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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동주 Apr 03. 2024

퇴근이 하고 싶은 아저씨

 뭔가 이상하다. 출근을 위해서 씻고 준비하고 있는 중인데 벌써 퇴근하고 싶은 이 기분은 무엇일까. 아침에 일어나서 한숨 한번, 씻고 나서 한숨 한번, 출근길에서의  한숨 다시 한번, 도착하고 나서의 한숨 또다시 한 번으로 드디어 진정한 하루를 시작한다. 일을 시작하고, 무언가 벅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알 수 없는 것이 나를 감싸기 시작한다. 귀찮음이 내 안의 게으름이란 밧줄로 나를 꽁꽁 싸매기 시작한다. 그래 뭐 어차피 내 할 일은 주방에서 음식조리도 하고, 손님응대도 하고, 재료준비도 해야 하지만, 이제 막 출근 한 시간에는 손님이 없는 시간이기 때문에 날 묶은 게으름이라는 밧줄 위에 스마트폰이라는  쥐잡이용 끈끈이 트랩에 스스로 걸려든 꼴이 되었다. 정말 글러 먹었다.

 나의 몸과 정신은 온통 퇴근에만 푹 절여져 있는 것 같다. 이윽고 돈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고민에 빠진다. 누가 화폐를 처음 개발했을까? 실없는 생각도 해본다.


 의미 없는 시간이 지나가다가 정신을 차린다. 최대한 모든 일을 끝낸 뒤, 쉬기로 마음을 먹는다. 나는 쓸데없는 상상과 몽상을 하느라 시간을 허비했지만, 누군가는 그 상상과 몽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득, 나 자신이 사육되고 있는 짐승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울타리라는 운명을 넘을 생각조차 못하고 그저 주어진 삶과 쾌락만을 쫒는 돼지. 그래 지금의 난 도축만을 기다리고 있는 쾌락이라는 살이 뒤룩뒤룩 쪄 있는 돼지다. 진흙에서 구르면서 먹고 싸는 것 밖에 안 하는 돼지이다. 그렇게 나 자신에게 혹독한 채찍질을 한다. 최대한 세고 더욱 아프게 살갗이 찢어지고 뼈가 보일 정도로.


퇴근하고 싶다는 바람 하나로 온갖 사고들이 부딪치고, 깨지고 별의별 생각을 다 한다는 느낌에  혼자서 멋쩍게 한쪽 입꼬리를 올리면서 일을 다시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마음을 다 잡고 시작하면 생각한 것보다 빠르게 끝낼 수 있었데, 기본적으로 '할 수 있긴 한데 귀찮으니 나중에 몰아서 하자'가 뇌리 속에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내, 일하다 보면 잡생각도 들기 마련이다.

잡스런 생각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일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기에, 더욱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잠깐의 집중'이라는 누구에게나 있는 초능력을 발휘해 본다. 잠깐의 집중은 언제나 최고의 효율을 내어주었다.  집중이라는 신도들은 '나'라는 신을 위해 기도를 해주며  힘을 주는데, 그 힘을 고스란히 전해받은 나는 신도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그에 대한 화답을 충분히 하기도 고, 화답을 받은 신도들은 옷을 벗고 집중에서 다시금 퇴근이라는 욕구로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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