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헐적 금주
004. 몸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살고 있는 남동생집에 다녀왔다. 나보다 먼저 결혼해서 딸 둘을 키우고 있는 남동생네에서 아이의 옷을, 책을, 장난감등을 물려온 터라, 답례 선물도 하나 줄겸, 아이도 놀릴 겸 괜찮다고 하는 일요일로 시간을 잡았다. 아이는 전날부터 '언니네 간다'고 신나하고 있었고 역시나 외삼촌집에 도착하자마자부터 집에서는 누릴 수 없는 '막내'의 장점들을 열심히 누렸다.
6세, 9세,11세에 모두 여자아이들이다보니 누가 굳이 뭘 봐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들노는 것이 동생집 방문의 최고 혜택! 아이들을 한 방에서 놀린 후, 어른들도 편안하게 술을 마시기 마련인데, 오늘은 일요일이라 아무래도 무리가 가는 것도 있고, 몸의 여러 곳에서 '오늘은 금주다'라는 말을 해주어서, 저녁이 되기 전에 모임은 적절히 종료되었다.
어렸을 적 잔병치레도 별로 없었고, 크게 예민하지도 않게 무던하게 생활하는 편이라 20대 때에는 야근도, 철야도 마다하지 않았었다. 지금이야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회사는 '졸리든 말든, 일이 끝나야 퇴근이 가능한 곳'이었고, 이틀간 철야를 한뒤 새벽에 편집실에서 존다고 상사 (라고 쓰고 감독님이라고 읽는다. 나는 조감독이었다. )에게 "정신차려"라는 말을 들을정도로 빡센 업무환경이었으니까- 업무는 과중했고 휴식은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그 와중에도 짜투리 시간을 쪼개서는 잠보다는 '노는 것'을 택했었으니 몸에 무리가 갈 수 밖에 없었던 구조-
20대 때 조용히 의지를 따라주던 몸은 30대가 되자마자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몸 이곳저곳이 골골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신호를 준 곳이 바로 허리- 퇴근없이 업무를 진행하면서 잠깐 짬을 내어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것이 제대로 무리가 간 듯, 조금 묵직하던 허벅지의 통증이 양 다리로, 발목으로 까지 내려왔었다. 재활의학과에 가서 주사를 맞기도 했고, 한의원에서 침을 맞았고, 요가를 하면서 간신히 일을 하고 있었는데, 잘 낫지 않다가 비교적 괜찮아진 건, 역시나 그 일을 그만둔 다음이었다.
개인적인 계기로 회사도, 집도 떠나고 싶었고, 서른이 넘어서 일을 쉬면 '백수'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 같아 일본에서 어학연수겸 1년 있으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 후, 남동생의 결혼식 참석을 계기로 다시 한국으로 복귀했다.
우여곡절끝에 직업이 바뀌고 다시 시작한 회사생활도 그전만큼은 아니지만 새벽야근은 존재했고, 다시 '의지'로 버티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경력입사이긴 했지만 이전 업무와는 다른 일이었고 6개월은 계약직이었기에 '노력'은 필수적이었다. (여기서부터는 홍보회사의 온라인팀) 제안서를 쓰고, PT까지 어떻게든 버티고 나면, 바로 그 다음날부터 눈의 염증이나 입술의 물집이 등장하면서 몸이 스스로 '자 이제 스트레스 관리 좀 하지 그래?'라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고, 이 신호는 40대가 되자 더욱 빈번해지고 세밀해졌다.
주위 분위기를 많이 보고, 예민하면서도 더 잘하려는 마음은 몸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들고 스트레스를 배가시켰지만 그 때에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잘 하는 것'만이 사회생활에서 살아남는 길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 않는 것'도 선택지에 있다는 사실을 거의 40대가 될 때까지 알지 못했고, 그 결과는 지금 몸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제는 되도록이면 몸의 '신호'를 들으려고 한다. 눈에 염증이 생길 것 같으면 술을 줄이고, 입술에 물집이 생기면 어떤 식으로든 잠을 늘린다. 걱정해도 해결되지 않는 일이라면 생각을 끊어낸다.
건강하고 온전하게 세상의 좋은 것들을 많이 누리고 싶고, 성인이 될 때까지 돌봐줘야할, 아직 성인이 되려면 아주 한참 남은 어린 자식이 있으니까-
20대에 몸을 혹사시킨 결과는 언젠가 나타난다.
열심히 일하면, 열심히 쉬어야 한다. 요즘 친구들은 잘 아는 것 같은데 나는 왜 그때는 몰랐을까?
아주 늦지 않게 알게 된 것이 어딘가! 오래오래 써야할 몸, 아끼면서 잘 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