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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별 Aug 28. 2018

워라밸

일상의 기록#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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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무리한 스케줄로 감기몸살에 걸려 오늘 하루 일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다. 계속되는 기침과 두통으로 더 이상 무리라고 판단되어서 업무를 조금 일찍 마치고 집에와서 쉴 수 밖에 없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을 했다는 건 스스로도 잘했다고 생각되지만, 나의 아픔은 오롯이 나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가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도대체 난 무엇을 위해서 일을 하는 걸까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요즘은 원하는 직장을 정하는 기준이 예전과는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많은 연봉이 가장 우선시되었다면, 최근 들어서는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워라밸족'이 증가하는 추세이고, 그 이전에는 'you only live once'이라는 이름으로 '욜로족'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렇듯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불확실한 미래보다 현재에 더 집중하는 모습들을 본다면 단순한 개인의 생각을 넘어서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런 사회적인 흐름은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것이나 원하는 것을 모두 포기하며 오로지 대학이라는 목적에 의해서 매년 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험을 치르고, 그 한번 시험의 결과로 등수를 결정하고, 배움이 필요해서가 아닌 필수가 되어버린 곳으로 가게 된다. 게다가 인생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20대 청춘을 국방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2년을 희생을 강요당하는 삶을 지나면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 파악도 하기 전에 취업시장으로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 한채 내몰린다.


스스로에 대한 적립이 부족한 채 취업을 하고 일을 시작하게 되면 가치관에 혼란이 오기 시작한다. 과연 내가 좋아해서 하는 일인지, 혹은 앞으로 전망이 좋을지, 무엇 때문에 일하고 왜 돈을 버는지 등등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들의 답을 해야 했다. 어렸을 때 경제적인 능력이 곧 성공이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개인의 의미와 가치관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다보니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예전보다 더 필요하게 되었고, 나 역시 스스로 질문하는 답에 쉽게 답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게 대학을 가지 않고, 바로 군대를 가게 되어 22살에 전역을 하고 일반적이거나 보편적으로 생각되는 시기보다 빠르게 취업을 해서 일을 하게 되었다. 처음 입사를 했을 당시에는 무조건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귀찮은 업무를 도맡아 시킨 팀장은 앞에서는 나를 위하는 척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이용한 것뿐이었고, 성과 또한 몰래 빼앗아가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것들은 다 내려둔 채 일에 집중하니 주변으로부터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돌아가는 흐름을 알고, 일에 대한 숙련도가 높아질 즈음 슬럼프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어야 해서 일을 하게 되는 기분이 들었고, 무엇을 위해서 돈을 버는지 알 수 없었다. 가족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인지, 나를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고, 스스로에 대한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으니,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퇴근 후의 삶에 무던히도 노력하고 집착했던 것 같다. 월수금은 퇴근하고 영어학원을 다니고, 화목토는 배드민턴 레슨을 다니면서 주말에는 인문학 강연을 듣기도 하고, 조기축구를 나가기도 했다.


퇴근 후의 삶에 집중하다 보니, 일에도 지장을 주게 되었다. 쉬는 날 없이 무언가를 배우고, 돌아다니다 보니 일을 해야 하는 평일에 항상 피곤하고, 일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신경 써야 하는 관계가 3~4배 늘었고, 시간이 정말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계획하고 생각한 일정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저 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움직이는 것에 불과했다. 능동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굉장히 수동적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그만두었다. 지금은 평일에 피아노를 배우는 정도로 줄이고, 인문학 강연을 들으러 가거나, 주말에 축구를 하러 가지는 않는다. 그냥 소소하게 가끔 카페에 가서 책을 보고 글을 쓰곤 한다. 스스로를 바쁘게 몰아붙이고 살아가는 것보다 지금처럼 마음의 부담을 최대한 내려둔 채 지내고 보니, 스스로가 질문했던 것에 대해서 조금은 답을 알 것 같다. 그렇다고 삶을 대하는 본질에 대해서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어본다면 예전보다는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균형을 맞춘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어느 하나 모자라거나 넘쳐서도 안된다. 일에서 주는 만족감도 분명 중요하고, 스스로에게 투자할 수 있는 시간도 소중하다. 다만 분명한 건 더 좋은 건 없다는 것 아닐까. 일과 삶의 균형을 잘 맞추기 위해서는 분명 그만큼의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그 시행착오 속에서 스스로가 선택한 것들이 항상 최선이고 최고일 순 없다. 그러나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이었을 테니 더 좋은 상황이나,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후회하거나 실망할 필요 전혀 없다. 그러니 멈추지 말고 끊임없이 움직이자.



"인생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균형을 잡으려면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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