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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유 Jun 01. 2021

감정은 나를 위해 일한다.


상처로부터 나를 지키는 감정

감정을 보다 신뢰하기 위해서 감정마다 제 역할과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 둡시다. 감정은 오직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만 작동합니다. 그 보호는 이성적이지는 않습니다. 마음은 자신의 과거 속에서 가장 아팠던 상처들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상처로부터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작동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음의 상처는 주로 어린 시절에, 기억하기도 힘든 때에 생겨납니다. 어렸을 때의 상처는 최초의 경험이라서 더욱 강렬하기도 하지만, 아직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는 능력이 없어서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부모님의 다툼 속 불안감, 두 분이 떠나가면 혼자 남을 거란 두려움, 누군가의 놀림과 괴롭힘, 창피함,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는 좌절감... 


처음으로 입은 마음의 상처는 어른이 되어 돌이켜보면 작고 귀여운 에피소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은 이성과는 다른 뇌의 영역에 고스란히 기록됩니다. 그래서 그 상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이 뜨겁고 고통스러운, 어린 날의 느낌으로 남아있죠. 감정들은 제각기의 모습으로 이 상처 속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소중하고 연약한 것을 지키는 분노

화라는 감정은 다양한 이유로 나타나지만, 기본적으로 소중하고 연약한 것을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합니다. 화가 나면 몸에 힘이 생기고 목소리가 커지는 등 누군가를 위협할 수 있는 신체반응이 나타납니다. 무언가를 지킬 수 있도록 힘을 내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지키고 싶어 하는지, 어떤 것을 공격적으로 받아들이는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창피하고 수치스러운 감정의 상처가 있다면, 다시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누군가 나를 부족하게 바라볼 때 화가 납니다. 무시당하는 느낌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다시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기 위해 화가 기능하는 것이죠. 하지만 현실을 이성의 눈으로 살펴본다면, 타인은 나를 무시할 수 있습니다.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를 무시함으로써 우위에 서고 싶은 성격을 가진 사람일 뿐이죠. 혹은 그도 무시받는 것이 두려워서, 타인이 나를 무시하기 전에 먼저 무시해 버리는 방어기제를 가졌을 수도 있지요.


혹시 모를 위험을 통제하고 예측하려는 불안

불안은 두려운 무엇이 나타날까 봐 초조해지고, 경계태세를 갖춥니다. 이럴 때는 두려운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불안은 두려운 것을 마주하지 않도록 수많은 걱정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려 합니다. 걱정에 빠져드는 대신, 반대로 두려운 그것의 정체로 향해가야만 불안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안을 해소하고 없애기 위해 무언가를 해치웁니다. 경쟁에서 뒤처지는 두려움이 있다면, 두려움을 고스란히 느끼며 그 속에서 정말로 두려운 그 감정을 느껴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 대신 자기 계발을 하고, 더 앞서나갈 수 있는 것을 찾아 헤매곤 합니다. 앞서 나가는 방향에서는 불안이 영원히 해소되지 않습니다. 수많은 걱정과 바쁜 노력을 통해서 피하고 싶은 두려운 ‘나의 상태’는 무엇인가요? 


상처 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울과 무기력

우울한 감정과 무기력한 상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원하지 않게끔 합니다. 최근에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소중히 여기다가 잃어버려서 상처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또다시 같은 자리에 상처 입지 않기 위해서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무기력한 상태로 마음을 보호하고 있는 감정입니다. 


소중히 여긴다는 건, 진심이라는 건, 때로는 잃어버리는 아픔을 주기도 합니다. 다시는 소중한 것을 만들고 싶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싶은 건 당연한 마음의 일입니다. 이때도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곤 합니다. 교통사고가 나서 아픈데도 출근해서 일을 하는 미련한 주객전도 상황일지도 모릅니다. 잠시 쉬어가며 내게 소중했던 것의 의미를 되새겨 볼 기회입니다.


감정이라는 놀라운 도구

감정은 심리상담의 여러 이론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놀라운 도구입니다. 저도 심리상담을 할 때 늘 내담자분의 감정을 나침반으로 삼습니다. 감정을 신뢰하고 따라간다면, 그 안에 담긴 풍부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감정이 지키는 상처를 이해해 보세요. 나도 이해할 수 없던 무의식 속 마음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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