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女王)이 될 상(相)
여왕(女王)이 될 상(相)
음악을 듣는 우리는, 이미 전설의 반열에 오른, 수많은 음악가들을 만난다.
그들은 (우리가 음악 듣기를 시작하기 전, 혹은 태어나기도 훨씬 전) 이미 많은 것을 이룩해 놓았다. 수많은 명곡과 명반을 갖고 있고, 그것들이 차트 위에 수놓은 화려한 기록을 갖고 있다. 다수의 음악상을 수상했고, 필수조건이라 할 수는 없지만,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이름이 올라있는 이들도 있다.
우리가 이런 전설을 영접하는 방식은, 먼저 어떤 한곡을 접한 후, 더 많은 곡, 더 많은 앨범을 찾아들으며, 전설이 지나온 놀랍고도 경이로운 발자취를 한 걸음씩 따라가 보는 식이다.
운이 좋다면, 우리는 전설이 될 인물을 만난다.
낯선 그의 노래를 들어보는 것이 시작이다. 그때는 그가 무엇이 될지, 어떻게 될지, 어디까지 갈지 모르지만, 시작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새 노래, 새 앨범이 발표되면, 반가운 그것들과 우리의 시절을 함께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전설이 되어있는 그를 재발견하는 날이 온다.
21세기임에도, 왕을 예언하는 사람을 보기도 했지만,
우리 범인(凡人)들은, 누가 '왕이 될 상(相)'인지 알아낼 능력이 없으니...
다만 후에 알게 될 뿐이다.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를 처음 보았을 때도 솔직히는, 그가 여왕이 될 것임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몸매 좋은—현재의 후덕한 그녀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굳이 몸매가 좋다고 인식했던 이유는 LP 뒷면 커버 때문이다—어떤 여자 가수가, 무려 5옥타브까지 가능하며, 카나리아처럼 노래한다는 정도로만 인식했다. 1940년 런던의 하이드파크에서 우연히 엘리자베스를 마주친다고 해서, 그를 여왕의 상(相)으로 알아보기란, 누구에게도 쉽지 않을 테다.
Best of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
예로부터 앨범이라는 형식으로 아티스트들이 발표하는 모든 음반에는 이름이 있고, 그 이름을 정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우선, 앨범의 이름이, 단순히 수록된 대표곡의 제목과 같은 경우다. 이러한 예는 많다. 예를 들면,
* The Beatles [Let It Be] (‘70)
* Simon & Garfunkel [Bridge over Troubled Water] ('70)
* Eagles [Hotel California] ('76)
* Prince [Purple Rain] ('84)
* Whitney Houston [I'm Your Baby Tonight] ('90)
* Madonna [Ray of Light] (‘98)
* Hoobastank [The Reason] (‘03)
* Taylor Swift [Fearless] (‘08)
* Justin Bieber [Believe] ['12)
* The Weeknd [Starboy] ('16) 등등...
참고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앨범은 100% 이 방식이었다—앨범 속에 앨범명과 같은 이름의 수록곡이 꼭 있다. 예외 없이.
[Got to Be There] ('72)
[Ben] ('72)
[Music & Me] ('73)
[Off the Wall] ('79)
[Thriller] ('82)
[Bad] ('87)
[Dangerous] ('91)
[HIStory] ('95)
[Invinsible] (‘01)
다음은, 앨범 전체의 주제를 단어나 문장으로 함축하여, 앨범명으로 정한 경우다.
Queen [A Night at the Opera] ('75)
Pink Floyd [The Wall] ('79)
Nirvana [Nevermind] ('91)
Will Smith [Big Willie Style] ('97)
Amy Winehouse [Back to Black] ('06)
Kendrick Lamar [To Pimp A Butterfly] ('15)
Billie Eilish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19) 등등...
이러한 예는 무수히 많다. 어쩌면 가장 많을 것도 같다.
물론 개중엔 위의 두 가지 모두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의미 심장한 듯한 앨범명이 수록곡의 제목과 같은 경우로, Bruce Spingsteen의 [Born in The U.S.A.] ('84)—미국에서 태어났음을 냉소적으로 표현한 것—같은 앨범이 그런 예가 될 수 있겠다.
※ 영국의 팝가수 아델(Adele)은, 앨범을 발표하는 당시의 자신의 나이를 앨범 이름으로 사용하는, 아주 독특한 방식을 쓰고 있는데, 19세 때의 데뷔 앨범 [19]에서 시작된 이 방식은, [21], [25]를 거쳐, 2021년에 네 번째 앨범 [30]까지 발표했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갈 모양이다.
다음은, 아티스트 자신들의 이름을 앨범 이름에 그대로 사용한 ‘셀프 타이틀’ 앨범이다.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앨범 이름으로 셀프 타이틀을 사용하는 이유는, 대략 두 가지 정도가 아닐까 싶다
첫째는, 이미 오랜 기간 활동을 해온 아티스트가 어느 앨범에서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앨범명으로 쓰는 경우가 있다. 메탈리카(Metallica)의 앨범 [Metallica]는, 자신들의 음악 경력 그간의 결과물 중, ‘이번에야말로 최고의 완성도에 도달했다’라는 정도의 자신감의 표현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메탈리카는 그들의 다섯 번째 앨범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사용한 것이다. 이런 것이 셀프 타이틀을 앨범명으로 쓰는 첫 번째 이유다. 1995년에 발매한 컬렉티브 소울(Collective Soul)의 두 번째 앨범 [Collective Soul]이나, 2013년에 발매한 에이브릴 라빈(Avril Lavigne)의 다섯 번째 앨범 [Avril Lavigne]이 이런 경우라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생각해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앨범들이 실제로 완성도도 높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다음은, 셀프 타이틀을 사용하는 가장 흔한 경우인데, 아티스트의 데뷔 앨범이다.
이렇게 하는 가장 큰 목적은, 무명인 그들이, 팬들 사이에서 또는 방송 등에서 한 번이라도 더 언급되어, 자신들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이런 사례는 아주 많다.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밥 딜런(Bob Dylan), 토토(Toto), 엘튼 존(Elton John), Madonna(마돈나), Bryan Adams(브라이언 아담스), Bon Jovi(본 조비), Foo Fighters(푸 파이터스),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도트리(Daughtry),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이름을 앨범명에 그대로 사용한, 데뷔 앨범을 갖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결과론 일지 모른다.
데뷔 앨범을 낼 당시, 아티스트 스스로는 단순히 인지도를 높이기 위함이 아닌, 자신의 첫 앨범이 완성도까지 갖추었다고 생각했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늘 대중의 몫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데뷔 앨범은 그다지 큰 인상을—뒤에 발표한 다른 앨범들에 비해 상대적으로—남기지는 못했다는 말이다. 아티스트 경력 전체를 본다면, 이것이 나은 것이다. 위에 언급된 아티스트들은 뒤에 훨씬 뛰어난 앨범들을 많이 발표했다.
사족이 너무 길었다.
그런데 셀프 타이틀을 사용한 앨범의 또 하나의 경우가 실제로 가능할 수도 있다—이 또한 완전히 필자의 생각일 뿐이지만, 위의 두 가지 이유 모두를 충족하는 것이다. 이름을 알리겠다는 이유에 더해, 메탈리카의 [Metallica]처럼, 완성도에 기반한 자신감 표출까지 더해졌다는 뜻이다.
이에 해당하는 사례 중, 레전드급의 가수들 중에, 필자에게 입력되어 있는 지식의 범위 안에서는,
최고이자 가장 성공적인 앨범이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의 데뷔 앨범 [Mariah Carey]이다—아!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의 데뷔 앨범 [Whitney Houston]도 만만치 않은, 대단한 수준이긴 하다.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데뷔 앨범을 내놓았다가, 시간과 함께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린 아티스트도 무수히 많고, 미미한 출발로 시작했으나 거장의 반열에 오른 아티스트도 많다. 전자의 경우는 전설이라 불릴 수가 없고, 후자는 시작이 미약했단 판정을 이미 받았다.
그러므로, 남달리 큰 걸음으로 시작한 아티스트가, 지금은 전설이 되어있기란 정말 어려운 것이다. 머라이어 캐리(Mariha Carey)는 딱 여기에 해당한다.
여왕다운 시작의 화룡정점
늘 듣던 (좋아하는 가수들의) 음악만을 계속 듣고, 좋아하는 음악을 반복해서 듣기만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이따금씩 낯선 음악을 관심 있게 들어보게 해 주는, 최적의 외적 장치라 하면 음악상 수상 소식이 아닐까 싶다. 음악상도 종류가 매우 많지만, 최고 권위는 역시 그래미(Grammy Awards)다.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는, 완성도 음반과 함께,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 화려함의 바탕은 물론 좋은 곡이 수록된 좋은 앨범이지만, 가장 큰 도우미는 그래미(Grammy)였다. 전 세계가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를 처음으로 제대로 주목하게 만든 것이, 그래미 시상식(Grammy Awards)이었다.
머라이어 캐리는 1991년 2월, 제33회 그래미 시상식(Grammy Awards)에서,
모든 장르를 통합해서 주는) 가장 큰 보상에 해당하는, 본상 4개 부문,
* 올해의 레코드(Record of the Year) : 노래 'Vision of Love'
* 올해의 앨범(Album of the Year) : 앨범 [Mariah Carey]
*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 : 노래 'Vision of Love'
* 올해의 신인(Best New Artist) :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모두에서 위와 같이 후보에 올랐고,
또 Best Female Pop Vocal Performance(최고 여성 팝 보컬)에까지 올라, 총 5개 부문 후보에 오른다.
※ 참고로 그래미 본상 중에서,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는 곡을 쓴 작곡자에게 주는 상이고,
올해의 레코드(Record of the Year)는 곡의 제작에 참여한 가수, 프로듀서, 엔지니어들에게 주는 상이다.
결국,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는,
윌슨 필립스(Wilson Phillips),
리사 스탠스필드(Lisa Stansfield),
블랙 크로우스(The Black Crowes)
켄터키 헤드헌터스(The Kentucky Headhunters)
이렇게 다른 4명의 후보를 제치고 Best New Artist(올해의 신인)를 수상했고,
* 리사 스탠스필드(Lisa Stansfield)의 'All Around The World'
*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의 'I'm Your Baby Tonight'
* 베트 미들러(Bette Midler)의 'From a Distance'
* 시네이드 오코너(Sinead O'Connor)의 'Nothing Compares 2 U'
이렇게 쟁쟁한 네 곡을 제치고 'Vision of Love'로,
'Best Female Pop Vocal Performance(최고 여성 팝 보컬)를 수상했다.
두 개의 상 모두 충분히 받을만했다.
후보로 올랐던 5개 부문에서 이렇게 2개를 수상했는데, 어떤 상의 수상 여부를 떠나, 신인 가수로서 인지도를 높이는 데는, 본상 4개 부문 모두에서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이 더욱 주요했고, 그것으로 충분하고도 남았다.
앨범 [Mariah Carey]에서,
그래미 시상식이 있기 전인, 1990년 8월에 머라이어 캐리 음악 경력 첫 번째 싱글 'Vision of Love'가 빌보드 핫100에서 4주간 1위를, 11월에는 두 번째 싱글 'Love Takes Time'이 3주간 1위를 차지했다.
1991년 2월의 그래미 시상식 직후에는, 그래미(Grammy)의 여세를 몰아,
3월에는 세 번째 싱글 'Someday'가 2주간 1위를,
5~6월에 걸쳐 네 번째 싱글 'I Don't Wanna Cry'가 2주간 1위를 차지하며,
데뷔 앨범에서 첫 번째 싱글부터 네 번째까지, 연속 4곡이 모두, 빌보드 1위에 올랐다.
1990년 만 20살로 데뷔한 머리이어 캐리는, 지난 32년을 통하여, 전설 중의 전설이자 여왕의 위치에 올랐다.
※ 데뷔 앨범[Mariah Carey]에서 1위에 오른 4곡(싱글 발매 순서)
Vision of Love ('90 4주간)
Love Takes Time ('90 3주간)
Someday ('91 2주간)
I Don't Wanna Cry ('91 2주간)
이 4곡은 모두 대단히 명곡이다. 강력히 추천한다. 30년이란 세월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 Mariah Carey - 머라이어 캐리 (중)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