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도 좋은 데 가까운데 드라이브라도 갈까?’
‘차도 없는데 무슨 드라이브야 그냥 서울에서 밥 먹어’
‘왜? 차야 뭐 공유차량 빌려도 되는데’
‘아니야~ 굳이 뭘 그런데 돈을 써. 그냥 오빠 집 근처에서 점심 먹어’
주중에 그녀와 나눈 메시지 내용들이다. 기분 전환이나 할 겸 봄 드라이브나 갈까 했지만 그녀는 그럴 기분이 아닌 것 같았다. 그녀의 생일 여행을 망쳐버린 이후로 그녀의 기분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런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그냥 감정이 없는 것만 같은 그런 상태. 사과를 계속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평소처럼 대해도 될지 전혀 모르겠는 남자들에겐 너무도 싫은 시간이 흘러가는 중이었다.
“피자 먹을까? 집 근처에 새로 생긴 피자집이 있는데”
“그래 가자~”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그녀를 만나 피자집으로 같이 갔다. 손을 잡고 가고는 있지만 그냥 손만 잡고 있는 느낌이다. 도착한 피자집은 새로 생긴 곳이라 그런지 약간의 웨이팅이 필요했고 우린 식당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다.
“날씨 완전 봄이네~ 벚꽃도 많이 폈고. 다음 주엔 벚꽃 보러 갈까?”
“그래 그러자”
그리곤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나는 옆에 앉아서 바라보고 있었다. 어떠한 반응 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그녀에게 더 이상 말을 걸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나 역시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우리가 들어갈 차례가 되어서 주문을 하고 먹는 동안에도 특별한 대화는 없었다. 그녀는 그저 내가 묻는 말에 짧게 대답만 할 뿐이어서 대화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저 내가 묻고 그 질문에 대해 그녀가 답을 할 뿐.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도 이런 공기는 유지되었다. 그런 공기를 계속 마시고 있자니 질식할 것만 같았다. 어디선가 강한 바람이라도 불어서 그 공기를 멀리 보내버렸음 하지만 그런 걸 기대하기엔 너무도 그 공기는 무겁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어떻게든 그 공기를 흐릿하게라도 해 보고 싶어 그녀에게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연애하고 슬이 첫 생일인데 나 때문에 망쳐서 미안해”
“뭐… 사과는 충분히 했잖아. 그만해도 돼.”
“그때는 그냥 그렇게 거짓말을 하는 게 우리한테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 나의 짧은 생각이었던 거 같아”
“우리한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왜 그런 생각을 해?”
갑자기 달라진 그녀의 표정을 보고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지금의 어색한 공기를 바꿔보려다가 더 숨 막히는 공기가 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일하는 건데 그것도 하루 종일도 아니고 오전에 잠깐 하는데 그걸 내가 이해 못 할 거라고 생각하고 거짓말을 하려고 한 거야?”
“아니 내가 그렇게 여행 가기 전에 일 안 한다고 장담을 해 뒀는데 막상 다시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쉽지 않았어”
“그러니까 내가 그걸 이해 못 하고 뭐라고 할 까봐 거짓말을 했다는 거잖아.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아니라니까. 슬이가 이해를 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난 우리의 시간을 잘 보내고 싶어서 그런 것뿐이야. 내가 생각이 짧았고 다시 생각해 봐도 내가 잘못했어”
이렇게까지 계속 코너에 몰리다 보면 갑자기 나도 모르는 짜증이 마음속에서 자라나기 시작한다. 마치 맞는 말도 계속 들으면 화가 나고 듣기 싫은 것처럼. 그럼에도 우리네들은 그것을 밖으로 꺼내면 안 된다는 걸 수천번의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음에도 실패할 때가 있다.
“내가 거짓말을 한건 내 잘못이 맞아. 근데 왜 그렇게 거짓말하는 걸 싫어하는데? 막말로 내가 슬이 몰래 나쁜 짓을 하다가 걸린 것도 아니고”
그리고 나는 오늘 그걸 실패해 버렸다.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의 얼굴은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바뀌었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가 버렸다. 바로 따라 나갔어야 했지만 그녀의 표정이 나를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