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을 준비하는 일이란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이 인생의 끝을 향하고 있을 때 아름답게 묘사된다. 범죄, 스릴러가 아닌 이상 거칠거나 투박한 모습은 잘 없다. 나는 엄마의 장례식 이전까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이나 가까운 지인의 끝을 직접 본 적이 없었고, 심지어 장례식조차 가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마지막 순간의 모습이 진짜일 거라며 착각하며 살았다.
장기간 간병생활을 하다 보면 갑자기 간호사 선생님이 병실 문을 꼭 닫을 때가 있었다. 늦은 밤 잠을 잘 때도 문을 70% 정도만 닫아 놓기 때문에 그렇게 완벽하게 닫을 때가 거의 없었는데 참 희한한 일이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맨 처음 문이 닫히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의 항의로 문을 닫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배려였다.
고인을 옮기기 위해 사용되는 비상 엘리베이터는 많은 병실을 지나쳐야 했기 때문이었다. 병실 안에 있는 환자들이 문을 닫는 행위로 하여금 상황을 짐작할 수 있지만 적어도 직접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암묵적인 룰 같은 거였다. 몸이 아프지 않은 사람은 그 광경을 보면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병마와 싸운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같은 층에 있는 병동 특성상 장기 입원 환자가 많았기 때문에 치료 의지를 저하시키지 않기 위해 잠깐의 시간 동안 병실 문이 완벽하게 닫아놨다. 나는 그때마다 엄마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무표정으로 있었지만 심장은 벌렁벌렁 뛰고 있었다. 탄생과 마찬가지로 죽음 또한 우리네 인생 가까이에 함께하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10년 후, 20년 후의 나의 미래를 그려보면서 부모님이 우리 곁을 어떻게 떠나실지를 생각했다. 쉽게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많은 연구와 발전의 부산물인 실버타운에 머무르시고 가만히 누워계시다 숨이 끊기는 이상한 상상을 하곤 했다. '충분한 나이'의 절대적인 기준은 없지만 살만큼 충분히 살다가 죽는 시나리오를 그려냈었다. 하지만 엄마가 아프고 나서부터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가끔은 간병을 위해 병원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너무 고되고 그만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엄마가 인생 끝에 선 모습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순간 정신을 고쳐먹었다. 얼른 신약이 개발돼서 엄마의 병을 해결해줬으면 싶었고, 또 그때까지 엄마가 잘 버텨줬으면 싶은 마음뿐이었다.
역시나 세상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상태가 그렇게 좋아지는 건 아니더라도 충분히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진단받고 치료받은 지 1년이 되기도 전부터 엄마의 전신은 고장 나고 있었다. 정기적으로 외래진료를 받을 때 수혈을 받아야 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리고 몸 곳곳에 이상이 생기면서 진료받아야 하는 과목들이 늘어났다. 심지어는 한쪽 발이 심하게 부으면서 피부가 까맣게 변해가고 있었다.
결국 급하게 입원을 결정한 엄마는 가방을 싸고 병원 갈 채비를 마친 다음 아빠와 집을 나섰다. 보통 나의 인사는 "다녀오세요."였다. 단어 그대로 볼일 본 후 안전하게 돌아오라는 인사이자 부탁의 뜻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 모습이 마지막일 거란 생각은 안 했지만 몸으로 직감을 했는지, 차마 입 밖으로 "다녀오세요"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음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 바로 병원으로 갔다. 엄마는 병실이 나지 않아 그때까지도 응급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가까스로 병실로 옮겨졌지만 그때부터 힘겨운 싸움이 시작됐다. 사실 이때부터 엄마에게 희망이 존재하지 않았다. 한쪽 발은 썩어 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결국 스스로 용변을 볼 수 없게끔 만들었다. 아무리 몸이 아프더라도 거동만 할 수 있으면 건강 회복에 대한 의지를 다질 수 있었지만 점차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면서 엄마는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방학 때도 학교를 갔다가 병원을 가는 일이 많아졌고 심지어 새 학기가 시작하기 전 1주 동안은 거의 병원에만 있었다. 아직 성인이 안된 보호자만이 옆에서 지키고 있으니 주치의 선생님도 특별한 말 없이 돌아가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한참 뒤에 알았다. 주치의 선생님이 나에게 전하지 못한 말은 '마지막을 준비하세요.'였다.
나는 그때 당시 간병생활이 이전과는 다르게 힘들고 힘들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1주일 뒤면 학교를 가야 하고 얼마 안 있으면 치러질 고등학교 2학년 첫 모의고사를 준비했어야 됐기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개학하면 엄마를 자주 못 볼 거란 생각에 나는 최선을 다했다. 쪽잠을 자서라도 엄마가 해달라는 거 다해줬고 필요한 것 모두 다해줬다. 개학을 하고 나서 첫 모의고사를 망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뒤늦게 똥줄이 타 열심히 공부하는 척을 했다. 근데 모의고사 하루 전날 종례시간, 학기 초라 어색할 수밖에 없었던 담임 선생님이 종례시간에 나를 부른 뒤 병원으로 빨리 가보라는 말을 전해주셨다. 보통 당황하면 머리가 하얘진다고들 표현하는데 나는 갑자기 암흑으로 변했다. 병원에 갔더니 아빠가 언니와 내게 짧게 한마디 했다.
"준비해."
앞뒤 맥락도 없이 단순한 저 한마디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때가 됐다. 엄마를 휠체어에 태우고 로비가 있는 2층으로 데리고 갔다. 아빠가 엄마한테 지금 가장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다.
"생수"
엄마는 목이 탄다면서 끓인 물 말고 정수기에서 나오는 차가운 생수를 마시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급하게 병원 어딘가에 있는 정수기로 달려가 종이컵에 차가운 물을 받아왔다. 우리는 서로 직접적인 말은 하고 있지 않았지만 다들 속으로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떠온 생수를 바라본 엄마의 한마디는 너무나도 거칠고 마음이 아팠다.
"이제 막 나가네."
그동안 철저하게 끓인 물만 마셨는데 갑자기 2층으로 데려가서는 아무렇지 않게 생수를 떠다 주는 딸의 모습을 보니 서운함을 감출 수가 없었던 거 같았다. 그래도 떠온 물을 마시기 위해 입을 연 엄마의 혓바닥 가운데는 시커멓게 변해 있었고 나는 그 혓바닥을 보고 충격받았다. 나는 생각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다. 엄마는 계속 속이 탄다는 말만 반복했고, 언니가 병실로 아이스크림 사 왔다. 엄마는 2년 가까이 먹지 못한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우걱우걱 먹는 모습을 보고 난 뒤에 아빠만 남겨두고 집으로 갔다.
언니와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역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지 않고 걸었다. 언니는 걸으면서 누가 보든 말든 개의치 않고 눈물을 흘렸고, 나는 흐리멍덩한 눈빛을 하고 그냥 걸었다. 머릿속이 엄마 혓바닥처럼 시커맣게 변해있어서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이미 끝은 다가온 거 같은데 정확하게 언제인지를 모르겠고 그럼 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해 대충 옷을 갈아 입고 침대에 누웠고, 다음날 새벽 알람이 울려서 일어났다. 씻고 나와서 교복을 입는데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학교 말고 병원으로 와"
나는 교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후 언니와 함께 길을 나섰다. 사람이 많이 없던 새벽 지하철에서 언니의 눈물샘은 마를 시간이 없었고 나는 건너편 차창밖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 멍만 때렸다. 병원에 도착해서 우리가 알던 병실에 갔지만 엄마 침상은 사라지고 없었고 급하게 간호사 선생님이 우리를 데리고 나와서 엄마와 아빠가 있는 1인실로 안내를 해주셨다. 엄마는 하루 사이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전히 약병들은 주렁주렁 달려있었지만 엄마는 눈을 감은 채 호흡이 거칠어져 있었다. 그냥 엉엉 울었다. 슬픔, 분노, 우울, 안타까움 등의 마음이 뒤섞인 채 엄마의 팔을 잡았다. 드라마나 영화, 다큐에서는 임종 때 뭐라 뭐라 얘기를 하던데 나는 아무 말도 튀어나오질 않았다.
"지금 여러 약병들과 연결되어 있는 이 주삿바늘만 빼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거나 다름없어."
아빠도 겨우 힘을 내서 이제는 엄마를 보내주자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담당 교수님까지 오셨고 바로 그 자리에서 요청을 드려 주삿바늘을 빼고 심박수 기기를 연결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8:30 a.m
어쩌면 학교에서 첫 모의고사를 준비하고 있을 시간에 엄마는 하늘나라로 긴 여행을 떠났다.
수많은 약물들에 의해 엄마의 피부는 누렇게 떠있었고, 몸의 근육들이 풀리면서 온갖 구멍에서 무언가가 흘러나왔다. 이것이 현실적인 마지막 모습이었다. 사망시간을 선고하고 장례식장으로 옮겨갈 준비를 하면서 생각을 했다. 비록 급작스런 사고로 엄마를 잃은 건 아니었지만 아무런 준비가 안된 나에게는 사고나 다름없었고, 담당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준비하란 얘기를 들은 아빠와 언니에게도 이 순간은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이나 다름없었다. 이와 중에도 미리 신청했던 사망진단서를 받고, 기존에 있던 병실에서 울고 있을 수는 없어서 급하게 몇 개의 짐만 대충 챙겨서 나왔다. 깍듯하게 마지막 인사 제대로 못하고 뛰쳐나오다시피 했다.
엄마가 병원을 나서기 위해 지나쳐야 하는 병실 문은 닫혔다. 나는 누워서 가는 엄마의 침상 바퀴와 속도를 맞춰 걸었다. 엄마가 집을 나선 마지막 순간에 "다녀오세요"란 말을 못 들어서 그런지, 14년이 넘도록 다녀오시질 못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