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라면을 끓이며>를 읽었다. 혼자서 자주 먹는 먹거리 이야기로 시작하여 1963년에 처음 개발된 시절의 이야기, 현재 매년 36억 개가 팔리는 라면 공화국의 단상까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라면과 전체로써 존재하는 라면이라는 신기루를 이야기한다. 인상적인 대목은 글 마지막 부분에 소개한 김훈 작가 자신의 라면 레시피다. 한 번쯤은 따라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지만,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은, 나와는 정반대의 스타일이었다.
본의 아니게 초등학교 4학년 처음 엄마에게 허락 맡고 처음 스스로 끊여보았던 안성탕면부터 시작된 지난 30여 년의 내 인생의 라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자기만의 라면 레시피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나도 한때는 참 다양한 레시피로 다양한 종류의 라면과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려고 노력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돌고 돌아 돌아온 지점은 역시 순정. 카마니아들 사이에서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말이 있듯이, 라면 역시 레시피 개발의 끝은 라면봉지에 적힌 대로 끓이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아무리 해도 본인이 끓인 라면이 맛이 없다고 하던 분을 세 분 정도 만났는데, 그분들을 생각하며 가장 기본적인 라면 잘 끓이는 초간단 레시피를 소개할까 한다.
라면을 잘 끓이기 위해 이해해야 하는 것은 "물, 불, 면" 딱 3음절뿐이다.
그중 첫 번째 물이다. 의외로 간단하다. 익숙한 사람은 컵이나 대접 같은 걸로 쉽게 맞추지만, 초보에겐 추천하지 않는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500ml짜리 생수 한 명을 사는 거다. 그리고 다 부으면 된다. 안내문에는 550ml를 넣으라고 되어있다고? 맞다. 50ml 더 안 넣어도 된다. 대체로 물 양을 못 맞추는 사람의 특징은 그 50ml의 양에 대한 착각 때문이다. 실제로 소주 2/3컵 정도의 물이라 크게 신경 안 써도 될 뿐 아니라, 계란만 넣어도 충분히 알맞은 맛이 나오기 때문에 500ml 생수 한 병으로 충분하다.
다음은 불이다. 기본적으로 라면은 센 불에 끓이는 것이다. 센 불이라 하면 가스레인지 기준으로 강 중 약이라고 했을 때 강과 중의 중간 정도의 불이면 된다. 1~2인용 라면 용기로 쓸 수 있는 작은 냄비라면 너무 센 불엔 손잡이까지 가열되어서 좋지 않다. 불꽃이 냄비의 아래쪽 전체를 감싸는 정도면 충분하다. 이후에 불은 끌 때까지 건드릴 필요 없다.
마지막으로 면이다. 면은 물이 끓기 시작하면 넣는다. 스프는 면을 넣은 다음에 넣는다. 이때 뚜껑은 닫지 않는 게 원칙이다. 센 불이라 금세 끓어 넘치기 때문이다. 끓이는 시간은 알람을 맞춘다. 라면봉지에 적힌 대로 해도 되지만 30초 정도 적게 맞추는 걸 권한다. 보통 4분을 끓이라고 하면 3분 30초만 맞추는 거다. 더 정확하게 계산하면 라면을 넣고 스프 넣고 알람 맞추는데도 시간이 들기 때문에 3분 20초로만 맞춰도 충분하다. 모든 면류가 마찬가지지만 10초 차이만으로도 면발의 탄력에 차이가 난다. 찌개 같은 음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면은 정확히 정해진 시간만 끓여야 최상의 맛을 내는 예민한 녀석이기 때문에 알람을 초단위로 맞추는 것은 결코 오버가 아니다. 계란을 좋아한다면 3분 정도에 계란을 넣어준다.
참고로 계란을 맛있게 먹으려면 계란을 넣은 직후 흰자 부분만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준다. 그럼 덩어리로 뭉치지 않고 국물에 잘게 풀려서 국물 맛이 더 풍부해진다. 노른자는 풀지 않고 그대로 살려둔다.
찬 계란을 넣으면 보통 펄펄 끓던 물이 조금 잠잠해진다. 이때 흰자를 풀고 조금 기다리면 다시 끓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3분 30초를 알리는 알람이 울릴 것이다. 그러면 불을 끈다. 그리고 뚜껑을 닫는다.
기본적으로 면의 탄력은 가장 잘 익은 타이밍에 찬 물에 헹구는 것이 생명이지만, 라면은 그런 조리법이 아니므로 찬 물 대신 뜨거운 상태로 뜸을 들여야 한다. 냄비에 남아있는 자체 열로 남은 30초 동안 뜸을 들인다. 이때 면에 탄력과 맛이 생겨난다. 자, 드디어 완성이다.
라면은 크고 좋은 용기에 전체를 다 옮겨 담는다. 비스듬히 기울여 부으면 노른자는 여전히 면 위에 살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뜸을 들이는 동안 겉만 살짝 익어서 노란 윤기를 내뿜으며 반짝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첫 번째 젓가락질에 그 윤기 나는 노른자를 콕 찔러 그 아래 면까지 집어 올린다. 그러면 반숙 상태의 노른자가 깨지면서 들어 올리는 면발을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이렇게 먹는 첫맛이 가장 맛있다.
여기까지다. 이미 잘 끓이시는 분들은 하던 대로 하시면 된다. 어쨌거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은 내가 끓인 라면이다. 하다못해 라면 하나 끓이는 것조차 자기만의 개성과 기준이 필요하다. 뭐, 인생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 오늘은 아무래도 라면을 끓여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