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주꾸미 낚시를 다녀온 날에 큰 놈으로 골라 담은 후 아랫집으로 내려갔다. 누수 문제로 신경쓰이게 했음에도 널리 이해해주신 아랫집에 어떻게든 감사한 맘을 전하는 게 도리이지 싶어 선별하여 골라 담았다. 마침 귀가 중이던 딸이 초인종을 누르려던 내게 뉘시냐기에 13층에서 왔다고 했더니 부모님이 여행 중이시라 대신 전하겠다 하여 주꾸미를 건넨 후 저벅저벅 올라왔다.
'헙뜨! 여긴 어디?'
12층 아랫집에서 올라왔으니 13층 우리 집이어야 맞는데 자전거가 있고 대형 빈 화분이 보이는 게 분위기가 영 수상쩍었다. 현관문을 올려다보니 15층이다.
'분명 한 층 올라왔는데?'
되짚어 내려오니 좀 전에 주꾸미를 전하며 아랫집이라 생각한 그 집이 맞고 대문에는 14층이라 박혀 있다. 아뿔사, 12층으로 내려가야 할 발걸음이 무심하게 14층을 향했던 것이다. 큰 놈으로 골라담은 주꾸미를 윗집에 전달한 셈이다.
'하이고, 이거 참! 난감허네'
몹쓸 주술에 걸린 듯 정신이 혼미하고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사정을 전해들은 남편은 웃음 반 어이없음 반으로 주꾸미 한 팩을 더 만들어 아랫집으로 다시 보냈다. 아랫집으로 내려가 감사한 마음 담아 전해드리니 갓 잡아, 싱싱한 주꾸미는 처음이라며 귀한 걸 받는다고 고마워하셨다. 아랫집 윗집 다 챙겼는데 가장 가까운 앞집만 생략할 수 없어 앞집도 나눠드렸다. 정신없이 배송하고 앉았는데 가벼워야 할 기분이 막막하고 찜찜했다. 치매 아닌가 싶은 생각에 소름이 쫘악 돋았기 때문이다. 넋이 나가 앉았으니
"사람 참! 뭘 그걸 갖고, 괜찮어 괜찮어."
별일 아니라는 위로에 혼비백산 흩어진 정신머리가 슬쩍 웃음기를 되찾았지만 엉뚱한 실수에 좀 쫄은 건 사실이다. 그렇게 나눈 주꾸미는 찰밥으로, 고구마로, 대봉감으로 되돌아왔다.
아마도 그날의 실수는 여러 이웃과 친해지라는 계시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랫집에서 받은 따뜻함으로 부드러워진 마음을 윗집, 앞집까지 베풀어 전하라는 의미로 해석하니 의도하지 않은 발걸음이었지만 실수라고 탓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나눌 수 있을 때 나눠야지 정작 나눌 수 없을 때 덜 부끄럽고 덜 아프지 않을까, 싶었다.
아랫집의 온정은 나를 훈훈하게 만들었고, 훈훈해진 나는 이웃을 돌아볼 수 있었으며, 그 이웃은 다시 나에게 마음을 퍼주었다. 억지와 갈등이 끼어들 수 있었지만 기꺼이 손 내밀어 호의를 베푼 아랫집 덕분에 의심 많은 난 다수의 선의를 믿게 되었다.
어떤 피해도 끼치지 않으면서 어떤 선의도 바라지 않을 거란 결심은 '살다 보면' 모호한 다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면서도 변화와 불신이 자꾸 그쪽으로 몰아갈 때면 엉겁결에 방어벽부터 쳤던 것 같다. 들쭉날쭉 제각각인 마음들에서 의심과 불신을 걷어 내면 높낮이가 같은 마음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런가 무심하게 잘못 내딛은 발걸음이 오히려 돋보이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