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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남자 Jan 26. 2024

#20200426

“이틀 만인데 되게 오랜만에 보는 거 같은데요?”

“아~ 그래요? 어디 선가 들은 말인데. 너무 보고 싶으면 그렇다고 하던데요”

“멋진 말이다~ 난 그랬는데 오빠는요?”

“네? 네 ~ 나도 그랬어요”

“에~ 아니네 뭐. 나만 그런 거 같은데요?”

“……..”

“오늘은 우리 동네 왔으니 저만 따라오세요~물론, 이 동네도 오빠가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오늘은 참아 봐요”

“그래요~ 알겠어요. 사실 잘 몰라요”


오늘도 처음부터 보기 좋게 그녀에게 당하면서 시작했다. 내 나름대로는 당황하는 그녀의 표정이 궁금해서 던진 멘트였는데 그 멘트가 잔잔한 호숫가에 돌을 던져서 파장이 모여 모여 큰 파장이 되듯이 나에게 돌아와서 되려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나름 임기응변과 순발력으로 단련이 되어 있다고 자부해 왔으니 그건 역시 이런 상황-호감이 있는 대상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하긴 이런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넘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도. 그리고 그런 사람을 소위 말하는 ‘선수’라고 부르는 건 아닐지.


그날은 그녀 말대로 그녀가 이끄는 대로 고즈넉한 한옥 인테리어의 커피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동네 산책을 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다행히 날씨도 그리 쌀쌀하지 않은 전형적인 봄날씨였다. 봄꽃들이 피고 있고 볕이 잘 드는 곳에 있는 성격 급한 벚꽃들 역시 팝콘 같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오빠는 어떤 계절을 가장 좋아해요?”

“음… 난 가을이랑 초겨울을 가장 좋아해요”

“윽… 난 추운 건 너무 싫은데?”

“슬이는 어떤 계절을 가장 좋아해요?”

“전 봄이 가장 좋아요~ 무언가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그런 느낌이 너무 좋아요~ 물론, 봄꽃들도 좋고”

“그쵸~ 봄이라고 하는 계절은 그런 느낌으로 가득하긴 하죠”

“오빠는 왜 가을이랑 초겨울을 좋아해요?”

“아~ 별건 아니고요 가을은 내 생일이 있어서 ㅋ 그리고 초겨울은 그냥 그 쌀쌀한 느낌의 날씨를 좋아해요”

“생일 언제인데요?”

“9월 30일이요. 슬이는요?”

“전 지났어요 3월 30일이요. 아쉽다. 좀 더 오빠를 빨리 만났어야 했는데….”

“생일은 지났지만 내가 오늘 저녁 살게요~ 늦었지만”

“아니에요 오늘은 내가 산다고 했으니 다음 기회를 이용하세요~”

“단호박이네 ㅋ 알겠어요”

생일이 지났지만 무언가를 해 주고 싶은 생각이 갑자기 들기 시작을 했다. 나름대로 머리를 최대한 빨리 굴려서 꽃을 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계속 그녀와 같이 있는 이 시간에 꽃을 사는 것이 어려워 보였다. 그냥 같이 꽃집에 가서 늦었지만 생일 선물로 꽃을 사주겠다고 하고 같이 가면 될 것을 남자라는 종족들은 일을 대단히 어렵게 그것도 스스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서프라이즈로 선물해 주고 싶다는 무리수에서 기인한 발상이긴 하다.


나 역시 그렇고 그런 남자사람이기에 혼자만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사실 그녀에겐 성북동을 잘 모르는 동네라고 했지만 내가 대단히 좋아하는 동네라서 동네 주민만큼 잘 알고 있었다. 꽃집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는 있었지만 일요일 저녁에 운영을 하는지 여부는 정확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나만의 계획은 짜고 있던 중에

“오빠 내 말 듣고 있어요? 이제 저녁 먹으러 갈래요? 나 이제 배고픈데”

“아 네 그래요~ 가요 슬이가 잘 안다는 그곳으로”

“걸어서 조금만 더 가면 돼요~ 가요”

다행히 내가 아는 곳이었다. 그리고 더 다행인 것은 그곳이 화장실이 많이 열악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속으로 환호를 부르며 화장실 핑계를 되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생각은 그만하고 그녀에게 집중을 하면서 치킨집에 도착할 때쯤

“먼저 들어가 있을 래요?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여기 화장실 어디 있지?”

“아 여기 화장실 되게 불편한 곳이긴 해요. 마침 나도 가고 싶었는데 같이 지하철역 화장실로 가요”

“…… 그래요”

그냥 망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포기한 체 지하철역으로 걷는 도중 한줄기 빛 같은 노상에서 꽃을 판매하고 계시는 분을 발견했다. 정말이지 마음 같아선 그분이 파는 모든 꽃을 다 사고 싶은 심정이었다. 원래 화장실을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그녀가 화장실을 간 동안 나는 급하게 뛰어서 지하철역 밖으로 나와서 그분께 때마침 눈에 띈 튤립을 몇 송이 사서 천만다행으로 가지고 있던 현금으로 계산을 하고 다시금 뛰어서 지하철역으로 들어와 보니 다행히 그녀는 아직 나오지 않은 거 같았다.


“여기요~ 늦었지만 생일 선물. 이번엔 꽃만 주지만 내년엔 좀 더 멋진 선물을 줄게요~ 기회가 된다면”

“오~ 너무 예뻐요 나 튤립 너무 좋아하는데 너무 고마워요 오빠!!”

“좋아해 주니 나도 좋은데요~이제 치킨 먹으러 가요~”

“네~ 치킨은 언제나 옳지만 오늘은 더더욱 맛있을 거 같아요~ 오빠 덕분에”

참 말도 외모만큼이나 이쁘게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긴 지금 소위 말하는 ‘콩깍지’가 씌워져 있는 단계에선 안 이뻐 보이는 걸 찾는 것이 원주율의 소수점 아래 모든 수를 외우는 거만큼 어려운 일일 것이다.


지금으로선 그저 이런 감정이 ‘나만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이라는 것을 간절하게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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