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넘게 서먹서먹한 거네… 음… 좋지 않은데”
“그러니까… 좋지 않아…”
“뭔데? 그 무책임한 말은? 남 얘기하듯 하네”
“아무리 사과를 해도 반응이 똑같으니 나도 답답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다”
머릿속이 복잡해서 친구 녀석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 녀석이라고 해서 그럴듯한 해결책을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만. 나에 대해서 잘 알고 내 상황에 대해서도 잘 알다 보니 그런 녀석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나 스스로 뭔가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것도 아니면 그저 나의 넋두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뭔가 위안이 될 것 같아서.
“그 증상? 현상은 안 일어났어?”
“그러니까… 뭐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꼭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질 않아”
“물론 거짓말을 한 건 내 잘못이 100% 맞지만 슬이는 유독 거짓말을 하는 거에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니까”
“그건 또 무슨 참신한 헛소리래? 거짓말을 하는 건 누구나 다 싫어하는 행동이지. 너도 니 여친이 거짓말하면 당연히 싫은 거 아니야?”
“응 맞지. 근데 유독 뭔가 다른 차원으로 싫어하는 거 같아. 마치 과거에 엄청 안 좋은 트라우마가 있는 것처럼. 그냥 그 순간 사람이 완전 달라져”
“음…. 그럴 수도 있지. 누구나 싫어하는 것을 넘어서 극혐 하는 것이 한 두 개 정도는 있잖아”
맞는 말이다. 나 역시 그런 거 한 두 가지는 있으니. 근데 그녀의 반응은 이상하리만큼 달라 보였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런 상황에서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다른 감정이 함께 나타나는 것 같다. 이를 테면, 체념 같은. 그게 나에게까지 느껴져서 더욱 그 상황이 힘들게 느껴지는 것 일수도 있다.
“이번에는 아름다운 ‘유부남’의 세계로 인도하나 했더니만… 쉽지 않네. 넌 뭐 항상 그렇게 쉽지가 않냐ㅎㅎ”
“쉽지 않은 문제가 하나 더 있다. 회사 ㅎㅎ”
“야 됐어. 회사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아. 네가 알아서 해”
“왜? 난 이 문제가 더 심각한데?”
“왜 더 심각해? 변했네 이 자식. 니 회사도 아닌데 뭐가 더 심각하다는 거야? 회사는 너네 대표가 알아서 하겠지. 넌 너랑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니 여친과의 관계에 더 집중해”
“이 회사가 잘 돼야 나도 네가 원하는 대로 유부남의 세계로 들어갈 거 아니냐? 그러니까 좀 들어줘라. 마음을 열고 ㅎㅎ”
“야 너 정신 차리고 잘 들어. 내가 니 친구이기도 하지만 유부남 선배로서 이야기해 주는 거니까”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무섭게 폼을 잡는 거야?”
“너가 현재 연애를 안 하고 있는 솔로라면 너가 백수가 된다면 결혼은 고사하고 다시 연애를 시작하는 것도 쉽지는 않겠지.”
“넌 현재 연애를 하고 있고 설사 지금 니가 다니고 있는 회사가 망해서 너가 백수가 된다고 해도 너의 여친이 백수라는 이유 만으로 너랑 헤어질 것 같지는 않아. 안 그래?”
“그렇긴 하지. 그것 때문에 헤어지자고 할 사람은 아니지”
“그리고 막말로 너의 여친 아버님이 이번에 해 보고 안되면 자기 회사 오라고도 하셨다면서?”
“야 그건 일단 고려하고 있지 않는 옵션이다”
“암튼, 뭐 배 부른 소리 넣어두고. 근데 너가 지금 시점에 다시 솔로가 되면 유부남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겠어?”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뭐야… 멍청해진 거야 뭐야… 결혼할 사람이 없어지면 누구랑 결혼을 하냐고. 너가 지금 상황을 방관하고 있다가 니 여친에게 차이면 결혼 가능성은 그냥 0%가 되는 거야. 이해가 안 가?”
“내가 무슨 방관하고 있다고 그러냐?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러고 있는 거지”
“글쎄… 내가 보긴 그냥 이 괴로운 시간들이 지나가서 너의 여친의 화가 스스로 어느 정도 진정되기를 바라고 있는 거 같은데?”
오늘도 친구 녀석에서 호되게 혼나고 헤어졌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이렇게 가감 없이, 거침없이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그 녀석이 마지막에 한 말이 계속 머릿속에 돌아다니고 있다. 그냥 시간이 흘러서 그녀의 화가 스스로 진정되기를 바란다는 말. 말을 들었을 때는 아니라고 발끈했지만 실제로는 그러고 있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느는 건 나이와 주름 그리고 비겁함인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