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순미 Nov 22. 2022

그분들을 거울삼아

뜨헙! 누수가 탐지됐어요

우리 거실에서 누수가 발생해 아랫집 천장에 볼썽사나운 얼룩이 생겼다. 누수 탐지 후 공사를 마치고 내려가 뵈니 더이상 번지지 않는다고 안심하셨다. 오줌 싼 이불처럼 지름 100cm 누런 천장이라는 피해를 끼쳤으니 거실 도배를 해드리겠다고 제안다. 거실 외에 전체 도배를 원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 때문에 거실 도배를 먼저 거론하며 '거기까지'만 해드리겠다는 의미를 포함시킨 거였다.


어르신들은 오래된 집 도배만 하는 것도 우습다며 사양하셨다.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마음이 놓이면서 계산 먼저 두드린 속마음이 멋쩍어 민구스러웠다.

송구한 마음에 직접 견적을 은 후 도배비를 들고 다시 방문했더니 한사코 거절하셨다. 이웃끼리 야박하게 살지 말자고 거듭 물리시며 가지고 간 음료수만 고맙게 받겠다고 신경쓰지 말라셨다.


한 집은 천장으로 또 한 집은 바닥으로 사용하는 콘크리트 막 사이 뜻하지 않은 누수와 함께 흐른 것은 배려와 인정이었다. 정도 이상의 보상이라는 한랭전선을 예상했건만 가볍게 빗나간 그 자리엔 보기 드문 온난전선이 가랜드처럼 걸려 있었다. 일반적으로 공동 주택 이웃이라 하면 건성 목례나 본숭만숭, 불편한 감정을 빌미로 한 옥신각신 따위를 연상하십상인데 의외였다.


문제가 발생한 이웃 이에서 오갈 수 있는 이례적인 예우는 드물거라 생각했다. 요구와 수용의 차이 때문에 원수가 될 확률이 높다동그라미 치고 한도 이상까지 요구할까 봐 고민했건만 의외의 온정에 그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공동 주택의 위층 아래층이 겪는 여러 갈등을 보아온 터라 누수 문제가 독이 되지 않을까를 먼저 떠올리고 이웃의 향기는 아예 열외로 떼어 놓았던 것이다.


세상살이 메마르고 각박해졌다지만 아직은 이해가 충만공간이었다. 이웃세워 온기를 나눈 아랫집 덕분옹색하게 굳어있던 마음이 융숭해지는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난데없는 지출 어떡하냐고 우리 집 공사비를 걱정해주신 아랫집 어르신들께 아량을 베푸는 태도를 배우며 마음이 훈훈하게 일렁였다.


수해다 화재터지면 곧장 달려가 복구에 힘을 보태는 분들도 수두룩지 않은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 때, 눈물 날 때, 노심초사할 때 나와 어떤 관계도 아닌 사람들이 달려와 곁에 있어 준다는 건 마음 깊숙한 곳에 일어설 힘을 놓아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웃의 폐허를 일으켜 세우는데 자신의 무한한 마음을 아낌없이 쓰겠다는 들이 보탠 힘은 혼자 잘 사는 세상은 없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소한의 삶을 살면서도 이웃과 나눔을 놓지 않았던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부부같은 나의 이웃에 감사와 경의를 보낸다.

이전 17화 실수가 쏜 선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