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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남자 Feb 16. 2024

#20200507

‘오늘도 퇴근하고 운동 가요?’

‘응~ 모 특별한 일이 없으면 운동하러 가지’

‘그럼 오늘 운동 가지 말고 나랑 저녁 먹으면 안 돼?’

‘응? 오늘 레슨 있는 날인데? 취소 됐어?’

‘응~ 레슨 취소 돼서 뭐 사러 나왔다가 오빠랑 저녁 먹으려고~’

‘그래~ 그럼 퇴근하고 바로 나갈게’


오후에 갑자기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갑자기 레슨이 취소되었다고, 그래서 갑자기 나왔다고,

그리고 갑자기 저녁을 먹자고. 덩달아 나 역시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난 보통은 퇴근을 하면 운동을 하러 간다. 특별한 약속이 있지 않는 이상. 지난 연애가 끝난 이후로 거의 매일 운동을 하러 간다. 특별히 약속이 생기지도 않고 잡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아니, 솔직히 만날 사람도 거의 없긴 하다. 30대 중반의 아직 솔로, 싱글인 남자가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제외하곤 누군가를 만나는 것 자체가 그리 쉽지는 않다. 친구들은 모두 결혼을 해서 본인들의 가정에 충실하고 있고 난 그렇게 사회성이 좋은 편도 아니라서 두루두루 많은 사람을 알고 지내는 편도 아니다. 20대 초반에는 그랬던 거 같은데 어느 순간 모두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 이후론 나에게 그리고 내 주변 소수에게 집중하는 편으로 변했다. 아니 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어찌 보면 운동을 하러 가는 것이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누군가를 또 만나는 장소라서, 운동을 해서 몸을 만들어야겠다는 뚜렷한 목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같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특별히 야근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기도 하지만 오늘은 더더욱 하면 안 되기에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고 있는데 팀원 중 한 명이 지나가다가 한마디 건넨다.  


“팀장님 뭐 좋은 일 있으세요? 복권이라도 당첨되셨어요? 오전이랑 정말 다르신데요”

“무슨 말이지? 복권 당첨 번호는 항상 나를 피해 가는데”

“아니오. 뭔가 좋은 일이 있는 거처럼 보여서요. 오전엔 뭔가 넋이 나간 거 같은 느낌이었는데 ㅋ”

“아 그래? 단지 칼퇴를 하기 위해서 후다닥 하는 거뿐인데”

그런가 보다. 역시. 아무리 티를 안 내려고 노력을 해도 대단히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 근데 내가 오전에 이상했었나? 뭐 특별한 건 없었던 거 같은데.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나가는 나의 모습을 보고 아마 우리 팀원들은 약간 의아해했을 것이다. 평상시에는 어차피 운동하러 가는 거, 그리고 운동하는 곳이 사무실에서 멀지도 않아서 대단히 여유롭고 천천히 나가는 모습만 봐 왔을 테니.


횡단보도 맞은편에 커피집에 그녀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너무도 분명하게 보일 수 있게 창 측에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 모습. 그러다 횡단보고 건너편에 내가 서 있는 것을 보고 크게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 확실한 거 같다. 난 아마도 그녀를 많이 좋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어서 전달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고백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너무도 밝게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그녀에게. 주변의 시선 같은 거 아랑곳하지 않고.


“오래 기다리지 않았어?”

“아니야~ 나도 방금 왔어. 봐봐 커피 많이 남아 있는 거”

“아 그러네~ 나도 슬이 덕택에 오랜만에 여섯 시 땡 하자마자 나왔네”

“엥? 그럼 평상시에는?”

“어차피 운동하러 가니까. 운동하는 곳이 멀지 않거든 여기서. 그래서 그냥 쉬엄쉬엄 나오지~”

“그렇구나”

“근데 뭐 보고 있었어?”

“이 근처에 맛집 찾아보고 있었지~ 난 이 동네는 잘 모르니까. 어차피 오빠가 잘 알겠지만 그래도 심심풀이로”

“그래? 그래서 어디 맘에 드는 곳 찾으셨나요?”

“그냥 직장인들 많이 가는 그런 곳 가보고 싶어. 난 회사를 안 다녀 봤으니까~ 그런 분위기 궁금하기도 하거든”

“그래? 음.... 되게 시끄러울 텐데”

“괜찮아요~ 한번 가보는 거지 뭐”
 “그래~ 그럼 근처에 직장인들이 주로 가는 고깃집이 있는데 거기 가자~ 근데 옷에 냄새 많이 밸 수 있어. 머리카락에도”

“섬세하셔라~ 머리카락에도 냄새 배는 걸 걱정해 주고~ 여자 많이 만나 보셨나 봐요 ㅋ”

“어? 아니 그게 아니고 회사 여직원들이 그렇게 말하길래”

“ㅋㅋ 갑시다 배고픕니다”

“네”

왠지 ‘응’이라고 하면 안 될 거 같은 그런 상황적 느낌이었다.


“우와~ 이런 분위기였군. 대박ㅋ”

“오늘도 사람이 많네~ 대부분 직장인들은 퇴근하면 집에 가던가 아니면 회사 근처 식당에서 이렇게 저녁을 먹긴 해요”

“근데 사람 되게 많네~ 맛있는 집인가 보다”

“응~ 우리 팀도 가끔 회식할 때 오는데 요즘엔 회식을 통 못하고 있어서 나도 오랜만에 오는 듯”

그렇게 우리는 원형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고기를 굽기 위한 숯이 입장하고 주문한 돼지갈비와 맥주 한 병 그리고 주변엔 고기를 굽는 연기와 그 연기를 모두 잡아먹을 듯한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가득했다.

“너무 시끄럽지 않아?”

“ㅋㅋ 그냥 먹는데만 집중해야 할 듯~ 근데 오빠도 회사 사람들이랑 오면 저렇게 떠들면서 먹어?”

“아니~ 난 그냥 지금이랑 크게 차이는 없긴 해”

“하긴 상상이 안 가긴 하다~ 오빠가 저렇게 얼굴 벌게져서 크게 말하는 게”

“왜? 보고 싶어?”

“아니~ 그다지 궁금하진 않아 ㅋ 난 그냥 지금 그대로의 오빠의 모습이 좋으니까”

자욱한 연기와 시끄러움 속에서 마치 둘만의 방화벽을 세운 듯 서로에게 집중하면서 밥을 먹는 도중 그 방화벽을 깨는 이가 있었다.

“어 김팀장님 식사 중 이신가 보네요”

“아 네~ 팀장님 안녕하세요. 회식하세요?”

다른 팀이 옆 테이블에서 회식을 하는 듯했는데 맞았다. 유달리 아는 큰 목소리가 들렸었기에.

“네 회식은 아니고 그냥 가볍게 저녁 먹고 있어요, 팀장님도 식사하시나 보네~ 여자친구?”

“아…네 여자친구는 아직 아니고… 식사 맛있게 하세요. 내일 봬요”

“네 팀장님도요”

그렇게 자리에 다시 앉았는데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아무리 무딘 남자 사람도 느낄 수 있었다.

“회사 사람?”

“어.. 어 옆팀 팀장인데 회식하나 봐”

“아직은 아니고….라고 하던데”

“응? 무슨 말이야?”

“방금 저 사람한테 ‘여자친구는 아직은 아니고…’라고 한 거 같아서”

“아… 응 아직은 아니니까”

“응 그렇지. 아직은 아닌 게 틀린 말은 아니지”

“왜? 기분 나빴어?”

“아니야~ 먹자”

“응… “


고기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눈으로 들어가는지. 고기가 다 익었는지 탔는지 덜 익었는지. 그 시점부터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뭔가 큰 잘못을 한 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고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한 번은 해보고 싶은 경험이었어~ 직장인들의 삶. 내가 출근을 할 순 없으니”

“어땠어?”

“음…. 웃고 떠들고는 있는데 짠한 모습 ㅋ”

“ㅋㅋ 소름 돋게 정확한데”

“그래? 오빠도 그래?”

“나도 모 직장인이니 큰 차이는 없지 뭐. 비슷해”

“그래~ 오늘은 나 혼자 갈게. 오빠는 내일 또 출근해야 하니까. 아침에”

“괜찮은데~ 데려다줄게”

“아니야 다음에 주말에 만날 때, 아 그리고 나 이번주말엔 어버이날기념으로 부모님과 여행가”

“아 그렇구나. 그럼 혼자서 놀아야겠군”

“모 어차피 만나자는 말도 안 했었으면서 무슨 ㅋ”

“어…어? 음. 그러네”

“ㅋㅋ 어 택시 왔다. 나 갈게 오빠도 조심히 들어가”

“응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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