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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반 동안에는 콜롬비아인 1명, 스위스인 1명, 일본인 2명, 한국인 1명이 같은 플랫에 살게 됐다.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했던 힐리는 가끔 오렌지 향이 나는 시폰 케이크도 만들어주고, plantain(요리에만 쓰이는 바나나)과 자신이 콜롬비아에서 가져온 재료로 간식을 만들어줬었다. 물론 외식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편안하다는 것 말고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아서 재료를 충분히 사와 함께 만들어 먹는 즐거움을 느꼈다.
내가 숙소에서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했던 이유는 레스토랑 음식들이 나에게 짜거나 기름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외식을 전혀 안 한 건 아니지만 누군가 만들어 주거나 내가 직접 아시안 마트에서 사 온 매운 소스를 넣어 먹는 것이 제일 입맛에 맞았다.
한국에 있을 때도 간을 심심하게 해서 먹은 적이 없는데 유럽 음식의 짠맛은 견디기 힘들었다. 점심을 때우기 위해 근처 스낵점에 가면 죄다 치즈 잔뜩 들어간 음식이거나 기름에 절인 애들 뿐이었다. 마트나 빵집에서 파는 플레인 빵 조차 내 입에는 굉장히 짜게 느껴질 정도여서 먹는 거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음식이 너무 짜서 힘들었던 나머지 인터넷에 찾아봤다. 유럽 음식이 왜 짜게 느껴지는지에 대한 여러 가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하나가 석회 물 때문이라 했다. 석회 물이 체내에 쌓이지 않고 배출하기 위해서 음식을 짜게 만든다고 적혀있었다. 이 말이 진짜 사실인 건지 이탈리아 출신 미국인 연구원에게 물어봤다.
그 연구원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면서 카톡 메시지로 '삼투압' 강의를 시작했다...
어찌 됐든 나는 라면을 끓여 먹을지언정 숙소에서 직접 조리 또는 요리해서 먹는 음식이 제일 좋았다.
플랫 친구들과 같이 스코츠나 타워 마트 가면 각자 요리할 주제에 맞게 재료를 사는 일이 많았다.
하루는 힐리가 브리또를 만들어 먹자 해서 다 같이 주방에 모여 역할분담을 하고 재료를 손질했다. 나는 힐리가 브리또를 만들어 먹자 했었을 때 다 만들어진 완성품을 놓고 먹자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월남쌈처럼 재료를 세팅해놓으면 취향에 맞게 만들어 먹는 방식이었다. 남미 음식이라 해봤자 한국에서 멕시칸 음식을 사 먹어본 게 전부인데, 이렇게 현지인과 함께 직접 만들어 먹으니 꿀맛이었다.
라라는 가끔 양 조절을 못해서 자신이 만든 음식을 나눠줄 때가 있었다. 푸실리를 삶아서 소스와 섞어 주기도 하고 사놓은 재료를 빨리 털어야 한다며 음식 나눔을 많이 했다.
한 번은 치타와 힐리가 몰타 주변국 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나, 라라, 푸미 이렇게 셋이서만 지낸 적이 있었다. 이때도 각자 만든 음식을 나눔 해서 먹었는데 라라가 옥수수처럼 누렇고 입자가 굵은 가루가 담긴 상자를 내밀면서 냄비에 가루와 물을 넣고 계속 저어주면 된다고 하길래 별거 아닌 거 같아서 흔쾌히 도전을 외쳤다.
처음은 라라가 저었다. 라라가 힘들어 보여서 내가 저었다. 그런데도 잘 안돼서 푸미가 저었다. 서로 돌아가며 한참을 저어서 겨우 완성시켰다. (그때 라라가 '쿠스쿠스'라고 말해줬던 거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라라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 듯해 보였다...)
한 번은 푸미가 주말에 스시파티를 열기로 했다고 말해줬다. 나는 우리 플랫 멤버들끼리 스시파티를 여는 줄 알았다. 근데 알고 보니 치타와 푸미의 한국인 클래스 메이트 꿩지와 힐리의 친구 로리 그리고 치타의 이전 클래스 메이트 알렉과 마코가 오기로 되어 있었다. 라라는 다른 약속이 있어서 빠졌고 나는 그날 비행기표 예매가 생각보다 일찍 끝난 터라 얼떨결에 스시파티에 참석하게 됐다.
내가 알고 있는 스시는 '생선'을 얹은 초밥이었다. 치타나 푸미가 생선회를 떠 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옆에서 준비 과정을 지켜보니 우선 밥을 안치고 우리나라 김밥처럼 오이, 달걀지단, 아보카도 등의 재료를 준비했다. 그리고 그거를 싸놓는 게 아니라 리빙룸 테이블에 세팅해두었다.
한 명 두 명 친구들이 도착했고, 치타가 먼저 스시 만드는 시범을 보였다. 김밥을 말 때 사용하는 김밥 발에 김 한 장을 올려놓고 적당량의 밥을 올려서 일자로 펴줬다. 밥 위에 각자 원하는 재료를 올리고 돌돌 말아서 완성을 했다. 그럼 그걸 적당한 크기로 잘라 모두가 맛을 봤다. 속재료가 덜할 뿐이지 우리나라 김밥이나 다름없었다.
치타가 준비한 스시를 만들어 먹는 중에 푸미가 냄비밥에다가 일본에서 가져온 후레이크 형태로 된 무언가를 얹었다. 내가 뭘 만드는 거냐고 물어봤다. 그런데 그것도 스시라고 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일본인 둘이 이것도 스시라고 하고 저것도 스시라 말하는 것이 이상했다.
그날 밤 푸미에게 말했다. 스시가 밥을 타원형으로 말아서 고추냉이를 적당량 덜고 특별한 재료를 얹어야 하는 걸로만 알고 있었다고 그랬더니 푸미가 재료가 뭐가 됐든 밥에 식초를 해서 먹으면 그게 스시가 되는 거라고 알려줬다. 그날 스시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초밥을 더욱 좋아하게 됐다. (이야기의 마무리가 왜 이러지?...ㅋㅋㅋ)
라라는 주방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걸 좋아했는데(완전 내 스타일) 정기적으로 냉장고 비우기를 실천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체류기간이 긴 힐리는 음식 재료를 넉넉하게 사서 만들어먹는 것을 좋아해서 냉장고는 늘 가득 차있는 상태였다.
하루는 라라가 자주 가는 빵집에 직원이 잘생겼다며 같이 가자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운이 없었던 건지 그날 그 직원을 만나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빵집을 갈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냉장고를 뒤적였고, 수제버거를 만들어 먹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동안 치타나 라라가 이것저것 많이 해줬으니 나, 힐리, 푸미가 돈을 모아 재료를 사기로 했다.
수제버거를 만들어 먹기로 한 날, 임자르(Mgarr)라는 지역에서 딸기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축제 한편에서 각종 과일과 채소들을 저렴하게 팔고 있어서 양상추와 토마토를 싸게 구입했다. 그리고 축제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 중간에 내려서 빵집에 갔지만 그날도 그 직원은 보이지 않았다. 빵을 산 후 숙소 앞 슈퍼마켓까지 걸어가 나머지 필요한 재료들을 구입했다. (일요일에 문을 닫는 상점들이 많다.)
잠깐 휴식을 취한 다음 각자 포지션을 맡아서 열심히 재료를 준비했다. 누가 칭찬해주는 것도 아니고 본래의 목적인 빵집 직원을 만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엄청 열심히 만든 결과, 정말 맛있었다.
그럼 이때쯤이면 난 가마니처럼 가만히 있었을지 의문이 들 것이다.
아무리 아시안 마켓에서 재료들을 사 올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에서처럼 원하는 재료가 다 있지 않았다. 이것저것 열심히 넣어가면서 신명 나게 만들지는 못했지만 나름의 재료를 사서 친구들에게 대접을 할 수 있었다.
처음 생줄리앙에 있는 아시안 마켓에 가서 산 재료 중 하나가 불고기 소스였다. 간장, 고추장, 된장을 팔긴 했지만 이 소스들만으로 감칠맛을 내기가 역부족이었고 한국음식이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에게 부담일 수 있었다. 하루는 스코츠 마켓에서 최대한 얇게 썰린 소고기를 사 와서 각종 채소를 썰어 넣고 양념을 섞었다. 그리고 후추로 간을 한 후 숙성을 시켜놓기 위해 랩을 씌워서 실온에 놔뒀다. 학원 갔다 돌아온 힐러리가 그걸 보고 커피 물에 고기가 빠져있다면서 놀라 물었다.
저녁 준비 시간이 됐길래 주방에 가서 상태를 확인했으나 고기가 두꺼워서 양념이 잘 배진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팬에 볶아버렸다. 고기가 잘 익지 않아 엄청 뒤적거렸더니 육질이 질겨졌다. 대실패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했던가. 하루 날 잡고 그지라(Gzira)에 있는 아시안 마켓에 가서 녹차 호떡 믹스와, 유부초밥, 그리고 부침가루를 샀다. 조리 도구도 열악하고 재료도 허접했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맛있는 음식을 먹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만들었다.
김치부침개 일부는 타고 유부초밥에 밥이 안 들어가서 꾸역꾸역 넣느라 애썼는데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만들었다. 다 같이 둘러앉아 맛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날 힐리와 푸미는 후한 점수를 줬다. 정말 마음이 착한 친구들이다.
나와 푸미는 룸메이트이고 나와 쿠코 언니는 클래스 메이트다. 푸미와 쿠코 언니는 몰타로 넘어오는 비행기에서부터 친해졌고 우리 셋은 배를 타고 무박으로 시칠리아 여행도 갔다 오고 또 쿠코 언니네 플랫 친구들과 폭죽놀이 축제도 같이 간 적도 있을 만큼 많은 것을 함께 했다.
쿠코 언니는 우리를 자신의 공간으로 초대했기 때문에 이른 오후부터 카레를 열심히 준비해서 대접해줬다. 그리고 이때 당시 몰타의 상징적인 맥주인 Cisk도 내어주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체코인이자 쿠코 언니의 플랫 메이트인 니키가 왔다.
나와 푸미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던 니키는 빈손으로 오기 뭐해서 자신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레스토랑에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사 가지고 왔다. 비록 집에서 직접 만든 음식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마음 씀씀이가 감동이었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 대접해주는 쿠코 언니의 마음이 너무도 감사했다.
라라 덕분에 마유 짱과 친해졌다. 마유 짱은 처음 나와 인사를 할 때부터 나에게 많은 친절을 베풀어줬다. 내가 장염 때문에 학원 수업을 못 들은 날에는 일부로 푸미를 쫓아 우리 플랫에 와서 나의 안위를 직접 살펴봐줬을 정도였다.
몰타 생활이 거의 끝나갈 무렵, 마유 짱은 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줬다. 마유 짱은 1년 동안 몰타에 있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우리처럼 플랫이나 홈스테이로 숙소를 정하지 않고 아예 렌트를 해버렸다. 그래서 1인이 살기에 넉넉한 플랫에 혼자 살았다.
그래서 마유 짱은 넓은 마음으로 푸미와 나나까지 함께 초대해줬다. 일본에서 직접 가져온 말차 가루와 도구를 가지고 직접 차를 만들어 줬다. 정석대로라면 말차와 함께 화과자 같은 달달한 디저트를 먹지만, 몰타에서는 구할 수 없어서 초콜릿과 다른 과자들로 대체해줬다.
일본에서라면 말차를 대접하는 것이 흔하디 흔한 모습이었겠지만 몰타에서는 마유 짱을 통해 볼 수 있는 희귀한 광경이었다. 그만큼 대접을 받는 거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냥 보낼 수는 없다면서 파스타까지 만들어줬다. 언젠가 한국 올 일 있으면 연락하라 했는데(AMN 말고는 아직까지 한국에 놀러 온 친구가 없다...) 진짜 오게 된다면 푸짐한 상차림 한번 대접해주고 싶을 정도로 너무 고마운 친구 중 한 명이다.
음식은 참 희한했다. 각자 다른 음식을 만들어 먹어도 같은 공간 안에서 대화를 나누며 먹는다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고, 함께 준비하고 만들어 먹는 즐거움을 알게 해 줬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정성과 노력이 들어간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모든 순간을 소중하게 만들어줬다.
나도 도구와 재료가 충분하지 못해서 친구들에게 보기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주지는 못했지만 이렇게라도 요리를 함께 나눠 먹을 수 있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었다. 정말 값진 경험이었다.
해외에 나갈 일이 있다면 다양한 문화를 가진 친구들과 함께 요리하고 마시고 먹고 즐기고 하는 일을 꼭 해봤으면 한다. 꼭 우리의 문화를 알리려 한다기보다 그냥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한 단계 더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스시'는 '초밥'이라 할 수 있었지만 그때의 경험을 그대로 살려 스시로 표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