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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룡이 Feb 25. 2018

치열했던 20대의 흔적 같은 자궁근종

 자궁근종은 혼자 겪는 일이 아니였어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는 남편과 함께 이 정보를 나눠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임신과 출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아니었어요. 하, 벌써부터 한숨이 나오네요. 남편의 금주령이었습니다. 맛있는 음식과 향기로운 술의 조합은 인생의 몇 가지 확실한 기쁨이 경험인데 이를 못하게 했다니까요! 거기에 몇 가지 생활 습관도 고쳐야 했습니다. 예를 들면 카페인이 들어있는 음료나 음식을 끊던지, 화학제품 사용을 피하던지, 붉은 육고기나 유제품 종류의 섭취를 줄이는 것들이었죠. 미국에서 암세포학을 전공하고 박사 과정까지 마친 남편이니 그가 하는 말을 듣지 않으면 의사 말을 무시하는 것과 유사할지도 몰라요. 어쨋든 단연코 말씀드리는 건 ‘금주’는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중 하나예요. 작년 여름에는 더운 날씨에 시원한 맥주가 너무 간절해서 길거리에서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고 집에 갔다니까요. 물론 남편은 귀신같이 ‘맥주 냄새가 나는데?’라고 했지만 저는 모르는 척 ‘무슨 소리야.’하고 부엌으로 갔던 적이 있어요.  




남편의 금주령 때문에
길거리에서 맥주를 마시고 집에 간 적도 있어요.




 찔리지만 남편의 금주령을 비롯한 습관 개선이 필요한 건 사실이에요. 사무실이란 공간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꼬박 4년을 일하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도 스트레스를 극도로 받았습니다. 그동안 거의 매일 술을 마셨고 남편은 이 모든 과정을 알고 있습니다. 제 사무실 자리에 버려진 커피잔으로는 산도 쌓을 수 있어요. 이렇게 인간관계와 스트레스를 술과 건강하지 못한 음식, 불규칙한 생활 습관으로 해소하려 했어요. 아마 근종을 발견하기 전까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순간의 행동들이 모여 하루를 이루고 인생을 만든다는 말이 이런 걸까요. 근종은 마치 제 지난 20대의 흔적 같습니다. 근종은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엇보다 근종 제거술을 받았다 하더라도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근종이 재발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죠. 미약하지만 제가 실천하고 있는 몇 가지 규칙을 이야기해볼게요.



근종은 마치 제 지난 20대의 흔적 같습니다.




절대 술을 끊지 않습니다.  

근종을 발견하기 전 데이트의 흔적에는 술이 빠지질 않았습니다.


 알코올은 여성의 암 발생 확률을 부쩍 높여주고 혈중 콜레스테롤을 높이는 등 비만에도 영향을 미쳐 자궁근종에 매우 좋지 않습니다. 매우 중요한 사실임을 머릿속으론 알지만 실천하기가 너무나 힘들었어요. 그래서 부부싸움을 할 때 속상한 마음을 표면에 내세워 공식적으로 술을 ‘왕창’ 먹기도 했어요.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받고 술은 술대로 먹는 결과가 어느 순간 지치더군요. 그래서 저는 ‘절대 술을 끊진 않겠다. 다만 내가 마시고 싶을 때 조금씩 마시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주 1회, 작은 와인잔으로 2잔 이상 마시지 않도록 기준을 마련했습니다. 소주를 마시고 싶을 때는 작은 잔에 따라 10번가량 나눠 마시거나 무알콜 맥주를 사서 분위기만 냅니다. 술 마신 날과 양을 기록하는 알코올 다이어리도 기록하고 있어요.  



주 1회, 작은 와인잔으로 2잔 이상
마시지 않도록 스스로와 약속했습니다.







  카페인은 피합니다.


  커피잔으로 산을 쌓을 수도 있다고 했던 이야기 기억하시죠? 커피를 마시는 원인은 카페인의 각성 효과도 있지만 커피의 향과 맛을 원하는 습관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커피 2잔 이상을 매일 마시는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에스트로겐 수치가 더 높습니다.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거나 불균형하면 근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 거기에 카페인 과다 섭취는 난소에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생리통과 생리 시 출혈을 심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다행히 요즘엔 스타벅스, 탐앤탐스, 커피빈에도 디카페인 커피 원두로 만든 제조 커피를 통해 커피의 향과 맛을 즐길 수 있어요. 스타벅스에서 처음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소리를 질렀어요. 안전하게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신세계가 저에게 펼쳐진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지금도 노트북 옆에는 디카페인 커피가 있습니다. 집에선 디카페인 인스턴트커피를 비축해뒀어요.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하는 나의 반쪽, 디카페인 커피와 녹차입니다.





 적당한 몸매를 유지합니다.


167 cm에 50kg 중반대 몸무게를 가지고 있어서 누가 봐도 날씬하거나 마르진 않았어요. 아시다시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제가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라 날씬한 몸은 생각도 안 합니다. 날씬한 즐거움보단 맛있는 음식이 주는 즐거움이 저에겐 더 크니까요. 하지만 뚱뚱하진 않습니다. 아니, 뚱뚱해지면 안 됩니다.

 신체 비만도가 높은 사람은 자궁근종이 더 많이, 더 크게, 더 빨리 자랄 수 있어요. 제 담당 의사 선생님도 ‘체중 조절은 꼭 하셔야 합니다.’라고 하셨어요. 만약 자궁 근종 제거술을 실시했다 하더라도 비만도가 높아지면 근종의 재발 확률도 높아집니다. 거기에 비만은 자궁내막암 발생 확률도 높입니다. 그래서 운동과 식이요법이 꼭 병행되어야 하죠. 실제로 백인, 흑인 여성이 동양 여성에 비해 자궁 근종 발병률이 높은 이유 중 하나가 높은 비만도 때문입니다. 유전적인 특성도 있겠지만 다량의 설탕과 고기 섭취가 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날씬하거나 마르지 않아도
뚱뚱해지면 안 됩니다.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즐겁고 건강한 식사를 합니다. 


  한참 식습관 개선에 빠져 있을 때는 6개월 넘는 기간 동안 붉은 육고기는 아예 먹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해산물이나 채식 위주로 식사하고 파이토 에스트로겐이 다량 함유된 콩도 먹지 않았어요. 식재료의 성분과 GI, GL 등도 분석하여 먹었습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니 ‘무얼 먹어야 하나.’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근종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명확히 분류되는 식재료는 극소수에 불과한 데다 일부 성분들은 아직 구체적인 연관성이 없는 게 진실입니다. 극도의 불안감에 제가 빠져 허우적거리는 꼴이었죠.

 그래서 적게 먹을수록 좋은 음식을 제외하고는 골고루, 적게 먹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식사를 챙길 때는 현미밥, 통곡식 위주로 반공기만 먹고 채소 반찬을 많이 먹으려고 합니다. 채소는 파이토 에스트로겐이 높은 식재료는 피하고, 고기가 먹고 싶다면 붉은 육고기 대신 조류를 먹습니다. 인스턴트 가공 식품을 선택할 경우에는 뒷면을 확인하여 성분을 체크하고 지방이 적은 상품, 인공 재료가 비교적 적은 것들을 선택하고 플라스틱 용기보단 유리 용기에 들어있는 상품을 구매하고 있습니다.



현미밥, 통곡식, 채소 반찬.
간단한 식단 주는 건강함




 물건은 ‘덜’ 삽니다.

 속물 같지만 제 위시리스트 중 하나는 '백화점'입니다. 그만큼 갖고 싶었던 물건이 많았다는 표현을 우스갯소리로 한 거예요. 아마 많은 여자들이 같은 마음 아닐까요. 원피스를 하나 사더라도 거기에 걸맞은 가방, 구두는 필수고 신상 귀고리도 반짝거리게 닳아줘야 외출할 맛이 나잖아요.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근종을 발견하고 물건을 사는 행위의 의미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근종의 측면에서만 살펴보면 생활 용품 속에 들어있는 화학 성분이 성 호르몬 변화를 구체적으로 얼마나, 어떻게 일으키는지 밝히는 자료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저 관계를 유추할 뿐이죠.  

집에서 사용하는 친환경 제품 중 일부입니다.

 하지만 넓게 보면 우리가 먹는 음식, 입는 옷, 들이마시는 공기를 통해 노출되는 유해 물질이 우리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근종이 ‘유해 물질’로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 없습니다. 유통기한을 길게 해서 재고 걱정을 줄이고 싶어서 넣는 보존제, 빨래를 더 하얗게 보이게 하기 위해 넣는 형광성 물질, 생리혈을 더 빨리 흡수하려고 넣은 고분자 흡수체 등은 우리 생활을 좀 더 편안하게 만들죠. 동시에 유독 가스를 공기 중에 내보내고 피부 알레르기를 일으키고 땅 속에서 수백 년간 묻혀 지하수를 오염시킵니다. 환경을 오염시킨 만큼 우리가 그 피해를 돌려받는다고 생각해요.

 유해물질을 피하거나 환경을 '덜' 훼손하고 싶다면 약간의 불편함을 감내하면 됩니다. 일회용 생리대 대신 면 생리대를 쓰고 섬유 유연제 대신 식초를 쓰고 미세 플라스틱이 들어 있는 폼클렌징, 바디 워시, 실리콘 샴푸보다 물비누를 사용하고 방부제가 들어있는 화장품보단 방부제가 없는 화장품을 선택하면 돼요. 옷도 두, 세 벌 사는 것보다 한 벌만 사서 오래 입는 게 좋죠.  



저희 집에는 TV가 없습니다.

 저희 집에는 TV가 없습니다. 그러니 TV를 놓을 가구를 살 필요가 없어 새 가구에서 나오는 환경 호르몬이나 유독 가스에도 덜 노출될 거예요. 불필요한 성분이 함유된 상품이나 필요치 않은 물건 구매를 피하다 보니 단순하고 필수적인 상품을 찾게 되고 자연스레 ‘덜’ 소비하는 습관이 생깁니다.




쌈에는 무알콜 맥주, 야식은 과일, 커피는 디카페인을 마십니다!







 자궁근종을 예방하거나 성장을 억제, 재발을 방지하는 생활 습관이라고 해서 특별한 건 없죠? 편하게 이야기하면 편리함을 추구하는 생활보다는 불편하더라도 날 것에 가까운, 가공되지 않은 삶을 사는 방식이 자궁 근종을 다스리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책이나 신문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완벽하게 삶의 방식을 엄격하게 통제하잔 소리는 아닙니다. 보통의 사람이 각자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보통의 사람이 각자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으면





출처             

김태유. "암 예방을 위한 생활습관 개선." 대한내과학회지 65.1 (2003): 136-140.

강진경. "생활습관병의 개념." 대한내과학회지 65.1 (2003): 121-125.

리얼 푸드, 카페인, 어디에 얼마나 들어있을까?

Wise, Lauren A., et al. "Risk of uterine leiomyomata in relation to tobacco, alcohol and caffeine consumption in the Black Women's Health Study." Human reproduction 19.8 (2004): 1746-1754.

Livestrong , The Top Ten Worst Foods for a Uterine Fibroid

Livestrong, Seven Foods that may shrink fibroids

NIH 

레이철 카슨, 침묵의 봄.

린드세이 벅슨, 환경 호르몬의 역습.

이은주, 대한민국 좋은 화장품 나쁜 화장품

이은주, 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

이행신, et al. "한국인의 총 당류 섭취 실태 평가." Journal of Nutrition and Health 47.4 (2014): 268-276.

Baird, Donna Day, et al. "Uterine leiomyomata in relation to insulin-like growth factor-I, insulin, and diabetes." Epidemiology (Cambridge, Mass.) 20.4 (2009): 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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