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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남자 Jan 19. 2024

#20200424

‘우리 이제 내일 만나네요~ 어디서 만날까요?’

‘음…. 중식 좋아해요? 최근에 가본 곳이 있는데 괜찮더라고요. 거기 갈래요?’

‘네 좋아요~ 저 중식 엄청 좋아해요. 관리차원에서 자주 먹지는 못하지만요”

‘아 그렇겠네요. 아무래도 직업의 특성상’

“뭐 그런 것도 있고~ 개인적인 이유도 있고요”

‘그래요~ 그럼 내일 6시로 예약해 둘 테니까 식당에서 봐요. 혹시 먼저 도착하면 내 이름으로 예약해 뒀으니 들어가 있고요’

‘알겠어요~ 내일 봐요’


연락처를 받고 이런저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 지 1주일 정도 되는 금요일에 그녀를 만나기로 했다. 주선자가 준 사진으로 그리고 개인 sns에서 그녀의 사진은 봤지만 요즘엔 워낙 사진과 실물이 다른 사람들이 많다 보니. 나 역시 그런 편이고. 일단 외모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즉, 예쁘다는 의미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고 해서 연애가 시작되거나 하진 않지만. 보통의 남자들은 어느 정도는 금사빠의 기질을 타고난 종족이라서 일단 본인이 맘에 들면 소설을 써 내려가는 경향이 다분하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진 않지만 몇 번의 경험을 통해서 조금 아주 조금 자제하는 정도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그녀는 나보다 일찍 도착해 있었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난 한눈에 그녀를 알아봤고 그녀 역시 나를 알아보고 조금은 어색하지만 밝은 미소로 인사를 해 주었다.

“안녕하세요~ 실제로는 처음 보네요 김준한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윤슬이에요”

단발머리에 슬림한 몸매의 그녀는 누가 봐도 매력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사진 보단 실물이 훨씬 이쁜.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표현이 그리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움직였다.

“주문할까요? 어떤 거 먹고 싶어요?”

“음… 혹시 추천해 주실 수 있어요? 전 처음이기도 하고, 제가 보기보다 엄청 잘 먹어서 드시고 싶은 거 있음 시키셔도 돼요”

“아… 네 그럼 알아서 주문할께요. 맥주도 한잔?”

“네~ 좋아요. 중식에 맥주 한잔 정도는 곁들여 줘야지요”

이런 외모에, 이런 성격인데 왜 솔로일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보통의 남자들이라면 누구든 좋아할 만한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그녀였다. 그냥 잠시 아주 드물게 있는 솔로인 시간에 소개팅을 하는 것이라고 추정할 뿐.

“근데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윤슬씨? 슬이? 슬쌤은 싫어할 거 같고~ 윤원장님? ㅋ”

“그냥 슬이라고 불러 주세요. 그래야 저도 오빠라고 부를 테니”

“아…네…. 그럼 슬이라고 부를 께요”

“네 좋아요 오빠”

여러 번 나를 당황시키는 그녀였다. 난 어떤 호칭으로 불리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내 또래의 남자들이 ‘아저씨’라는 호칭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난 그 호칭 역시 크게 거부감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호칭은 대단히 불호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쪽’이다. 특히, 소개팅 같은 자리에서 뭐라고 부를지 불분명한 나머지 종종 상대를 가리켜 ‘그쪽’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난 그런 경우를 대단히 경우 없다고 여기고 있다. 그리고 ‘오빠’라는 호칭에 대해서도 큰 의미부여를 하는 여성들도 있어서 쉽게 부르지 않는 경우도 있는 데 그녀는 모든 면에서 달랐다. 이 정도면 남자라는 생명체라면 누구나 하는 ‘혹시 나한테 호감이 있나?’라는 멍청한 착각을 할 정도로 그녀는 당돌하고 본인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보였다. 훗날 안 사실이지만 ‘표현한 것처럼 보인 것’이 아니라 ‘표현한 것’이었지만.

“이제 슬슬 집에 갈까요? 집이 어디라고 했지요?”

“아 전 성북동 쪽이에요, 오빠는요?”

“아 전 충무로쪽이에요, 성북동이면 그 어마무시한 집들 중 한 곳에 살아요?

“충무로면 그 많은 인쇄소들 중 한 곳에 살아요?

“ㅋㅋ 아니에요~그냥 충무로에 오피스텔에 살아요”

“저도 그 어마무시한 집들이 있는 곳 아래 조그만 집에서 살고 있어요”

“그럼 집에 바래다줄까요? 비록 버스 타고 가야 하지만”

“그래요~ 다시 집에 가는데 불편하지 않으면요”

그렇게 또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밥을 먹을 때는 서로를 보면서 이야기를 했다면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에는 나란히 앉아서 주로 앞을 보면서 간간히 서로를 훔쳐보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마주 보면서 나눌 때와는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그리고 흔들리는 버스 때문인지 아님 내가 그녀에게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지는 모르겠는 묘한 흔들림을 가진 체. 그렇게 그녀의 집 근처까지 바래다주고 인사를 나는 다시 환승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걸음을 재촉하고 있던 중 문자가 왔다.

‘오늘 즐거웠어요 오빠~ 바래다줘서 고맙고 다음엔 제가 맛있는 거 사 줄게요’

‘네 저도 즐거웠어요~ 그래요 다음에 또 맛있는 거 먹어요’

나도 모르게 이런 무미건조한 답을 보내고 다시금 버스 정류장으로 걷고 있었다. 그 환승할인이 뭐라고. 멍청하기는. 그렇게 무사히 환승할인을 하고 버스에 타고 앉아서 집에 가는데 또다시 그녀에게 문자가 한통 왔다.

‘다음 언제요?’

음…. 또 한 번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또 한 번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그녀와의 첫 만남을 내 입장에서 한 단어로 요약하면 ‘늦음’이었다. 뭐 하나 빠른 게 없었다. 물론, 연락을 먼저 하는 것도, 약속장소에 도착하는 것도, 소개팅 후 에프터를 먼저 하는 것도 꼭 남자가 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성문법만이 법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관습법이나 그에 준하는 법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고 우린 때론 성문법보다는 그런 법들에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살고 있지 않은가.

오늘 일을 내 친구들에게 말하면 난 엄청난 비난과 욕과 질타를 받을 것이 뻔하다. 성문법을 어기면 법적인 구속이나 금전적 손해가 발생하지만 ‘그런 법들’을 어길 시 주변인들에게 지속적인 질타와 놀림과 더 나아가 그 상대방에게 지속적인 약점을 제공하게 된다. 연인관계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특히, 남자가 그런 실수를 한 경우에는 더더욱.

‘내일모레 어때요? 일요일에? 내가 일요일 저녁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그래요~ 그럼 일요일은 저희 동네에 엄청 유명한 치킨집이 있는데 거기서 살게요’

‘네 그럼 오후에 만나서 커피 한잔 마시고 동네 산책 좀 하다가 먹어요~’

‘네 알겠어요~ 전 이제 씻고 자려 구요. 오빠 만난다고 긴장했는지 피곤해서요’

‘그래요~ 푹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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