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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삿헌 Oct 30. 2022

1. 인종과 문화의 멜팅팟 뉴욕으로

뉴욕으로 떠나기 바로 얼마 전 다니던 회사의 높은 직책을 그만두고 하던 일과 아무 상관이 없는 필라테스를 공부하기 위해 영국 유학을 결정한 한 친구, 역시 임원 자리에서 퇴직 후 지난 삶을 생각 해보는 시간을 가지던  친구, 정치에 입문하겠다는 친구 그렇게 넷이서 타로 카드를 앞에 두고 우리의 결정이 무슨 의미가 될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 결정은 다들 너어무 애쓰며 살 던 지난 시간의 태도에서 지속가능의 형태로 전환하는 시기를 맞는 적잖은 나이의 일반적 현상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하던 일들 그만두는 용기를 내는 일이  쉽지 않았음을 알기 때문에,  서로 네 용기가 대단하다 격려하고 행운을 빌던 일이 떠오른다.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이 끊겼던 내게 이혼 후 우연히 시작한 음식 만드는 일이 여기저기에서 불러주는 사람들 덕에 업이 되어 가고 있었다. 별로 돈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일이 생기면 일단 기뻤는데, 이유를 모 영화제 오프닝 음식 준비를 하다 깨달았다. 내가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데다 음식재료를 조합시켜 요리로 완성시켜가는 일에 그림 그리는 작업과  똑같은 창작하는 기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퓨전적인 음식을 하는 일은 늘 즐거웠지만, 이렇게 완성일까? 재료를 다루는 방법이 제대로 된 걸까? 퓨전은 족보가 없는 음식인가?라는 자기 검열 같은 숙제가 늘 쌓여갔다. 너무 애쓰지 않는 삶이 현명한 나이가 됐다는데 동의하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풀기로 했다. 오래오래 생각만 하다 내린 결정이었다.

영화제 오프닝음식 케이터링

비행기에 앉아 있다 내렸더니, 뉴욕이었다.

자신이 원하고 선택해서 온 곳임에도 별안간 낯선 별에 떨어진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온 지 열흘도 안된 사이에 별의별 일들과 별의별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하철 티켓을 발행하는 머신 앞에서 첫 정기권을 살 때 우편번호 등록해야 하는 사실을 몰라 당황하는 사이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친절한 흑인이 나타나, 눈앞에서 기계 안에 꼽혀있는 내 신용카드의 돈을 속임수를 써서 빼내고 사라지는 데도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너무 순식간이라 존경심이 들 지경이었다. 심지어 경찰이 옆에 서 있었는데..


맨해튼의 도로는 블록화 되어 있어서 며칠이 지나자 지하철 타고 장소를 찾아가는 일에 곧 능숙해졌다.

지하철을 타고 업타운 쪽에서 미드타운과 다운타운을 거쳐 브루클린까지 내려가면 지역에 따라 지하철 안의 인종들이 하얗다가  노랗다가 검었다가.. 사람들의 피부색이 카멜레온 피부가 외부 조건에 따라 색이 변하듯 구역이 달라지면서 서서히 바뀌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유는 국가나 인종별로 특정한 구역에 공동체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브루클린의 크라운 하이츠와 플랫부쉬에는 아프리칸과 카라비안계가, 퀸즈의 플러싱에는 한국인들을 비롯한 아시안인들이, 어퍼 이스트 사이드 쪽에는 백인들 이런 식으로.  우여곡절 끝에 내 숙소는 히스패닉 구역 언저리 24시간 지하철 지나는 소리가 들리는 우드사이드 역 근처에 정해졌다.


관광객이 아닌 나의 눈에 비친 맨해튼의 일상은 아래로는 쓸쓸하고 위로는 찬란해 보인다. 연간 6000만 관광객, 그리고 800만 거주인들이 넘실거리는 뉴욕에 도착 후  영어도 잘 못하고 모든 것에 서툰 아이가 된 기분으로 배낭을 메고 거대한 도시의 빌딩 사이를 걷다가, 초등학교 입학 후 매사가 서툴러 보이던 딸아이를 혼냈었던 일과 말없이 눈물 뚝뚝 흘리던 순진한 아이의 큰 눈이 생각나서 가슴 아프도록 미안해지기도 했다. 왜 그때 사랑해주지 못했을까. 왜 사랑은 늘 뒤늦는 걸까.


내가 #naturalgourmetinstitute 을 선택한  이유는  스승인 평화 밥상의 문성희 선생님 음식 철학과 일치하게 건강한 재료의 채식 레시피들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egg , poultry, fish 이 세 가지 요리의 기본을 가르친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학교가 맨해튼 중심에 있다는 장점은 떠나기 전엔 알지 못했다.


목축은 방목이 쉽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대량 생산되는 축산업은 화석연료 사용과 더불어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고, 지나친 육류 섭취가 미국인의 건강에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자각에서 커리큘럼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동물의 몰 권리 또한 비건들이 육식을 외면하는 이유가 된다. 비건 조리와 글루텐프리 음식 강좌는 만성염증과 소화장애 문제, 체중조절을 필요로 하는 현대인들을 위해 이 학교가 내세우는 장점이기도 했다. 60년 가까이 많은 셰프들에 의해 개발된 글루텐프리 레시피들과 채식 메뉴들, 거기다 자연 방목된 닭고기와 달걀, 해산물까지 다룬다는 커리큘럼은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날이 지날수록 여유가 생기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게 보일 게다. 그래야 한다.

지하철역 안에는 늘 버스킹 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주로 악기 케이스 같은 것을 앞에 놓고 있어서 지나던 사람들이 편하게 서서 듣다가 작은 돈들을 놓고 간다. 아침 출근길에 첼로 선율이 들리 때도 있고, 건너편 선로에 있어서 동전을 넣어드릴 수는 없었지만 아주 늦은 조용한 시간 지하의 고담시티 선로에서 기차를 두대나 보내며 듣게 했던 감동적인 기타 연주를 보는 날도 있었다. 오늘 하굣길 34번가 지하철역을 지나다 락커의 공연을 서서 바라보았다.  마침 제목이 With arms wide open. 그래 이렇게 20세기의 수도라는 맨해튼에 서서히 안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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