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찾으려 하는 것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나에 대해서 번거롭게 주절주절 얘기하는 것보다 보잘것없는 나의 일대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한 장 짜리 리포트로 보여주고 싶다고 말이다.
사람들을 처음 대면할 때 매번 자기소개서를 출력해서 읽어보라고 줄 수도 없고 충분히 나의 얘기를 할 만큼의 시간이 주어지지도 않는다. 나는 할 말이 없다면서 구워삶아야지만 입을 조금씩 벌리는 조개처럼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속내를 끄집어내야 할 거 같으면 상대방과 무언의 스무고개가 시작된다.
한편으로는 상대방이 나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많아질수록 이러한 일이 점점 귀찮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사실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다. 모든 얘기를 다 할 필요는 없다.
최대한 육하원칙에 따르면서 간단명료하게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됐다'라는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대부분 한 문장으로 충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난 이 부분을 늘 경계했다. 청자가 더는 캐묻지 않지만 속으로는 딴생각을 할 수도 있고, 충분한 설명을 제외했을 때 나중에 서운하다는 소리가 나오는 일도 적지 않다. 그래서 나는 적절한 표현과 간략하게 내용을 간추리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새롭게 친해진 사람들에게 얘기해야 하는 순간이 되면 은근히 떨린다. 마치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 속마음을 표현하는 고백처럼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뭐, 사람 사는 인생이 다 그렇고 그럴 텐데 떨릴게 뭐가 있을까. 특별할 것도 없고 별반 다를 게 없는 게 우리네 인생이기 때문에 굳이 내 인생 스토리에 특별함을 부여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조부모님은 인생 순리에 따라 이별을 하게 된 거라면서 누군가에게 얘기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지만 직계 가족인 부모님은 장황하고 성대한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이성에게 고백하기 위해 입을 여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가슴 떨리게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부터 아무렇지 않은 척 시치미를 떼고 싶지만 온몸의 세포는 상대방의 눈썹 1mm의 움직임을 포착할 만큼 예민해져 있다.
그까짓 게 뭐라고.
그리고 정말 애석하게도 긍정적인 답변을 받지 못하게 될까 봐 초조하게 떨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의 내면에 있는 얘기를 어렵사리 꺼내서 얘기했지만 그 얘기를 받아들이는 것은 청자의 몫이었다.
이해심이 많고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어떻게 얘기해도 화자의 의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남의 이야기를 기억 속에서 흘리기 이전에 자신의 생각의 흐름대로 편집을 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화자가 다른 방향으로 왜곡되는 일이 없도록 반복 강조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 일도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왜 내 인생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죽음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야만 하는 건지 불만이 씨앗이 싹트기 시작한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변치 않았음을 확인하는 일처럼 노력해야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석연치 않게 느껴진다. 그만큼 고백한 후에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도 모자라 길고 긴 숨바꼭질을 하게 된다.
숨바꼭질.
초반에는 술래가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탐험을 시도하지만 시간이 오래도록 지체가 되면 '못 찾겠다 꾀꼬리'로 항복을 하거나 아예 술래 역할에서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화자는 이 게임을 그만 둘 생각이 없다. 아니, 멈추는 방법을 모를 수 있다. 이건 여느 숨바꼭질처럼 터치다운으로 승패가 갈리지 않을 거라 여기기 때문에 술래가 완벽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주기 전까지는 계속 숨어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의 20대 처음 사귀었던 사람이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됐고 강렬했던 첫인상을 잊지 못해 만남을 이어가게 됐다. 상대방이 나에게 보내는 호감의 표현을 듣기 이전에 나는 그에게 먼저 나의 가장 슬픈 부분을 드러냈다. 괜히 한참 뒤에 듣고 나서 섭섭한 마음 갖지 말라는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나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의 집안이며 뭐며 나보다 우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에게 부족한 단 하나 '학력'에 대한 열등감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그런 와중에 내가 슬픈 고백을 해버렸고, 그것이 그의 자존심을 세우는데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 찰나의 고백을 미끼 삼아 나의 감정에 낚시질을 해댔다. 그때 당시는 나의 순수한 고백이 처참하게 왜곡되는 경험이 없었던 터라 당황한 나머지 처음으로 숨바꼭질에 들어갔다.
그 고백이 내 전부가 아니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그는 술래를 할 생각이 없었다.
핵심 내용만 알면 그만이지 더 깊은 내용들은 그에게 큰 의미가 없었고 자질구레하고 쓸 데 없는 이야기에 불과했다. 그는 getting to know의 단계도 없이 감정적으로 나를 흔들어 놓기 위해 여러 말들을 쏟아냈다. 너무도 일방적인 행동들 때문에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뭐가 됐든 그는 소유와 쟁취에 취해 있었고 집착하는 일에 정성을 다했다. 난 그 모습에 충격을 받았고 얼마 가지 않아 후회 섞인 마음 담아 그 관계를 끊어버렸다.
굳이 내 슬픈 과거가 없었어도 그 사람과의 관계는 온전하게 흘러가지는 못할 가능성이 컸다. 이유야 어쨌건 그 경험은 아직까지 나의 선명한 기억이 자리하는 곳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때론 따갑고 씁쓸하고 차갑게.
겉으로는 완벽하게 벗어난 듯 보이지만 여전히 장기전으로 이어지는 엄마에 대한 슬픔과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숨바꼭질은 더 이상 숨을 공간이 없을 때 끝날 거 같다.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어떤 결말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끝이 나서 그 결과를 알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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