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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밀리H Dec 22. 2021

뜬금없이

선자불래 내자불선


선자불래 내자불선 : 좋은 뜻을 가진 사람은 쉽게 찾아오지 않고 제 발로 찾아온 사람은 좋은 뜻을 갖고 찾아온 것이 아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굉장히 반갑고 잊고 지냈던 지난날의 좋은 기억들을 꺼내보게 만들어요. 연락 안 하고 지낸 시간이 있고, 그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변화가 있었겠지만 그래도 한때 함께 했던 친구는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 남는 거 같아요.


그런데 반가움도 잠시,


친구가 건네는 보험 상품 또는 카드 관련 안내 책자나 옥장판 화장품 등이 친구들 가방에 줄줄이 나오기 시작하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껴요.

 

그냥 순수하게 옛 추억이 그립고 같이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연락한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흐름에 두뇌 회전 경로를 다시 설정하려고 애를 써요. 하지만 이미 나의 사고는 오래된 추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 있기 때문에 친구들이 쳐놓은 덫에 그냥 걸려 들어가고 말아요.


이 친구는 단단히 마음먹고 움직이는 일이기 때문에 쉽게 떨쳐낼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에요. 안된다고 말하고 싶은데 자꾸 옛정을 들먹거리면 마음이 약해지고, 어렵게 거절하는 말을 했더니 옛날이랑 많이 변했다면서 오기가 생기게끔 만들어요. 


분명 내 기억에는, 추억 속에는 없는 얘기들인데 박박 우기면서 어떻게 해서든 엮어보려 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달리 쳐낼 방법이 없어 난감하기만 합니다. 

  

그래... 오죽하면 나한테까지 찾아왔을까?  

이렇게 노력하는 친구의 모습이 안타깝고 애처로워 보여요.


별의별 생각을 다하면서 눈을 떠보니 돈이 새 나가는 곳이 더 늘었어요. 속았다거나 당했다는 느낌이 들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기 때문에 큰 교훈으로 삼고 마음속에 있는 그 친구와의 기억들을 지우게 됩니다. 


반면에 물품을 강매하려 하는 행위가 아니라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과 전혀 상관없는 일 즉, 종교를 믿게끔 강요하거나 특정 단체에 가입하라고 종용하는 일이 생기면 난감하면서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합니다. 


얘는 나를 뭘로 보고 이러는 걸까? 내가 강매나 당하는 사람 좋은 호구로 보이는 걸까?


진짜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다면 급작스럽게 찾아오는 일도 없었을 거고, 오히려 내가 먼저 도움을 주려고 무진장 애를 썼을 거라면서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해요. 지금까지 인생 헛살았나 싶기도 하고 지금 친하게 지내고 있는 주변 친구들도 언제 어떻게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어지러워져요. 


먼저 베푸는 마음으로 주변을 도우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런 소문 듣고 찾아와서 나를 괴롭게 하는 일들이 모두 원망스럽고 짜증스러워요. 


이런 일들이 쌓여가면 사람 쉽게 믿는 거 아니라면서 점점 사람을 의심하게 돼요. 


역시 친구 사이는 한때 누구보다 가깝게 지내고 수많은 비밀과 약속을 공유하지만 법적으로 얽혀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관계가 한없이 가벼워요. 종이도 수십 장 쌓아두면 무게가 꽤 나간다는데, 가벼운 한숨에도 뒤집히는 종이짝 같은 마음을 들여다보면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역시나...' 


모든 친구들이 나쁜 마음으로 접근하는 건 아니겠지만 역시 좋은 건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닌가 봐요. 


씁쓸하지만 오늘도 선자불래 내자불선을 마음속에 가득 새겨봅니다.


세상은 따뜻한 듯 많이 추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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