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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밀리H Dec 22. 2021

착각의 늪

다 품어 줄 거란 착각


회사에서 상사한테 까이거나 거래처 문제 등으로 인해 골머리를 썩인 날이면 술친구가 생각날 때가 있어요.


지금 화가 나고 괴로운 감정들을 맨 정신에 풀어놓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 비참해져서 술기운을 빌리고 싶을 때 친구가 생각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런 감정 상태일 때 부르면 나와주는 친구 한 명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지 점차 나이를 먹으면서 깨닫게 됩니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거나 피폐해질 때 한 명이라도 옆에 있으면 많은 힘을 얻을 수 있어요. 그 대상이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연인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는데, 누가 됐든 마음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혼자 있기보다 마음으로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엄청난 행복이라는 걸 느껴요. 


하지만 대부분이 고민해 봤을 인생 난제가 하나 있어요.


평소에 이성친구가 있으면 연락 한 번 하지 않다가 헤어지고 나면 위로해 달라고 연락 와서 마음 아픈 얘기만 주야장천 하는 사람들이 꼭 있어요. 물론 친구 사이에 무엇 때문에 헤어졌는지,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등의 이야기를 백번이고 천 번이고 들어줄 수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마음으로 듣고 공감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계속 이러한 일을 반복하면 지칠 수밖에 없어요. 


얘는 나를 아무 얘기나 다 들어주는 사람이라 생각해서 이럴 때만 와서 기대는 걸까?

나는 이번 생에 주어진 임무가 이 사람의 감정 쓰레기통인 건가?  

내가 전생에 이 친구 쿠션이었나?


그리고 나는 사준다고 한 적도 없는데 계산할 때는 미적거리다가 내가 결제수단을 꺼내면 고맙다는 소리와 함께 못을 박고 나가는 돈에 인색한 모습을 보면 그렇게 밉상일 수가 없어요. 뜬금없이 내가 있는 곳으로 와서 밥 먹자고 하면서 밥을 사야 하는 것처럼 만든다거나, 먼저 만나자고 해놓고선 가보고 싶은 장소는 다른 사람이 고르게 만든 다음에 별로였다고 얘기하면서 더치페이하기 미안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꼭 이러는 사람들이 원하는 기업에 합격을 했거나, 직장에서 승진을 한 경우에도 자신의 돈이 나갈 거 같아서 입 꾹 다물고 있는 경우도 많아요.


오랜 기간 주머니 사정이 좋지 못한 걸 아는 경우에는 그 친구가 눈치를 보거나 괜히 주눅이 들지 않도록 배려를 해줍니다. 하지만 자신의 처지가 좋지 못한걸 주변 친구들이 다 아니까 알아서 편의를 봐주고 이해해 줄 거라 생각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그래서 친구의 현재 사정을 알고 이해해 준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누구나 똑같은 인간인지라 매번 꾸준하게 같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힘들 수밖에 없어요. 


 '원래 그런 친구', '원래 그랬던 애'로 낙인찍히는 것이 상관없다면 그것도 그 친구의 선택이었다고 넘어갈 수 있지만,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친구니까 다 공감해 줄 거고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누그러질 문제'라고 가볍게 여기면 모든 말을 잃게 돼요.


모든 사람들이 남의 이해를 바라고 행동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주변에 누군가가 납득도 안되고 공감도 얻지 못할 행동을 하고 와서 자기편이 되어달라고 하면 난감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 행동이 엄청난 죄를 지은 것이 아니어도 찝찝한 감정이 들 때가 있습니다. 


설령 시간이 지나면 친구도 나도 마음이 누그러지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이것도 점점 쌓이면 듣기만 한 입장에서 걱정만 쌓여가요.


친구는 무조건적으로 칭찬을 하거나 같이 슬퍼해주면서 응원을 하는 치어리더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친구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더라도 마음을 들여다보고 힐링시켜 주는 만능 치료사가 결코 아니에요.


내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면 친구는 나를 보고 속 좁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예전에는 안 그러던 친구가 어디서 이상한 것들만 배워왔다면서 서로 변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가가호호 웃으면서 지낼 때는 나와 잘 맞는 사람인 거 같고 모든 게 다 좋고 그런데 점차 여러 일들이 쌓여가면 긴가민가한 관계가 됩니다. 



너 왜 이렇게 변했어? 내가 알던 네가 맞아?


아니, 네가 나를 잘못 알고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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