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완성하는 글쓰기
글을 혼자만 쓸 때는 글이 막혀도 혼자 풀어내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글쓰기 수업이나 모임을 통해 함께 글을 쓰다 보면 서로의 글을 읽고 피드백해 주는 과정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기도 합니다. 오늘은 함께 매일 글을 써나가는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영감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글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왜 글을 쓰고 있을까?
물론 1차적인 이유는 책을 내기 위해서일수도 있고, 내가 성장하는 과정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뭔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만으로는 글을 이렇게 집요하게 써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의 흐름을 조금 더 따라가다 보면 무언가 나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도 느껴지고, 내가 공부한 흔적들, 내 생각들을 남겨놓고 싶은 마음도 느껴집니다.
그렇게 그 마음의 실을 끝까지 잡아당겨보니 이런 문장이 남겨져 있습니다.
글은 나의 존재를 완성하기 위해 존재한다.
학창 시절 시험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시험이 기다려지진 않더라도 적어도 시험을 치지 않으면 허무할 겁니다. 그동안의 자신의 노력을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까 말이죠.
문득 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글로 남겨 놓지 않고 나의 생각이나 내 삶의 흔적들을 남겨 놓을 수 있을까요? 물론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겨 놓는 것도 가능합니다만 그 사진과 영상을 설명하고 보관하기 위해서도 글은 필요하니까요.
글을 통해 내 생각을 분류하고, 정리하고, 다시 통합하고 발전시켜 나가면서 더 나은 생각과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갈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우치다 타츠루는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액자의 틀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세계를 통째로 잘못 볼 가능성이 있다
나라는 존재가 소중하다면 먼저 나를 위해 글을 써야 합니다. 그 글은 내 존재를 완성시켜 주는 가장 아름다운 친구가 되어 줄 겁니다. 우리가 글을 쓰는 행위를 "존재를 완성하는 방식"(액자의 틀)이라고 이해하면 그 글쓰기가 무력해지는 일을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서, 하나의 과제를 위해서, 정확한 대상도 모르는 막연한 누군가를 향해 글을 쓴다면 자신의 글에 회의감을 느끼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시간 읽고, 쓰고, 성장하려고 노력하면서 알게 된 작은 깨달음입니다.
삶을 기록하고, 꿈을 기록하고, 생각을 기록하고, 기억을 기록하는 이 작은 반복이 나라는 존재를 분명 더 빛나게 만들어 줍니다.
책은 누구나 읽을 수 있고, 글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극소수의 사람들만 제대로 읽고, 제대로 씁니다. 그리고 그렇게 제대로 읽고 쓰면서 한 단계 성장한 사람들만 볼 수 있는 세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