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별 Oct 21. 2019

자존감과 친구의 팬미팅

일상의 기록#47

요즘 들어서 해야 하는 것들을 미루고 또 미뤘다. 열심히 다니던 피아노를 그만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다니던 헬스도 그만두고 가장 곁에 두고 싶은 글쓰기와 책 읽는 것에는 완전히 거리를 두고 습관적으로 술을 찾았다. 내 모든 것이 멈춘 듯이 시간은 흘러갔고, 나는 여전히 3개월 전 즈음에 머물러 있었다.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어도 인생은 계속되고 있었고 나는 여전히 제자리에 맴돌고 있었다. 그 빈자리들을 술로 채웠고 술기운에 의지해서 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중이다.


지금의 내 상태를 '자존감이 떨어졌다'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함이 많지만 그것 말고는 어떤 언어로 지금의 상태를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스스로를 아껴주지 않고, 자책하고, 원망하는 시간들이 길어질수록 누구를 탓하기보다는 스스로가 만들어낸 문제라고 규정짓고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지 고민은커녕 외면하고 또 외면했다. 그런 모습들에 또 실망하는 악순환의 반복이 이어지는 나날들이 이어지는 어느 날, 연예계 쪽 관련된 일을 하는 15년 지기 친구의 팬미팅을 도와주게 되었다.


내 전문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음악과 관련된 것들이나 조명장치 같은 직접적인 일들에 도움을 줄 수는 없었지만, 굿즈를 판매하는 일이나 행사가 끝나고 정리를 하는 등 간접적으로나마 도움을 최대한 주려고 노력했다. 그중에서도 정말 인상 깊었던 건 친구를 보기 위해서 일본에서 오시는 팬들도 있었고,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도 팬미팅 1시간을 위해서 20시간 이상의 비행시간을 견뎌내고 오시는 분들도 있었다. 어쩌면 견뎌냈다는 표현이 어쩌면 실례일 수도 있겠다. 가슴 설레고 기다려지는 순간이라고 느꼈을지도 모르니까. 멀리서 오시는 팬들을 위해서 친구는 손수 도시락을 준비했고 팬분들은 그런 정성에 감동하는 모습을 보이셨고 굉장히 즐거워하셨다.


삶이 의미 없고 무기력하게 느껴지고 있었던 요즘, 그 날의 분위기로 하여금 지금까지 갇혀있고 고립되었던 마음에 한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했고 무엇이 정답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팬미팅을 준비하며 굉장히 힘들었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을 거라고 말했던 내 친구는 멀리서 보러 와주신 팬분들 덕분에 마음의 위로를 받았고, 팬미팅을 준비하는 시작과 끝의 모든 노력과 정성이 느껴지는 시간 덕에 팬분들께서도 위로를 받으셨다. 단순히 누군가에게 관심이 생기고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는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의 단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꽤 많지만,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그 어떤 조건도 없이 무조건적인 사랑과 응원을 보내주시는 부모님,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지고 볶고 함께 자라고 커가고 있는 내 친구들. 빛을 잃어버린 채 지내왔던 그 순간에도 내 주변에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든 짐을 혼자 짊어져야 된다고 생각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끙끙대며 아등바등 버티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주변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으면 어땠을까.


결국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다. 앞으로 분명히 또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일이 분명 있을 거고 그럴 때마다 또 습관적으로 술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순간들이 찾아올 때마다 혼자서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극복하는 것도 좋지만, 주변에 도움을 청해 보는 건 어떨까. 괜찮다고 말해주는 그들로 인해서 위로받기도 하고 나 또한 그들의 위로가 되어줄 수도 있으니까. 힘들고 지칠 때 스스로를 긍정적이거나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그 순간만큼은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더 나답게 바라봐줄 수 있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마음은 어느 한순간에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매일 조금씩 다독여주고 괜찮다고 말해주면 어떨까. 감사하게도 주변에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다시금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볼 용기를 내게 되었다. 그 용기로 인한 내 행동들로 또 다른 상처와 아픔이 찾아올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이어져있고 또 흘러간다.


어쩌면 당신은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의미 있는 사람이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모든 것에서

이전 27화 내가 할 수 있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