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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Nov 29. 2018

무봤나!? 자갈치 시장 생선구이

살 발라주고 싶은 사람과 함께

자갈치 시장 생선구이 정식, 무봤나!?


오해하지 마세요, 구운 생선은 잘 먹으니까


<편식왕의 음식에세이> 프롤로그에서 ‘그 외에도 바다에서 나는 웬만한 것들, 해조류나 어패류 등등도 별로 즐기지는 않는다.’고 밝힌 바가 있어 갑자기 생선구이 얘길 하려니 오해부터 풀어야겠다. 날것이 아닌 굽거나 찌거나 졸이거나, 아무튼 조리한 것이라면 그런대로 잘 먹는 편이다. 특히 생선구이는 담백하고 짭조름한 맛이 일품이라 오히려 좋아한다고 해도 될 정도다. (물론 육고기에 비해선 덜하지만.)


이번 화에서는 부산의 필수 관광 코스 중 하나인 남포동과 자갈치 시장의 ‘생선구이 정식’을 다뤄보려 한다. 덕분에 참 오랜만에 자갈치 시장을 찾아갔다. 남포동 국제시장에서 길을 건너면, 아직 자갈치 시장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물씬 풍겨오는 바다 냄새. 짠내와 비린내가 섞인 그 냄새를 좇아가 보면, 그야말로 바다 바로 앞에 펼쳐진 어물전 행렬을 만날 수 있다. 지난 2006년, 현대식 건물로 개축한 자갈치 시장 건물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바닷가 앞으로는 예의 노점형 어물전이 즐비하다.

싱싱하고 다양하지만, 편식왕은 거의 안 먹는 것들 투성이인 자갈치 시장 어물전..

자갈치 시장 생선구이 맛있게 먹는 법


자갈치 시장에서 굳이 ‘생선구이 정식’을 먹어야만 하느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말해 아니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과 회, 곰장어가 널리고 널렸는데 그중에서도 하필이면 생선구이 정식이라니. 그렇지만 어쩔 수가 없다. 편식왕인 내게 자갈치 시장의 히트 메뉴는 언제나 ‘생선구이 정식’뿐이니까. 혹 부산에 놀러 올 계획이 있으시다면, 자갈치 시장 생선구이 정식 맛있게 먹는 법을 알려드리겠다. 


먼저 시기는 겨울이 좋다. 더 구체적으로는 겨울 저녁 즈음. 입에서는 허연 입김이 폴폴 나오고, 두 손은 외투 주머니에서 나올 줄을 모르는 때. 남포동이나 중앙동에서 한껏 걸은 후에 공복감이 훅 밀려들 때. 그럴 때, 친구나 연인과 함께 자갈치 시장 골목으로 (시장 건물이 아니라, 노점 형 어물전이 즐비한 골목으로) 슬금슬금 진입하는 것이다. 딱히 불을 쓰는 음식점들이 모인 곳이 아닌데도, 희한한 온기를 느끼게 된다. 자갈치 시장에선 상인도, 손님도 모두 목청이 커진다. 중간, 중간 익살스러운 입담과 노랫가락을 뽐내며 좁은 어물전 골목을 누비는 엿장수 아저씨라도 나타나면 흥은 배가 된다. 그렇게 우선, 자갈치 시장 특유의 온기와 소리들을 애피타이저 삼아 느껴보는 것이다. 

이런 골목을 쭉 따라 걷다 보면, 생선구이의 향이...

그렇게 한 5분쯤 걷다 보면, 어물전 행렬의 끄트머리에서 문득 고소하고 짭조름한 향이 훅 느껴진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단박에 생선구이 가게가 있다는 걸 알아챌 만큼 선명하고 구미 당기는 향이다. 그렇다고 해서 얼마 가지 않아 가게로 들어가선 안 된다. 가게마다 호객을 하는 드센 아주머니들이 꽤 부담스럽겠지만, 가벼운 목례로 넘기며 생선구이 가게 행렬의 끝까지 직진한다. 그러면서 맛있는 향을 듬뿍듬뿍 즐기는 것이다. 물론 가게마다 초벌 하듯 구워 진열해둔 생선구이의 자태를 눈으로 좇으며 더 맛있어 보이는 가게를 탐색하는 의미도 있다. 겨울 저녁의 어둑한 밤바다, 백열등 불빛 아래에서 빛나는 생선구이는 어느 모로 봐도 먹음직스럽다. 자, 이제 냄새와 시각적인 즐거움까지 누릴 만큼 누렸다. 


그리고서 마음에 드는 가게로 들어가 ‘이모! 생선구이 정식이요’ 외치면 된다. 오감 중, 맛은 제일 마지막이다. 시장의 온기와 소리, 생선구이의 냄새와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모두 즐긴 후에 먹는 한 점의 생선구이라야 굳이 자갈치 시장까지 와서 먹는 의미가 있다. 장담컨대 이렇게 먹은 생선구이는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 모든 오감의 기억이 ‘맛’으로 뭉쳐질 테니까. 

먹음직스러운 생선구이들...

살을 발라주고 싶은 사람


생선구이 정식은 기본 7,000원부터 가짓수에 따라 10,000원, 15,000원 하는 식으로 가격이 올라간다. 내가 먹은 건 10,000원짜리 정식이었고 4종류의 생선구이와 매운탕, 공깃밥과 기본 찬의 구성이었다. 가게마다 생선 종류의 차이는 조금씩 있지만, 보통 가자미와 갈치, 고등어 정도를 공통으로 낸다. 어느 생선이든 겉은 바삭하고 살은 두툼해서, 굳이 공깃밥이 없어도 든든하게 먹을 수 있을 정도다.  

살이 아주 두툼하다. 특히 갈치와 가자미가 맛있다.

이렇게 맛있는 생선구이 정식이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가길. 친구든 애인이든, 가족이든 직장 동료이든 간에 생선구이는 적어도 ‘살을 발라주고 싶은’ 정도의 사람과 가야 제 맛이다. 김치나 소시지 한 점을 밥 위에 올려다 주는 것과, 생선의 살을 발라주는 것은 그 정성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자신이 먹을 생선살 바르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게다가 누군갈 위해 생선살을 바르는 정성이란. 


예전에 썼던 에세이 중에 갈치구이를 소재로 한 ‘갈치, 살 발라내는 저녁’이란 글이 있다. 그 글의 마지막 단락은 이렇다.

https://brunch.co.kr/@kkbbtr/191

산다는 게, 늘 순살 치킨이나 씨 없는 포도, 누가 정성스레 발라둔 생선살 같은 것일 수만은 없다는 거.
우리는 늘 뼈와 씨, 그리고 가시를 마주하게 된다는 거.
아무리 조심해도 삶에는 가끔 잔가시가 끼어 있을 수 있고,
또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잔가시쯤은 대수롭지 않게 씹어 삼킬 줄도 알게 되는 일이라는 거.

나는 아직 누군가의 남편이나 아버지는 되지 않았지만,
기어코 살보다 가시가 더 많은 삶을
‘아주 맛있다’는 표정은 아니라도 ‘아무렴 어때. 아무렇지 않아’ 그런 표정으로,
우걱우걱 씹어 삼킬 줄 알아야 하는 날이 올 거라는 거. 

오늘 저녁엔 남포동 자갈치 시장에라도 가서, 생선구이를 먹고 싶다.
정성스레 살 발라내는 저녁을 먹고 싶다.


하물며 소중한 이에게 ‘가시 하나 없도록’ 세심히 살을 발라주는 시간은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다운가. 올해 겨울, 누군가에게 말로 전하기 힘든 마음이 있다면 자갈치 시장으로 가보자. 가서, 생선구이 정식을 먹으러 가는 것이다. 소주 한 잔씩 주고받다가, 제일 두툼하고 흰 생선살을 곱게 발라 그의 밥 위에 올려주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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