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흰 여우 울음소리
귓바퀴에 묻히며 잠들었습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낙서
지우려 문지를수록 되려 기억이 묻어
세 들어 살던 벽돌집 여태 선명하고
좁은 방 무릎 세워 앉아 울고 웃던
우리 자리에 기억의 온기가 여전합니다
묻어두고 싶은 기억은 묻어두려 애쓸수록
찌개 국물처럼 하필 손 닿지 않는 곳에 튀고
당신 그때 내게 꼭 그래야만 했던 거냐
따져 묻고 싶다가도 곰곰이 새벽이 오면
서로 기억을 묻히고 사는 처지에
구태여 원망을 덧칠하지 말자 그랬습니다
어릴 적 할아버지의 마술은 늘
콧기름을 묻히며 완성되곤 했는데
손안의 동전이 사라지거나 나타나듯
내게 묻은 기억과 내가 묻힌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이룬 셈입니다
투명할 수 없으나 언제나 선명하게
기억을 보관하며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