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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Aug 09. 2019

#_시간 순삭의 비밀

순식간에 흘러가는 즐거운 만남에는 뭔가 특별한 비밀이 있다.

퇴근 시간 전에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는데 / 왜 집에만 오면 시간이 너무 빨라서 / 아쉬워 제대로 못 쉬고 / 평일 일과 중에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는데 / 왜 주말만 되면 시간이 너무 빨라서 / 아쉬워 제대로 못 자고 / 그냥 시간이 똑같이 흘러가기만이라도 / 좋은 순간만은 천천히

- 장범준 3집 <당신과는 천천히> 가사 중에서


1,000% 공감이다. 왜 힘든 시간은 천천히 가는 데 좋은 시간은 어찌 그리 빨리 지나가는지. 누구나 일상에서 온 몸으로 느끼는 감각이지만, 여전히 왜 그런지 모를 일이다.


처음 엘리베이터가 나왔을 때 편리하긴 했지만, 사람들은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불평했다. 그래서 속도를 높여 봐도 불만은 여전했다. 그런 엘리베이터를 사람들이 아무런 불평 없이 타기 시작한 건 그 안에 거울을 붙이고 나서부터였다. 이전과 똑같은 속도였지만, 사람들은 전혀 지루해하지 않았다. 자기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뇌가 심심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장범준의 노랫말처럼 평일 일과 중에는 시간이 느리게 가는 이유는 지루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주말에는 전혀 지루하지 않다. 하루 종일 앉아서 드라마만 봐도 재미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날 때도 비슷하다. 어떤 사람과는 한참을 얘기한 것 같은데도 시간이 5분밖에 안 지난 반면 마음 잘 맞는 친구를 만나면 5시간도 순식간이다.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을 빼고 5시간을 내리 수다를 떨었는데도 아직 할 말이 남아서 집에 가는 길에 톡으로 이야기하고,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하기로 한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랑 잘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나와 닮은 면이 많다. 물론 서로 많이 다르지만, 어쩌다 공통관심사가 대화의 주제로 나오면 봇물 터지듯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맞아 맞아’ ‘끄덕끄덕’ 손뼉 치고 맞장구를 치며 대화한다. 그런 만남은 거울 같다. 비록 타인이지만 그 안에서 나와 같은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반대로 서로 공감하지 못하는 관계는 지루하다. 그 안을 아무리 들여봐도 내가 보이지 않는다. 거울 없는 엘리베이터처럼 삭막하게 가야 할 곳으로만 간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다시 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설레는 만남은 공감으로 가득하다. 연예를 할 때는 심지어 서로 말이 없어도 좋다. 별 말 안 하고 서로 보기만 하는데도 지루할 틈이 없는 거다. 이미 마음으로 서로를 잔뜩 끌어안고 있기 때문이다. 눈빛만으로도 이 사람이 나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나를 얼마나 따뜻하게 감싸주는지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은 공감보다 더 힘이 세다.

손만 잡고 있어도 밤새 설레던 사람도 사랑의 마법이 풀리면 지루한 관계가 된다. 너 안에 있는 나를 보고 그렇게 즐거웠는데 이제 그 속에 나는 없고 너만 있어서 그렇다. 그건 호르몬 탓도 아니고, 사랑이 변한 것도 아니다. 상대에게서 더 이상 나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서로가 상대를 품어주지 못하는 관계는 지루한 법이다.


뒤늦게 독서의 즐거움의 눈을 뜬 사람들을 종종 만나면 하루 종일 책만 읽고 싶다는 말을 한다. 책에 관심이 생겼고, 책이 궁금해졌고, 책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책만 읽어도 시간 순삭을 경험한다. 40분을 가야 도착하는 곳을 책을 보다 지나치기 일쑤다. 책 속에서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나의 과거를 만나고 나의 현재와 미래를 보기 때문에 재미있다.


음악도 사람도 책도 그 안에  내가 빠지면 지루하지만 나를 발견하는 마주침은 언제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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