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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남자 Feb 09. 2024

#20200502

“오늘은 느낌이 많이 다른데요~”

“헤~ 오빠가 편하게 입고 오라고 해서. 레슨이 조금 늦게 끝나기도 했고요”

“잘했네요. 이런 스타일도 잘 어울리네요~ 역시 옷테가 남다르네요”

“오빠도 오늘은 되게 스타일이 다른데요”

모자를 쓰고 오버핏의 스웻셔츠 그리고 레깅스에 운동화를 신고 나온 그녀는 첫 만남의 포멀 한 느낌과 두 번째 만남의 캐주얼한 느낌과는 확연히 달랐다. 왠지 더 잘 맞는 옷을 입은 느낌.

“근데 우리 무슨 영화 봐요? 너무 무서운 영화는 싫은데”

“아 어떤 영화 본다고 내가 이야기 안 했어요? 미안해요 이런….”

“네~ 그냥 예매하고 알려 준다고 하고선 시간이랑 장소만 알려 줘서 물어볼까 하다가 그냥 말았는데, 무서운 건 아니지요?”

“네 아니에요~ 그냥 로맨틱 코미디예요”

“오~ 그럼 괜찮아요, 오빠 영화 볼 때 팝콘 먹어요? 살까요?”

“난 먹긴 하는데 어차피 광고와 예고편 나올 때 다 먹긴 해요 ㅋ 캐러멜 팝콘으로 하나 살까요?”

“그래요~ 팝콘도 오빠가 사줘요”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극장 안에도 사람이 많았고 상영관 안에도 사람이 많았다. 그렇게 그녀를 첫날 집에 데려다줄 때 이후로 처음으로 나란히 앉아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보다 조금 더 편한 자리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조금 더 가까이 앉아서.

영화 내용은 여느 로코가 그러하듯이 한 남녀의 사랑이야기였다. 서로 만나고 호감이 쌓여 가다가 조금의 오해가 생기고, 그 오해가 잘 해결되어 서로 연애를 하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 마치 우리의 이야기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고 가볍게 맥주 한잔과 저녁을 먹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극장 근처에 내가 종종 애용하던 식당이 있어서. 테이블이 세팅될 즈음해서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날 게 만나서 무슨 이야기했어요?”

“아~ 그냥 회사 이야기 사는 이야기 등등 잡담했지요. 근처에 외근이 있어서 왔다가 들렸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내 얘기는 안 했어요?”

“당연히 했죠 ㅋ 난 사실 그 녀석을 만난 이유가 슬이 이야기를 좀 듣고 싶어서 만난 거라서”

“내 이야기를 나한테 물어보면 되지 왜 게한테 물어봐요?”

“ㅎ 아니요 그냥 어떻게 아는 사이냐? 모 그런~ 알고 보니 초등학생 동창이었다면서요?”

“네~ 좀 신기했어요. 울 꼬맹이 어머님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어릴 때 이야기가 나왔고 마침 제가 살았던 동네에 사셨더라고요”

“아~ 신기한 우연이네요. 그래서 좀 더 이야기하다 보니 그놈과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걸 알게 되었네요”

“네~ 이름 듣고 긴가민가 했는데 실제로 보니 맞더라고요 ㅋ”

“그놈이 슬이한테 대시하려고 했는데 연상이 좋다고 철벽(?) 쳤다고 하던데요”

“그런 말도 해요? ㅋ 그게 뭐 자랑이라고. 근데 사실이긴 해요”


예전에 본 글 중에 시간의 상대성에 대해 가장 잘 표현했다고 생각되는 글이 있었다. 영국 bbc에서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런던에서 에든버러 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어떤 게 있을 까요?’라는 질문이었고 어떤 교통수단 및 허황된 답도 상관없다는 전제가 붙어 있었다. 대단히 뻔한 답들과 어이없을 정도로 황당한 답들 중에 1등으로 뽑힌 답은 바로 이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

바로 보자마자 드는 생각은 ‘모야’ 일 수 있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정말 로맨틱하면서 그럴듯한 답이 아닐 수 없다. 지금 현재 내가 느끼는 시간의 속도는 그런 거 같다. 아무것도 안 하고 함께 있는 시간도 좋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를 알아 나가는 시간이 더욱 좋았다.


“오빠는 연애가 뭐라고 생각해요?”

혼자만의 공상에 빠져 있는 즈음 대뜸 그녀가 질문을 던졌다.

“음… 항상 하고 있던 답이 있어서 어려운 질문은 아니네요~”

“뭔데요?”

“유치 찬란한 것”

“엥?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남들이 하면 유치한데 내가 하면 찬란한~ 언제나 그런 거 같더라고요. 다른 커플들의 이야기를 가끔 듣다 보면 ‘왜 저래’라고 손사래 쳐지는 말과 행동을 듣게 되지만 정작 내가 연애를 할 때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런 말과 행동들을 하고 있는”

“와~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알겠어요 ㅋ 오빠가 생각해 낸 말이에요?”

“아니에요~ 어디선가 주어 들은 말인데 맘에 들어서 기억하고 있어요. 슬이는요?”

“음… 전 서로가 서로에게 진실된 마음으로 위해 주는 것. 전 연애할 때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하는 거짓말도 싫더라고요. 그래서 연애상대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근데 상대방이 기분 나쁠 수 있는 부분이라 거짓 혹은 말을 안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렇죠~ 근데 그건 대부분 본인 생각 아닐까요? ‘내가 사실대로 말하면 상대방이 싫어할 거야’라는 생각 자체는. 저도 그 부분을 아예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전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사실 자체를 더 싫어하는 거 같아요. 그러니 오빠도 참고해 주세요”

“네? 아 네. 알겠어요~”

“오빠는 연애할 때 상대에게 바라는 무언가가 있어요?”

“난 모 특별히 없는데 하루 종일 바빠서 연락이 안 될 수도 있지만 집에 들어가면 들어갔다고 연락해 주는 것, 모 그 정도인 거 같아요”

“알겠어요 나도 참고할게요~근데 오빠는 언제까지 나에게 존댓말을 할 거예요? 오빠가 말을 그렇게 하니 나도 편하게 못하고 있는 중인데….”

“아 그래요? 음.. 난 그냥 크게 개의치 않고 있었는데 본의 아니게 불편하게 했군요. 그럼 지금부터 서로 동시에 말 편하게 할까요?”

“네 그래요~ 드디어 ㅋ”

“그래 그렇게 하자~ 슬이도 막 편하게 해도 돼”

“응~ 알겠어. 시간 좀 지나고 나서 이 말을 후회할 수도 있어~”

“얼마든지~ 시간이 이렇게 됐네. 이제 갈까? 오늘도 데려다줄게”

“응~”

집에 가는 길 이제 막에 완연하게 계절적으로 봄임을 느끼면서 나의 연애에도 봄이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슬슬 ‘고백의 타이밍을 언제로 해야 하나?’라는 혼자만의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그녀를 바래다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

“나 집에 들어왔어~ 오빠가 잘 바래다줘서 즐겁게”

집 앞까지 바래다줘도 집에 들어가면 연락 달라는 나의 당부(?)를 철석같이 따라 주는 그녀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응 나도 어서 집에 가서 연락할게~ 씻고 잘 준비해”

“넴~오늘도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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