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 장애인

일곱번째 억지

by 그런남자

인생은 'B'와 'D' 사이의 수많은 'C들' 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을 한다. B는 Birth 탄생, D는 Death 죽음, 그리고 C는 Choices 선택을 나타내는 단어들의 첫 글자이다. 환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Birth와 Death는 단수인 반면, Choices는 복수이다.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은 '선택'과 '결정'을 하면서 삶을 살아나가고 있다. 진로나 결혼 같은 상대적으로 중요한 선택에서부터 '오늘 뭐 먹지?''어떤 영화를 볼까?' 등의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 보이지만 거의 매일 같이 해야 하는 선택들 까지. 삶에 미치는 영향을 기준으로 보면 전자가 좀 더 중요할 수 있지만 빈도만 놓고 봤을 때는 후자가 훨씬 중요하고 난 개인적으로 후자의 선택들이 우리가 사는 인생에서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후자의 선택들은 조금은 본인의 의지대로 선택이 가능하고 그 선택의 결과로 삶이 조금은 윤택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는 일상에서 수도 없이 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이런 세상에서 살다 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결졍을 함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 '결정 장애' 증상(?)을 겪고 있다. 내 주변엔 조금 격한 표현을 사용해서 '결정 불구'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몇몇 있다. 이유는 어찌 보면 선택지가 많아졌기 때문일 수 있다.이런 사람들이 내 주변에도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언젠가부터 난 사람들과 만나서 밥을 먹을 때 뭐 먹겠냐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무례해 보일 수 있지만 난 일단 그렇게 하는 편이다. 그럼 소위 '결정 장애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행동을 이해해 보자


#1. 그냥 진짜 상관이 없다.

'난 진짜 아무거나 상관없어, 너 먹고 싶은 거 먹어'

누군가와 약속을 잡고 밥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 되면 내가 '결정 장애자'들에게 가장 자주 듣는 말인 듯하다. 처음엔 저 말 자체가 대단히 무책임해 보이고 성의 없어 보인다고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근데 정말 진짜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것을 먹던지, 어디를 가던지, 혹은 무엇을 보던지 크게 상관없는 그런 사람들이 진짜 있다. 그 사람들의 목적은 만난 당사자들과 대화 혹은 그냥 같이 있는 것 자체 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상대방과 무엇을 먹던지, 무엇을 하든지 같은 세부적인 일은 크게 상관이 없는 것이다.

또한, 특별히 선호하는 것이 없는 경우 혹은 대부분의 것들에 대해 평균 이상의 선호를 가지고 있는 경우 역시 무엇을 하든 크게 상관이 없을 수 있다. 본인이 뭘 좋아하는지 모른다는 것이 잘못된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그냥 그건 단지 그 사람의 성향일 뿐이니. 그리고 많은 분야에 있어서 평균 이상의 선호를 가진-내가 이런 경우이다- 경우는 상대가 어떤 선택을 하든 크게 상관없이 같이 그 선택을 따라 즐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든 어떤 선택을 하던 진짜 상관이 없는 것이다.


#2. 기본적으로 생각이 많다

남들이 보기엔 조금 답답해 보일 수 있지만 결정을 잘 못하는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 많다. 본인의 결정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저 사람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 ' 저 사람이 나보다 이 동네에 대해 잘 아는데' 혹은 ' 저 사람이 이 분야에서 나보다 더 잘았는데'라는 생각들을 하면서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 상대에게 큰 결례라고 생각한다. 배려심이 많은 것과도 일맥상통하지만 배려심이 많다는 범주로는 설명하기보다는 생각이 많다고 보는 편이 더 나을 듯하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옵션들을 고려하고, 하나의 옵션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욱 깊게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런 성향 때문에 아무리 사소한 결정이라고 하더라도 조금 더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보기엔 결정 장애가 있는 거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결정 중'인 것이다.


#3. 사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

결정 장애가 삶을 살아가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다. 본인이 불편하다고 느낀다면, 그리고 전혀 고치려고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문제이지만 이들은 대부분 살아가는데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또한, 공교롭게도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본인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만나면서 지낸다. 간혹 커피집 같은 곳에서 결정장애를 가진 사람 둘이서 대화하는 것을 종종 본의 아니게 듣게 된다. 과연 저 둘은 오늘 저녁을 먹으러 갈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옆에서 듣고 있다 보면 들게 된다. 하지만 그런 나의 오지랖스러운 의문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결정을 해서 그들의 행선지로 향하곤 한다. 보통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게 뭐 어떤가? 그들은 충분히 여러 가지 옵션들을 그네들의 기준에서 충분히 고려해 보고 내린 결정이고 그걸로 그들은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무언가를 잘 결정하는 사람들을 누군가는 리더십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래도 어떤 한 집단에서 가야 할 방향을 결정하고 그들을 이끌어 간다는 의미에선 '리더십'이라는 말을 사용해도 될 듯하다. 하지만 '리더십'이란 단어만큼 한국에서 잘못 사용하고 있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그건 다음에 기회가 된다는 다시 말해 보는 걸로 하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데 선택을 잘하고 그 선택이 베스트는 아니어도 꽤 괜찮은 선택을 하는 능력이 꽤 괜찮은 능력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하나의 능력치일 뿐이다. 그 능력치가 없다고 해서 살아가는데 전혀 지장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그런 성향을 가진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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