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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남자 Feb 02. 2024

#20200429

“형 오늘 저녁에 시간 어떠세요?”

“없어, 운동 가야 해”

“무슨 운동 중독도 아니고 하루 쉬어요. 저 오늘 형 회사 근처에 갈 일이 있는데 오랜만에 저녁이나 먹어요”

“왜 내가 너랑 저녁 먹는데 나의 운동을 희생해야 하냐?”

“아… 놔… 소개팅도 주선해 줬는데 너무 그러지 좀 맙시다”

“ㅋㅋ 알겠다. 퇴근하고 연락할께”


갑자기 소개팅을 주선해 줬던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근처에 외근이 있어서 오는 김에 저녁이나 먹자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 역시 그 주선자에게 궁금한 것도 있고 해서. 당연히 그녀에 관한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부가 가장 궁금하긴 했다. 직접적으로 그녀를 아는 녀석이라 무언가 알 수도 있을 듯했고.


“어디냐? 남자랑 저녁 먹는데 굳이 고민할 필요 없고 근처 김밥집이나 갈래?”

“와… 너무하네. 그 많은 식당들을 알고 있으면서 고작 남자들한테 김밥집이 뭔가요? 형 페미니스트예요?”

“아니 그냥 성차별주의자 정도로만 해 두자. 남자를 차별하는”

“정말이지 변함이 없네… 이 사람은ㅋㅋ 그냥 맥주나 한 잔 해요”

“그래 그러자”


남자 둘이 만나면 하는 이야기라들은 정말이지 뻔하다. 특히,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남자 둘이 만나면 회사 이야기, 언제 잘릴 거 같은지, 로또는 왜 안되는지 같은 류의 회사 이야기들과 서로가 여자 친구 혹은 아내가 있는 경우는 그녀들의 안부 조금 그리곤 적당한 수준의 음담패설이 주를 이룬다. 이 녀석은 대학교 후배이기에 서로가 공통적으로 아는 사람들의 생사 여부와 안부 조금이 더 해 질뿐. 그런 시시한 이야기들이 끝나갈 무렵 그 녀석이 나에게 먼저 물어왔다.

“그래서 소개팅은 어땠어요?”

“괜찮았다. 아니 좋은 쪽에 가깝지. 암튼 고맙다. 소개팅 주선해 줘서”

“오~ 웬일이래. 좋다는 표현을 극히 잘 안 하는 사람이… 늙은 건가?”

“맞고 싶은 거야?오랜만에?"

“설마 그럴리가 있겠나요..참네 무슨 말을 못 하겠네.”

“그나저나 넌 어떻게 아는 사이냐? 너랑은 전혀 알고 지낼 말한 공통부분이 없어 보이던데”

“아~ 조카 발레 선생님이에요”

“엥? 너 조카 있었어?”

“모 모를 수도 있죠ㅋ 친누나 딸이 있어요 조카”

“아~ 누나도 있었어? 전혀 몰랐던 사실인데. 누나가 있었군”

“ㅋㅋ 있어요 친누나. 친누나가 결혼을 좀 일찍 해서 조카가 있어요. 5살짜리. 그 꼬맹이가 요즘 발레 학원을 다니는데 그 학원 원장 샘이지요”

“근데 니가 그녀를 어떻게 알아? 너가 먼저 대시라도 했었냐?”

“뭐래요 ㅋ 알고 보니 초등학교 동창이더라고요 몰랐는데”

“아 그래? 신기한 인연이네….”

“그러게요. 누나가 게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되어서 내 이름을 알려 줬더니 기억하고 있어서 ㅋㅋ”

“아 그렇구나. 넌 기억이 나냐?”

“잘은 안 나는데 최근에 다시 만나 보고 그때 좀 더 잘해 줬어야 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죠 ㅋ”

“글쿤 근데 왜 너가 들이대보지 않고?”

“아~ 이야기해 보니 게는 연상이 더 좋데요. 동갑은 찌질해서 싫다나 뭐래나 ㅡㅡ”

“난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ㅋ”

“뭐 암튼 그래서 형이 떠올랐고 연락을 한 거지요”

“글쿤 그래서 나랑 만난 이후에 슬이랑 연락해 봤냐?”

“슬이? 어우 벌써 그렇게 불러요? 완전 별론데 ㅋ”

“응 닥치고 어서 묻는 말에 답이나 해봐”


그 녀석의 답은 나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그녀 역시 내가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지레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그녀에게 호감이 있는지 여부를 정확히 모르겠다고 했다. 마음이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조금 헷갈린다고 했다는 것이다. ‘아니다’ ‘오해다’라고 전해 달라고는 했지만 나의 행동을 복기해 봤을 때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적극적인 그녀와는 달리 나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조금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거 같다. 이전 연애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잘하려고 했어도 안 되는 인연이 있다는 것을 경험해 본 뒤라 그런지. 과거의 연애가 현재의 연애에 영향을 미치면 안 된다고 그렇게 남들에겐 잔소리를 했지만 정작 내가 그러고 있는 꼴사나운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 모든 일은 아무렇게나 막 말해도 되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 ‘옆사람’ 일 때 가장 잘 보이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가 보다.

그 녀석과 헤어지고 돌아가는 길에 나는 그녀에게 처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항상 텍스트로만 대화를 해 왔고 처음 만날 때 역시 바로 누군지 너무나도 극명하게 알아봐서 따로 전화를 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왠지 전화를 해서 목소리를 듣고 싶었고 그러고 싶었다.


“나예요 아직 자는 건 아니지요?”

“그럼요~ 어 근데 전화를 다하고? 처음인데요”

“그러게요~ 전화 통화는 처음인 거 같네요. 이제 집에 가려 구요. 오늘 슬이 초등 동창 녀석 만났거든요. 우리 소개팅 주선해 준 그 녀석”

“아~ 둘이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전화를 ㅋ”

“아 꼭 그런 건 아니고요~ 혹시 이번주 토요일에 약속 있어요? 약속 없으면 영화 볼래요?”

“오후엔 수업이 있고 저녁엔 괜찮아요~ 저녁에 봐요 그럼. 오랜만에 영화관 가겠네요”

“그러게요~ 이번주에 그 영화 개봉한다고 했으니 내가 예매해 둘게요”

“그래요~ 예매하고 시간 알려 주세요. 그리고 집에 조심히 들어가고요~ 술 마셨으면 더더욱”

“네~ 집에 가서 연락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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