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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토닥 Sep 13. 2024

집 나가고 싶어서 반값택배를 하다

밤이 되고 택배 박스를 집어 들고나갈 준비를 한다



4개월 그녀와 집에서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다. 

즉 외출을 하려면 그녀의 준비물도 챙겨야 한다는 말이다.

병원에 검진을 하러 첫 외출을 앞두고 

준비물 가방을 싸다가 외출이 쉽지 않음을 느꼈다.

하지만 이제 슬슬 계절은 바뀌어가고 

나도 인간인지라 집에만 있으면 답답했다.


아직 덥지만 4개월 그녀를 재우고 나면

창문 너머로 들리는 귀뚜라미 소리로 예측하건대

조금은 선선해졌으리라.


근데 그냥 나가자니 뭔가 아쉬웠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당근 앱.


마침 4개월 그녀와의 이해할 수 없는 옹알이 대화가 아닌

성인과의 의사소통이 되는 대화가 하고 싶었다.

굳이 말이 아니어도 텍스트라도 말이다.


4개월 그녀가 이제 슬슬 기어 다니기 시작하니 

집에 있던 그녀에게 위협이 될만한 각진 물건, 

기어 다니는 공간 확보를 위한 물건들을 당근에 올리기 시작했다.


깔끔하게 사진을 찍어서 상세한 설명과 함께 당근에 올리면

내 주변의 불특정 다수 중 이 물건이 필요한 누군가에게서 연락이 온다.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 

물어보는 것에 대답을 하고

서로의 니즈가 맞다면 거래가 성사된다.


4개월 그녀와의 육아로 대부분 문고리 거래로 이뤄지지만

집에서 나가고 싶은 나는 편의점 반값 택배를 원하는 분께는

흔쾌히 오케이를 외친다.


편의점 택배앱에서 예약하고 그녀를  재워본다.

유난히 오래 걸리는 것만 같은 그녀의 꿈나라행을 

최종 확인하고 나면 슬슬 외출준비를 한다.


설레는 마음과 택배박스를 안고 편의점으로 향한다. 


택배를 접수하고 

피곤해 보이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내가 만난 오늘 첫 어른임에 감사함을 느끼며

최대한 밝게 웃으며 하는 얕은 대화도 좋다.


"(방긋방긋) 안녕하세요. 편의점 반값택배 접수하려고요."

"네, 큐알코드 보여주세요."

"(큐알코드 보여주며)네네. 저기서 접수하고 왔어요.(히히 나 잘했죠?)"

"네."

"추석연휴라 좀 배송이 걸리겠죠?(더 말하고 싶다. 대답해 줄래?)"

"아마도. 그럴 거 같네요. 접수완료했습니다."

"오, 감사합니다."

"네."

"(쭈뼛쭈뼛) 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세요."

"(약간 놀란 눈으로)아, 네. 감사합니다."


구매자에게 송장번호까지 공유하고 나면 

외출의 목적이 끝나고

다시 4개월 그녀의 엄마로 돌아온다.


당근에서 잠재적 구매자들과의 간단한 채팅

편의점 가는 길에 느끼는 밤공기의 서늘함

물건을 거래완료하고 생기는 약간의 경제력

모두 좋다.


밤에 홀연히 편의점에 가면

4개월 그녀의 엄마가 아닌

4분 성인 여자가 되어

맥주도 (모유수유 중이라 구매는 하지 않음)

신상 편의점 아이템들도 구경한다.


한여름밤의 꿈처럼 편의점 외출이 끝나면

다시 4개월 그녀의 꿈나라행을 재확인하고

주섬주섬 육아 흔적을 정리하고

기저귀를 채워 넣으며

내일의 육아를 준비해 본다.



[마음토닥 쿠키]

항상 글 말미에 영화의 쿠키 영상처럼 쿠키 사진을 넣고자 합니다. 이번 화의 쿠키 사진은 최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앱인 당근에서의 '당근홀릭'배지입니다. 한 달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당근을 방문하면 주는 배지라고 했다. 카카오톡보다 더 당근을 많이 보게 된 건 육아용품을 득템 하기 위함도 있지만 내 물건을 올리면서 연락 오는 사람들과의 가벼운 대화도 좋기 때문이다. 특히 모유수유를 하며 잠깐 할 수 있는 매력이 좋았다. 약간 당근중독 같기도 해서 자제하기도 했던 시절도 있었다. 쇼핑중독처럼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육아스트레스를 당근으로 풀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다음 화에서 자세히 다뤄봐야겠다.


오늘은 방긋방긋 웃는 하루 보내세요.

오늘도 마음 토닥토닥하세요.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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