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궁금증

적절한 해결책

by 에밀리H

언니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굉장히 짧은 문장 하나로 표현할 수 있지만 모든 과정을 담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세대가 변하면서 결혼식 문화도 많이 변했기 때문에 예전만큼 부모님의 역할이 이렇게나 많이 필요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어차피 결혼 당사자들이 새로이 알아가며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언니가 결혼 준비를 하면서 엄마의 역할을 얼마큼 필요로 할지 의문이었다.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 몰랐기 때문에 시작은 매우 호기로웠다.


준비를 하면서 부족한 부분은 주변의 도움으로 어떻게든 채워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너무도 달랐다.


가장 먼저 부족함이 느껴지는 순간은 상견례였다.


양측 직계가족을 계산해봤을 때 4명 4명으로 딱 맞았겠지만 우리는 한자리가 비어있었다. 예비부부의 교집합에 의해 그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었고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지병으로 술을 마시지 않는 아빠는 계속 긴장한 탓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얘기만 줄줄이 늘어놓았다. 아빠도 엄마가 옆에 있었으면 어색한 자리에 있었어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을 텐데 아무도 그 역할을 해주지 못해 안쓰럽게만 느껴졌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 처음 경험했던 그 자리는 낯섦이 가득한 상태로 기억 속에 처박아 두었다.


그다음으로는 혼주석 빈자리에 대한 문제였다.


엄마 장례를 치르고 나서 언니는 몇 번 이모들을 만났지만 각자 바쁜 생활이 이어졌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연락이 끊어졌다. 그래서 언니와 나는 외가와의 교류가 없어진 지 오래였고, 친가만이 유일했다.


이런 와중에 언니의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정확한 병명을 알지 못한 채 눈이 아프면 안과를 갔고 관절이 좋지 않으면 정형외과를 가면서 힘들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점점 예식날이 다가오면 확인해야 할 것들도 점점 세세하게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근데 위기는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엄마가 있었다면 엄마가 주도적으로 움직이면서 도와줄 일들이 있었을 텐데 뒤늦게 일이 쏟아져 나오니 모두가 멘붕 그 자체였다. 그나마 언니에게 쓸만한 사람이라곤 경험이 전무후무한 나밖에 없었고, 고령의 아빠는 간섭하면 안 된다면서 그냥 손 놓고 있었다. 가장 큰 이슈는 혼주석을 누가 채우느냐였다. 아빠가 그동안 친가 식구들한테 잘 말씀드려서 혼주석을 누가 채울지 정했겠지 싶었는데, 예상과 달리 불화가 시작됐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입장차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꼭 누군가의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하지만 어색한 관계 흐름으로 예식날 나 혼자 새우등 터지듯 이리저리 불려 다녀야만 했다. 그리고 말도 안 되게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결혼한 다음 해에 언니의 병명을 알게 됐고 그로부터 1년 뒤 임신을 했다.


결혼한 다음 해에 정확한 병명을 듣게 됐는데, 아직까지 명확한 치료 방법이 없어서 난치병으로 분류하는 병이었다.


그리고 약 1년 뒤 뜻밖에 선물이 찾아왔고 주사치료와 매일 먹던 약을 중단한 후 태교에 들어갔다. 아무런 준비 없이 찾아온 선물은 신나면서도 낯설었다. 기쁨도 컸지만 그만큼 걱정도 컸다.


언니는 누구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거의 혼자만의 힘으로 버텨야만 했다. 내 주변 친구들만 봐도 친정엄마가 도와주실 수 있으면 둘째도 생각하고 심지어 셋째까지 생각하기도 하던데, 언니 상황을 봐서는 하나도 너무 벅찼다.


언니의 시어머니는 지방에 거주하고 계시고, 애를 낳고 얼마 안 있다가 글로벌 이슈가 터져서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수업을 듣거나 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집에만 있던 언니의 산후 우울감은 최악으로 치닿았다.


홀몸일 때도 건강이 좋지 못해서 감정 기복이 심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정기적인 주사치료를 통해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지만, 주사치료를 받으려면 하루정도 병원에 입원해야 하기 때문에 그냥 병원 처방약만 먹으면서 버티고 있는 중이다.


비비거나 기댈 구석이 없는 삶이 이렇게나 어려운 것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최악의 순간들이 닥쳐왔다 할지라도 결국에는 지나간다. 하지만 그 순간순간 겪었던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갑자기 분노로 표출되기도 하고 그냥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그때는 그냥 엄마가 있었다면 상황이 얼마나 달랐을까 하는 생각만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일찍이 엄마와 헤어져야만 했던 현실이 너무도 야속하게 느껴졌고 심지어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엄마한테까지 탓을 돌리게 됐다.


엄마가 필요한데 엄마가 없다고.


대체 왜 그렇게 빨리 갔냐고.


지난 1년 동안 조카의 성장과정을 보면서 언니와 내가 기억 못 하는, 심지어 아빠도 세세하게 기억 못 하는 순간들을 엄마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너무도 궁금했다. 나름 엄마가 언니의 성장앨범에는 멘트를 써놨지만 내 성장앨범에는 사진만 있다. 이전에는 가끔씩 엄마와 같이 여러 개의 앨범을 보면서 몇 가지 일화들을 듣기는 했지만 그건 지극히 일부이기 때문에 디테일함을 채울 수는 없었다. 조카의 행동 하나하나를 보면서 누구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궁금증만 쌓여가고 있다.


우리 스스로가 부족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크게 어려움이 없었겠지만 누구와 비교하지 않고도 부족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엄마의 빈자리가 너무도 컸고, 그만큼 조그마한 일에도 속이 상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빠는 엄마는 우리를 키울 때 힘들어하거나 어려워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 말속에서 큰 함정은 엄마에게는 친정엄마 즉 우리의 외할머니가 살아계셨다는 것과 선행한 형제, 자매들을 보면서 간접경험을 했다는 것이 빠져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언니는 충분히 잘 해내고 있지만 힘이 부치는 건 어쩔 수 없다.


언니와 나는 나이만 먹어가고 있지 뭔가 부족한 상태로 꾸역꾸역 살고 있다.


그래도 언니는 용기를 냈고 현재는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용기가 나질 않는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보다 나날이 커져가는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한 채 사는 것이 시작도 하기 전부터 버겁게 느껴졌다.


고통을 나누면 반이 된다고들 하지만 궁금증은 반으로 쪼개면 그냥 반토막난 궁금증일 뿐이다. 앞으로의 생활은 과거에 기대어 살기보다 나의 의지대로 채워가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생각처럼 엄두를 내지는 못할 거 같다. 생각만으로 머리가 너무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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