 자신을 연다. 각각의 사물이 자신을 연다. 풀은 빛에게 자신을 열고, 새는 바람에게, 고양이는 밤에게 자신을 연다. 사물이 자신을 전체에게로 내던지는 한, 사물은 살아 있다. 전체는 이러한 던짐에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아니 심지어는 아주 특정한 방식으로 따른다. 열린 장으로 던짐은 열린 장의 발견에 따르는데, 이 발견은 열린 장의 발명이다. 존재자는 존재 안에서 자신을 전개하는데, 존재자가 바로 그 존재를 가져온다. 아니 강탈해 온다. 그리하여 존재는 그 존재자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생기하는 모든 것은 상징이다.
생기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완전히 표현함으로써 여타의 것을 가리킨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모든 발견과 발명이 헤르메스적인 것인 한, 그리고 헤르메스적 곤란이 직접적인 것인 한, 존재는 본질적으로 고유하고 사물들은 상호 간에 직접성을 보여 준다. 그들의 예리한 윤곽, 그들의 분명한 입장과 저항은 여기서 유래한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와 더불어 주어진 자신의 헤르메틱으로 인해 각자는 타자로부터 담을 쌓게 되고, 존재는 무수한 존재자로 분할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서로에 대해 닫혀 있고 서로 저항하면서 사물들은 위기, 곤경에 빠진다. 이러한 위기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그들이 어떤 발견에 성공하는 데 있다. 모든 것이 우선은 서로에 대해 닫혀 있기 때문에 존재자는 헤르메틱에 의존한다. 위기에 빠지게 하는 일상적 헤르메틱이 위기 전향적인 진정한 헤르메틱의 조건인 것이다. 다시 말해 폐쇄성이 존재적인 출현의 조건인 것이다.
발견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창조적인 발전이 끝없이 하지만 제한적으로 펼쳐지는 한 세계가 개현 되는 길이 거기서 비약적으로 열리면, 출현이 생기한다. 이 출현은 출현과 존재 전체가 오직 바로 여기서, 각기 유일한 것에서 생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전체는 전체로서 생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각기 유일한 것 속에서만 생기한다. 이것이 존재 자체의 헤르메틱이다.
존재는 각자에게서 결정된다. 그것은 출현이고 신뢰이다.
우리가 개방성으로서 체험하는 것, 빛, 진리, 세계, 미래, 의미로서 체험하는 것은 이미 항상 거기에, 무엇보다도 먼저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별자의 행보를 통해 엮어 올려지고 전개된 것, 바로 그것일 뿐이다. 그것을 잡으면서, 아니 그것을 움켜쥐면서 우리는 존재한다. 존재에 대한 우리의 신뢰 앞에서 우리에 대한 존재의 신뢰가 생기고 존재의 의지가 우리 자신의 생기사건 속에서 펼쳐지게 된다. 우리가 우리의 세계를 해방시키는 만큼 우리의 세계는 우리를 해방시키고, 우리의 믿음이 미치는 만큼 우리의 힘이 미친다. 우리 안으로 흘러 들어오고 우리를 사로잡는 것, 즉 존재 속에서 우리는 살아 있고 존재하는 모든 것과 결합되어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세계가 소아를 의미로 가득 차게 한다. 아무리 작은 걸음들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이 올바른 정신으로 행해져 성공한다면, 존재의 직접적인 행위로써 삶을 영위할 불가해한 권리가 생긴다.
이 연재 브런치북 <헤르메틱>은 헤르메틱에 대한 필사로 이어가면서 헤르메틱에 대한 묵상을 한 것이다.
헤르메스는 정신분석을 받으면서 꾼 수많은 꿈들 중 유일하게 보인 신의 이름이다.
오랫동안 헤르메스라는 키워드로 찾아 헤매면서 헤르메틱이라는 정신적 지향, 작가적 고향에 도달했다.
헤르메틱은 어둠 속에서의 비상이다. 헤르메스적 근본 경험은 붕괴와 근원적 도약, 발견, 건너감이다.
자신의 고유한 본질을 찾아내고, 끝까지 살아남으며, 스스로 힘을 갖는 존재 방식이다.
헤르메틱에 대해서 가장 잘 정리되어 있는 책이라고 생각되는 H. 롬바흐의 저서 <아폴론적 세계와 헤르메스적 세계 -현실에 관한 사유의 전환: 철학적 헤르메틱>의 내용을 필사. 요약하는 것으로 '존재의 헤르메틱', '예술 작품의 헤르메틱'에 대해 소개하고 정리해 나가려고 한다.
이 정리본이 차후에 어떤 형상으로 드러나든 그 뼈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