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양자택일

이건 게임이 아닌데

by 에밀리H

우리는 모든 순간 선택을 하면서 살고 그 선택지마다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좋았던 일들도 사람도 어느 순간에 배신하고 돌아설 때도 있고, 나쁘다고만 생각했던 것들이 오해였던 것일 때가 있다. 그만큼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는 거 같으면서도 50:50 법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면서 산다.


올해는 밸런스 게임이라고 해서 난해한 2가지 선택지 중에서 택일해야 하는 것이 인기다.


가령 둘 중에 하나를 꼭 먹어야 한다면 똥맛 카레를 먹을 것인가 아니면 카레맛 똥을 먹을 것인지 골라야 한다. 너무 극단적인 선택지라는 생각이 들지만 의외로 우리의 인생에는 밸런스 게임을 하는 일이 많다.


만약 이것을 나의 질문으로 바꿔보면 이렇다.


50년 동안 아프지만 100살까지 사는 엄마 vs 몸 건강하게 50살까지만 살 수 있는 엄마


솔직히 난 이 양자택일 상상을 엄마가 아프고 나서부터 자주 생각을 했었다.


사랑하는 엄마가 아파도 내 엄마인 것은 분명하고, 나의 소중한 가족이라는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마음이다. 그래서 온 마음 다해서 보살펴드리고 싶었고 끝까지 책임을 다해 돌봐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50년 동안 아프지만 100살까지 사는 엄마>를 선택하는 쪽으로 좀 더 마음이 기울기는 했었다. 하지만 가끔씩은 이러한 책임감이 버거울 때도 있었다. 나도 내가 살아내야만 하는 인생이 있고,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면 아픈 엄마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래서 엄마가 세상을 떠난 이후 가끔 꿈에 나타날 때도 아픈 모습이면 부담스러움을 느끼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몸 건강하게 50살까지만 살 수 있는 엄마도 마음이 아예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엄마는 본인의 숨이 멎기까지 GoSTOP 중에서 STOP을 선택했기 때문에 지금 이 세상에 없는 걸까?


드라마나 영화에서 숨이 끊기기 전에 묘사되는 장면은 영혼이 이승과 저승 사이에 있다가 홀린 듯이 최종 선택을 하는 모습이다. 그때는 하늘에 계신 신이 나타나 양자택일을 할 수 있게 조언을 해주거나, 명부를 확인한 저승사자나 먼저 고인이 된 주변 인물들이 나타나 '때가 됐다'면서 저승으로 데리고 간다. 힘 없이 끌려가는 것은 덤.


만약 실제로 경험의 끝이 드라마나 영화 같다면 과연 엄마는 이번 생을 그만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세상을 등지게 된 걸까. 의학적으로는 직접적인 사망원인이 패혈증에 의한 것이라고 적어놨지만 막연하게 사후세계를 상상하는 나에게는 엄마의 양자택일로 생을 마감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엄마는 더 살고 싶었는데 우리가 엄마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끝을 서두르다 보니 서운한 마음에 STOP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래서 선택을 번복할 수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 엄마에게 직접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점점 들숨 날숨의 텀이 길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몸은 말도 안 되게 차가워지는 것을 보고 느낄 수밖에 없는 순간이 괴롭더라도... 그리고 결과가 지금이랑 다를 게 없다고 하더라도 좀 더 기다려줬어야 했던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어떠한 것을 선택하든 후회스럽고 깊은 상처로 남게 된다.


슬펐다. 결국 죽음도 죽음으로 인한 이별도 절대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럼 만약에...


이 모든 것이 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다면 엄마의 죽음과 동일선상에 놓여 있었던 건 무엇이었으며, 신은 어떠한 이유로 양자택일 중에서 엄마를 데려가는 것을 선택하셨을까?


우리 가족에게는 아직까지도 풀지 못한 아니, 남은 생 끝까지 풀지 못할 숙제로 생각하고 있다.


초반에는 정 반대의 자매 성격으로 인한 다툼을 줄이는 것과 동시에 아빠와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신의 전략이었나 싶었다. 그래서 서로의 슬픔을 억지로 누르면서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오히려 서로를 위하는 서투른 마음에 더욱 상처를 받는 일이 많았다.


한 번은 화가 난 나머지 화를 내며 기도를 했다. 그렇게 나에게 엄마라는 존재를 줬다가 급작스럽게 빼앗아 갔으면 다른 것을 줘야 하는 게 인지상정인데 신은 어떠한 것도 내게 내어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것이 얄밉게 느껴졌다.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이 신만이 할 수 있는 게임 속 캐릭터라면 나를 이렇게 방치하고만 있지 말라고 묻고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신은 당장 내 앞에 놓인 인생을 살 수 있게끔 양자택일로 선택받지 못한 그 무언가를 선물로 남겼는데 다 빼앗긴 척 착각하지 말라고 되려 혼나는 것만 같았다.


결국 남은 가족의 화합보다 중요한 건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일이었고,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각해도 엄마의 죽음과 동일선상에 놓인 선택지는 남은 가족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었다. 아직도 나머지 선택지가 뭔지 알아내지 못했다. 그냥 암묵적으로 엄마 개인에게 이유가 있었다는 걸로 결론을 내려야만 했다.


하늘에 계신 신한테까지 화를 내면서 원망을 해봤지만 그건 인간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고, 설령 생각 없이 살더라도 인생에서 양자택일을 완벽하게 없앨 수는 없다. 오늘도 역시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란 생각에 그저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선택의 연속인 우리네 삶 자체가 너무 고달프게만 느껴진다. 여하튼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앞으로의 인생은 아슬아슬한 밸런스 게임 같은 양자택일보다 좀 더 순화된 선택이 더 많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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