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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Oct 31. 2021

퇴사 콘텐츠들을 보면서 느낀 생각들

직장 생활 소고

나는 소위 경단녀였다.

게다가 그 경력이라는 것도, 우리나라가 아닌 타국에서 쌓은 커리어인 데다가, 서비스직이었다.

그러니 한국에서 사무직으로 일자리를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지금은 입사지원서에 결혼 여부를 묻지 못하게 되어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입사지원서에 미혼, 기혼을 표기하는 란이 버젓이 있는 경우가 많았고, 면접에서는 아이는 누가 돌보냐는 질문을 안 받은 적이 없었다.


그렇게 1년에 가까운 구직활동 끝에,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을 했다.

집안 일과 달리 회사에서의 일은 완성물이 눈에 보이고, 그에 대한 대가가 주어진다.

고등학교를 졸업 전부터 일을 시작하고, 대학 내내 과외며 알바를 쉬어본 적이 없던 데다, 회사도 졸업 전에 입사를 했다.

바쁘게 살아가는데 익숙했고, 내가 돈을 벌어서 내가 쓰는 것이 편했다.

결혼을 하고 내가 맞닥뜨린 불편함은 돈이 없어서만은 아니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커피 한잔 사 마시면서 느꼈던 남편에 대한 미안함은 덜했겠다만, 보다 근본적인 불편함은 그 돈이 내가 번 돈이 아니었다는 데 있었다.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사실 굳이 취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 나에게 했던 말처럼 아이들도 어린데, 재테크를 하던가, 아니면, 과외, 파트타임 알바를 해도 된다.

왜 굳이 회사에 취업을 하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일단 재테크는 종잣돈은커녕 생활비도 모 잘랐던 당시 나에게는 딴 세상 이야기였고, 과외는 첫 단추가 잘못 꿰인 사건이 있기도 했다만, 내가 원하는 길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알바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다.


퇴사 관련 콘텐츠들을 보다 보면,

내가 이 정도 열정으로 일을 하는데 내 몫은 그만큼 주어지지 않는다.

일을 내 뜻대로 할 수 없다.

- 위에서 시키는 대로, 정치적 논리에 따라 하게 된다.

일이 의미가 없다.

▲하루에 왔다 갔다 왕복 교통 시간을 포함하면 거의 11시간을 회사에 메이게 된다.

▲결국, 우리는 대체될 수 있는 부품이다.

등의 이유들이 나온다.


다만,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발목을 잡는다고 말한다.


경단녀로 2년을 보냈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큰 아이 임신을 했을 때 만났던 동생은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오래 하고 마찬가지로 결혼을 하면서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 당시 만나던 엄마들이 대게 아이가 초등학교 5~6학년쯤 돼서 혼자 라면은 끓여먹을 수 있겠다 싶을 시점에는 다들 일을 하겠다고 나왔다. 풀타임은 아니더라도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엄마들이 대부분이 었는데,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하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동생은 저녁에 지는 노을만 보면 눈물이 나왔다고 한다.

오늘도 나의 하루가 이렇게 지는구나 싶어서.


물론 내 일을 한다면 더 보람되긴 할 것 같다.

회사일은 결국 사장님일 해주는 거니까.

그런데 내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경제적인 보상으로 환산되지 않는,

그러니까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일들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충분한 성취감을 주지 못했다.

그 동생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했고, 그게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어야 한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 살림을 야무지게 하는 일은 중요하다만, '돈'이라는 사회적인 교환수단으로 평가되지 않는 노동은 나와 그 동생에게는 충분한 삶의 의미가 되지 못했다.


회사에서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다양하다.

아이 이야기, 남편 이야기, 가정 대소사 외에도, 재테크, 최신 트렌드나 뉴스, 그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들을 나눌 수 있다.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는, 일을 하건 하지 않건 만들 수 있지만, 내가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달라진다.

관심사가 가정에서 가정 외의 것들로도 확장이 된다.

나는 결국 아이들도 자기 앞가림을 자기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의라서, 아이들의 관심사를 지원해주고 응원하겠다만, 아이들의 일에 지나치게 내 열정을 쏟고 싶지도 않다. 

결국 자기가 하고 싶어야 하고 자기가 몸으로 느껴야 알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대화중 아이들 이야기는 일부이다. 

나는 '세상 사는 이야기'를 듣고 싶고 말하고 싶다.


출퇴근 시간과 회사에서 온전히 붙잡여 있는 시간을 생각하면, 그 시간이 아깝긴 하다.

하루의 대부분이 '나의 일'이 아닌 '남의 일'로 채워지는 데다, 그 일을 내 뜻대로 할 수도 없다.

가끔은 하찮고 부질없는 일에 매달려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볼 때 자괴감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회사에서 나에게 지불하는 금액이, 내가 스스로 일을 했을 때보다 더 많다고 생각한다.

나는 하루에 11시간을 회사(+왕복시간)에서 보내지만, 바깥세상에 나오게 되면 그게 11시간이 아니라 15~16시간이 될 수 있다. 물리적으로 일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머릿속에는 '일'에 대한 생각이 끊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 일은 내 일이니까.

내가 일에 메여있는 시간을 고려했을 때, 11시간에 지금의 내 보수는 꽤 괜찮은 것일 수도 있다.


회사에서는 주어진 일을 하게 되고, 내 일은 나 이외의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인 것은 맞다.

하루에 11시간을 회사에서 소비하고, 막상 집에 오면, 남과 다른 나만의 비기를 개발할 마음의 여유도 없다.

그러나, 비단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은 둘째 치더라도,

직장을 다니지 않고, 나만의 비기를 개발하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


아침에 눈을 뜨고, 회사로 출근하는 루틴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된다.

사람마다 다르겠다만, 나는 꽤나 게을러서, 강제로 나를 바깥으로 끌어내지 않으면, 일상을 제대로 지키기가 어렵다.

아침에 책 읽기, 수요일 저녁에는 영어 스터디, 이런 루틴들은 회사 생활과 더불어 A를 하면 B가 연결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있다.

내가 회사를 안 다닌다면? 자기 계발을 더 열심히 할까?

아닐 것 같다.


회사가 분명히 안 맞는 사람이 있다.

재주가 많고, 자기 생각이 분명한 사람들은, 의미 없는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일이 많아서 힘든 게 아니라 일에 보람이 없어서 힘들다.

그렇지만, 일에 대한 보람, 만족, 자아성취는 나중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과 나를 분리하고, 회사에서 내가 배울 수 있는 점, 얻을 수 있는 점을 생각해보자.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정보를 나눌 수 있으며, 괜찮은 동료들에게 자극을 받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아침에 일어나서 무언가를 하게 만든다.

나에게는 이런 이유들이,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소중했던 것 같다.


그러니, 퇴사를 권유하는 콘텐츠에 마음이 흔들리거든,

그 생각이 나의 생각인지, 지은이의 생각인지를 구분해보자.

그리고 회사가 정말 '악의 축'인지,

내가 내 열정에 대해 그만한 보답을 못 받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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