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잤어?’, ‘난 점심 먹으러 가’, ‘수업 잘해~’, ‘난 이제 퇴근해’, ‘잘 자요~’
‘응 잘 잤어~’, ‘응 뭐 먹으러가? 맛있는 거 먹어’, ‘응 오늘도 쉽지 않네 ㅎㅎ’, ‘고생했어~ 어서 집에 가서 쉬어’, ‘응 잘 자~’
그녀와 나눴던 메시지창을 올려 보니 일주일 넘게 위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OS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영화 속 주인공이 OS와 나눈 대화도 내가 그녀와 나눈 대화보다는 훨씬 더 많고, 인간적일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냥 일정 확인 정도 수준의 연락만 그저 오고 가고 있었다. 소위 권태기가 온 혹은 이별을 향해가고 있는 커플들의 전형적인 모습이 우리에게도 보이고 있었다.
난 둘 다 우리와는 상관없는 모습이라고 애써 부정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지도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관계가 좋아질 것이라는 말 같지도 않은 생각을 가지고.
하지만 나 역시 답답한 건 마찬가지이다. 나의 사소한 거짓말들이 쌓여서 발생된 일이긴 하지만 나 역시 지금 이 시점에 뭘 더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거짓말들에 대한 사과는 충분히 한 거 같고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다시금 나에 대한 그녀의 신뢰를 회복하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치고 있는 거 같은데 그녀에겐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이보다 더 힘들고 불편한 시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이다.
‘오늘 저녁 먹을까?’
아침에 집안일을 해 두고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난번에 그녀를 본 이후로 그녀는 그녀의 학생들 중 대회가 있는 학생들이 있어 지난 주말 대회까지 바쁜 시간을 보냈었다. 나 역시 투자 관련 일이 긍정적으로 진행되어서 관련 준비를 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그간 메시지가 아닌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래~ 어디서 볼까?’
‘내가 슬이 동네로 갈게, 몇 시에 볼까?’
‘우리 동네? 뭘 굳이 멀리까지 와~ 그냥 중간쯤에서 만나 5시 어때?’
‘응 그래 그럼~ 5시에 봐’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그녀가 사는 동네까지는 고작 지하철로 4 정거장 정도이다.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하는 나는 날씨가 좋고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 갈 수도 있는 거리이다. 근데 뭐 중간쯤에서 보자고 하니 더 이상은 말을 하진 않았다.
“오사시부리~”
“응? 뭐야? 일본어야?”
“아… 응 일본어로 ‘오랜만이야’라는 말이야”
“ㅎㅎ 그렇군. 그러고 보니 오랜만이네 진짜”
분위기를 풀어 보려고 했던 나의 행동은 망한 거 같다. 당연히 그녀가 내가 말한 일본어를 알 거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모르더라도 그냥 웃으면서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싶긴 했다. 근데 내 예상대로 된 거 같진 않았다.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 그저 음식 맛, 식당 분위기 등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할 뿐 별 다른 말 없이 먹기만 했다. 그저 먹다 가끔 눈이 마주치면 한번 정도 웃을 뿐.
밥을 먹고 날씨도 좋아서 산책을 하면서 그녀와 지금 우리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걷는데 갑자기 그녀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왜? 갑자기? 밥 먹은 게 체했어?”
나는 갑자기 우두커니 서 있는 그녀를 보면서 물었다.
“이젠 내 손도 안 잡고 걸어가네….”
“아니 그게….”
“요 며칠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계속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봤어. 그리고 오늘 만나서 오빠의 마음을 물어보고 싶었는데 안 물어봐도 오빠의 마음을 알 거 같아”
“잠깐 다른 생각을 했나 봐. 정말 미안해”
그렇게 말하면서 급하게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손을 뻣었다. 하지만 그녀는 동시에 그녀의 손을 뒤로 뺐다.
그리고 그녀는 뒤돌아서서 그렇게 가 버렸다. 그렇게 가는 그녀를 나는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다.
‘무조건 뛰어가서 잡아’라는 마음과 ‘잡는다고 상황이 달라질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된 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