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섬나라

수많은 고영희 씨와 바다

by 에밀리H


몰타에는 고양이가 참 많다.


고양이 공원 고양이 조형물


옛날 전쟁을 치를 때 쥐로부터 식량을 지키기 위해 고양이를 데려다 놓은 것이 시작이 됐다는 썰을 들은 적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그런데 고양이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거에 비해 초반에는 주인과 산책 나온 개들만 보여서 실망한 적이 많았다.


(※여기서 팁은 주인이 개똥을 치워야 한다는 의무가 없는 건지 길바닥에 개똥이 굉장히 많음. 길 걸어 다닐 때 개똥 주의!)


몇 번 봤다고 나랑 절친 맺은 고영희 씨. 나는 두 번째 만남에 너무 쉽게 허벅지를 내어주었다.


며칠 지나고 나서야 골목 구석구석에서 고양이를 만날 수 있었다. 몰타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주차되어 있는 차 주변이나 계단, 그리고 공원 같은 곳을 가면 늘어져 누워있는 고양이들을 볼 수 있었다. 사실 내가 지내던 슬리에마 숙소에서 조금만 걸어 나오면 고양이 공원이 있었는데, 시간만 잘 맞춰가면 엄청 많은 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고양이들은 공원 주변을 어슬렁거리거나 개냥이처럼 사람들한테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


몰타는 고양이를 하나의 상징으로 여기는 만큼 마트에 가면 고양이를 위한 동전모금 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미니 슈퍼에만 가도 고양이를 위한 통조림을 살 수 있었기 때문에 고양이들에게 마음을 베푸는 일이 쉬웠다. 몰타에 있으면서 그들과 함께 사는 법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고영희 씨 관찰 일지 쓰는 중


한국에서는 길고양이만 보면 무시하고 지나치기 바빴는데, 여기서는 심심하면 귓구멍에 이어폰을 꽂고 고양이 공원에 와서 셀카 찍고 놀았다. 그렇게 낮이고 밤이고 자주 고양이 공원에 와서 그런지 몰타 마지막 날까지 찾아와서 멜랑꼴리 해진 채로 집사 노릇을 하고 있었다. 몇몇 고양이들은 내가 간식을 안 들고 왔단 사실에 일찍이 손절하고 떠나갔지만 몇몇 고양이들은 나와 함께 바다를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있었다.



내가 몰타에 있으면서 고양이를 지켜보는 것만큼이나 기분 좋았던 일은 바로 바다를 보는 일이었다.


학원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다 찍은 무지개


제주도의 1/6 크기인 작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바다를 볼 수 있었다. 페리를 타고 학원을 다닐 때는 주방에 있는 발코니로 나가서 하늘과 바다 상태를 확인한 후 그날의 교통수단을 선택했고 플랫 친구들과 브리또를 만들어 숙소 바로 앞 바닷가에서 먹은 적도 있을 만큼 바다와 가깝게 지냈다.


숙소에서 조금만 나가면 볼 수 있는 모습


사실 지중해 바다라고 해서 엄청나게 특별한 건 아니었다. 아무 정보를 주지 않고 보면 우리나라 동해나 남해랑 다를 게 없었다. 그래도 바라만 봐도 좋은 바다였다.




바다 하면 생선이고, 생선이라고 하면 시장이 떠오른다.(억지로 이유 만드는 중...)


사전에 에세이 책과 안내 책자를 통해서 마셜슬록(Marsaxlokk)선데이 피시 마켓(Sundayt Fish Market)이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됐다. 그곳은 일요일 오전에 가면 값싼 생선을 살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다양한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는 알뜰장터였다.


몰타에 도착하고 첫 번째 금요일에 클럽을 간 나는 너무 피곤했던 나머지, 다음 날 토요일에는 숙소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라라가 다음날 마셜슬록을 같이 가자는 제안을 했다. AMN와 가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치타는 주말에 데이트하느라 바빴고 힐리는 다른 약속이 있는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나 빨리 선데이 피시 마켓에 가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번에도 거절하지 않고 오케이를 외쳤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 6시 반 이후에 울리는 교회 종소리에 눈을 떴다.


핸드폰 알람과 씨름하느라 너무도 피곤했다.


전날 밤 라라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알람 어플을 켜고 시간을 맞추고 이었다. 그런데 핸드폰이 망가진 건지 팝업 메시지 정보가 엉터리로 나왔다. 핸드폰 알람 때문에 피곤에 절은 나는 일어나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 후 환기를 위해 발코니 문을 열어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껴있는 것이 비가 한바탕 쏟아질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버스를 타고 마셜슬록으로 가는 도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도착해서도 장터 가까이에 가서 상황을 지켜봤다. 상인들이 다 채워지지 않은 모습을 본 우리는 날짜를 잘못 잡았다는 생각에 급히 AMN한테 어디냐고 메시지를 보냈다.


답이 없다.


나와 라라가 너무 부지런히 움직인 건지 마땅히 들어가 있을 곳도 없어서 우산을 쓰고 상점 앞 처마 밑에 들어가 있었다.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라라와 나는 멍하니 바다만 쳐다봤다. 그렇게 갈피를 못 잡고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AMN이 도착했다.


비를 피할 곳을 찾다가 가까이에 있는 카페를 찾았고 각자가 주문한 음료를 마시면서 날이 좋아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


그날이 서머타임이 적용되는 날이었다. 그래서 시차가 8시간 나던 것이 7시간으로 줄면서 핸드폰 알람에도 적용된 것이었다. 나도 그렇고 라라도 그렇고 둘 다 1시간을 덜 자서 피곤하다며 성토대회가 시작됐고, AMN은 이런 여자 둘 사이에서 그러려니 눈만 끔뻑이고 있었다.


날씨 요정님이 오셨다!!!


운도 좋지.


수다를 떨고 있는데 바깥이 점차 밝아지는 듯했다.


비가 그치고 해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카페 밖을 나가보니 사람이 점차 북적이는 느낌이 들었다.


선데이 피시 마켓


소규모 장터에는 피시 마켓답게 다양한 생선들이 있었고 곳곳에 공예품들도 팔았다. 중고 아이템도 가지고 나와서 팔고 있었고, 이미테이션 브랜드 운동화도 팔고 있고, 그전까지는 몰랐는데 시장을 돌아본 덕분에 몰타는 벌꿀과 레이스가 유명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뭔가 크지는 않지만 소소한 재미가 있는 시장이었다.


걷자! 친구들아 ㅋㅋㅋ


시장 근처 과자 트럭에서 구매한 카놀리를 먹고 있는데 AMN은 계속 '풀 풀' 거리면서 그곳에 가자고 했다. 본인이 전에 간 적이 있는데 굉장히 예뻤다고 했다. Full? Poo... 뭐? 뭔지는 모르겠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나는 그냥 AMN랑 라라만 졸졸 쫓아갔다. 강한 바닷바람과 따사로운 햇살 때문에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나오는데도 그냥 즐거웠다.


그 '풀'의 정체는 생 피터스 풀(St. Peter's pool)이었다.


생 피터스 풀


아직까지 수영을 즐기기에는 이른 계절이어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렇지만 절벽에 부딪히는 청량하고 예쁜 바다색은 힐링 그 자체였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가서 각자 원하는 자리에 앉아서 명상을 즐겼다.


모두 파도소리를 ASMR 삼아서 물 멍을 때리게 됐다.


일주일 전만 해도 새로운 곳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이제는 그냥 아무 생각하지 않고 멍을 때리는 이 순간이 너무 감사하고 기뻤다. 여전히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면 낮잠을 자며 밀린 잠을 채우고 있었을 텐데 이렇게 몰타에 와서 친구들과 자연 속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는 이 순간이 달콤하고 너무도 소중했다.


바다 멍 때리기


달리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동해안 같기도 함


생 피터스 풀에서 바닷가 쪽으로 걸어가면 큰 바위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자연과 무지 친해 보이는 라라는 그런데만 보면 꼭 올라가야 했다. AMN도 뒤 따라 올라갔지만 나는 내려오는 게 무서워서 다른 쪽에 있는 비교적 낮아 보이는 바위를 선택해서 올라갔다. 어디선가 빗방울이 야금야금 내리길래 접어놨던 우산을 다시 폈다.


에코백은 목에 둘러야 제맛이지


우리는 생 피터스 풀로 몰리는 인파를 피해 일요 장터가 열리는 곳으로 이동했다.


먹구름은 완전히 걷혔고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우리는 식사를 하기 위해 괜찮아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날 처음으로 음식점에서 요리를 먹게 됐다.


메뉴판을 봤는데 뭔가 굉장히 복잡했다. 스타터, 메인 디쉬, 드링크로 구분되어 있으면서 영어로 적혀 있었다. 모르는 음식 재료는 열심히 번역기를 돌려 봤다. 마셜 슬록에 왔으니 생선요리를 먹어보겠다고 나는 메인 요리로 생선을 선택했고, AMN은 오징어 먹물 파스타 그리고 라라는 스타터와 파스타를 시켰다.


평소 많이 먹지 않는 라라가 스타터까지 시켜서 먹는 것을 보고 낯설게 느껴졌다. 어쩌면 이 낯섦은 꼭 라라 때문만이 아니라 스타터가 있는 이 문화로부터 오는 낯설음일 수 있다. 스타터를 시키지 않은 것이 식 문화에 어긋난 거면 어쩌지 싶어서 라라의 스타터를 봤는데 안 시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스타터도 그렇고 메인 요리 양도 상당했다.


하지만 나는 스타터의 의미를 깨달았다. 메인 메뉴가 요리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을 감안해서 먹는 경양식 식당의 크림수프 같은 존재였다. 고로 주문한 요리가 나오는 시간을 참지 못한다면 스타터로 잠재우는 것이 맞다.


내가 먹은 생선 요리 JMTGR


각자의 메인 음식이 나왔고 우리는 차례차례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라라가 뭔가를 말하려다 말다를 계속 반복했다. 그러다가 AMN에게 꺼낸 한마디.


"넌 왜 시커먼 음식을 먹어? 그게 맛있어?"


라라의 저 한마디에 나랑 AMN은 눈이 마주쳤고 빵 터져버렸다.


라라는 해산물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AMN이 시커먼 오징어 먹물 파스타를 맛있게 먹고 있으니 라라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계속 괜찮냐고 묻는 모습이 너무 웃겨서 AMN과 나는 라라한테 한번 먹어보라고 장난을 쳤다. (라라는 진심으로 시커먼 파스타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AMN이 또 소개해주고 싶은 곳이 있다면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자고 했다. 몰타 버스는 배차 간격이 길기도 하고 제멋대로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버스를 놓칠까 봐 정류장까지 엄청 달렸다. 다행히 버스를 놓치지 않고 탈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잠깐 걷는데 믿지 못할 풍경을 봤다.


그곳은 생 토마스 베이(St. Thomas bay)라는 곳이었다.


생 토마스베이


기온만 조금 더 높았다면 신발 벗고 발 담그기 딱 좋은 곳이었다. 그만큼 바다색이 예술이었다. 바다를 더 잘 볼 수 있도록 절벽 위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들판에는 이름 모를 꽃들과 풀들이 자라 있었는데 바닷바람에 흔들리면서 싱그러운 향내를 뽐내고 있었다. 여기서도 똑같이 돌바닥에 앉아 바다 멍을 때리고 있었다. 안구건조증 때문에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지만 입은 실실 웃고 있었다.


생 토마스 베이. 너무 예뻤다. 저기 위로 올라가면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



그렇게 또 물 멍을 때리며 시간을 보낸 후 천천히 길을 걸었다. 나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냥 따라 걸었다.


파워 워킹 중인 라라와 AMN


그런데 분명 생 토마스 베이는 버스를 타고 갔는데 왜 마셜슬록으로 걸어온 거지?


........?


여하튼 이상함도 느끼고 많이 걸어서 무릎이 쑤시고 아팠지만 기분은 엄청 상쾌했다.


라라와 숙소에 돌아오고 보니 나의 룸메이트 푸미가 몰타에 도착해 짐을 풀고 있었다. 이렇게 5인 체제 생활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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