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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별 Nov 15. 2019

스스로를 의심하게 될 때

일상의 기록#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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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밤이면 밤마다 뜬 눈으로 새벽을 맞이한다. 최근 몇 달 동안을 매일같이 술을 마셔댔으니 밤과 낮이 바뀐 것과 더불어 생각하는 방식이나 사고의 흐름까지 영향을 주었고 그렇게 주저앉아서 시간만 보냈다. 겁이 나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과 하고 싶은 것들의 충돌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부정적인 상황과 좋지 못한 몸상태가 합쳐지니 스스로를 더 아끼지 못하고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느끼거나 나의 무기력함과 무능력에 나조차 실망하기를 반복하는 악순환의 연속을 경험하고 있다.


스스로를 더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생각하는 것조차 멈추었고 그럴 때 필요하고 의지했던 것이 술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감흥이 없고, 좋은 영화를 보더라도 느끼는 것이 없을 정도로 감각은 무뎌졌고 주변에 누군가 좋은 일이 생겨도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없었다. 마음이 무너지다 보니 누군가를 축하해줄 정도의 여유조차 없었고 그런 모습조차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새벽마다 나를 갉아먹는 생각에 괴로워하던 어느 날 이렇게 잠이 안 와서 휴대폰만 보고 있는 것보다 차라리 새벽 일찍 산에 올라 일출을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바로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새벽이라 정말 위험하고 다녀오면 너무 피곤해서 하루를 망칠 것 같은 생각에 그냥 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에 왜인지 모르게 무작정 나와서 차에 시동을 걸었고 휴대폰으로 코스를 찾아보며 일단 출발했다.


처음에는 집에서 가장 가깝고 정상이랑 가장 가까운 코스로 갔다. 새벽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두웠고 주변에 공사 중인 건물들과 절이 왠지 모르게 너무 무서웠다. 귀신의 존재를 믿는 건 아니지만 새벽 6시에 그 산길은 도저히 혼자서 걸어갈 수 없어서 정상이랑 가장 멀지만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코스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시청 바로 뒤쪽부터 시작하는 코스였고 입구에 도착하니 7시쯤 되어서 그때서야 비로소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왕복 4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였고 올해 들어서 등산을 했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이 안 날정도로 등산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끝까지 도착할 수 있을지 나 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일단 무작정 오르고 또 올랐다. 혼자 오르는 산길은 너무 무서웠고, 처음 보는 길과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헤매고 또 헤맸다. 내가 어쩌자고 이 새벽에 등산을 한다고 나댔을까 스스로를 또 자책하기도 했지만, 끝이 어딘지 모르겠고 언제 도착하는지 모르지만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무작정 산에 오른 지 2시간 정도 지났을 때 비로소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상에 도착해서 처음 가려고 했던 짧은 코스가 한눈에 보였는데 내가 무섭다고 뒤돌아갔던 바로 그 앞이 산으로 향하는 입구였다. 조금만 더 앞으로 갔으면 짧은 코스여서 정상에 금방 도착해 일출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내가 도대체 무엇을 무서워하고 불안해했을까 궁금했다. 처음에 내가 가려고 했던 그 짧은 코스는 내가 정상에 도달하는 그 시간까지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일들까지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그동안의 내 모습들이 보였다.


중간에 언제든지 포기하고 집으로 갈 수 있었을 텐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속으로 외쳐준 스스로에게 참 고마웠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믿어주지 못하고 의심하기를 반복했을 테니까. 그 작은 믿음이 나에게 참 크게 다가왔다. 무엇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원망하던 최근의 내 모습과 산에 오르면서 포기하지 말라고 다독여준 내가 동일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였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건 남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일 아닐까? 등산을 하고 나서 온몸에 근육통이 와서 저녁 내내 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 했지만 후회가 되지는 않았다. 정상에 도달했다는 사실보다 내가 스스로를 믿고 행동했다는 사실에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작은 용기가 생기게 되었다. 나를 힘들게 했던 그 모든 것도 '나'였고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던 것도 '나'였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의 극복은 결국 스스로를 어떠한 조건 없이 믿어주고 또 믿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우연한 등산을 통해서 행동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배웠다. 인생은 어쩌면 우연과 우연의 연속이겠지만 또 어떤 우연한 일들로 삶의 대한 무기력증과 우울감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삶은 감사하게도 멈춰있지 않고 이어져있으니 스스로를 아껴주고 사랑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은 언제든지 찾아오고 또 다가온다. 지금 어떤 모습이고 어떤 상황에 있는지 어쩌면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생각의 방식이 전부 다 다르듯 스스로를 대하는 모습도 전부 다르다. 사랑의 정의가 모두 다르듯 나를 사랑하는 방법도 같을 수 없다. 삶을 살면서 스스로를 믿어주고, 아껴주고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려면 내 안에 사랑이 가득해야 나눌 수 있다. 어쩌면 스스로를 다독여주고, 가치 있고 소중한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사랑이 시작되는 건 아닐까.



이제야 비로소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울 준비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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