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배 Zoe Aug 30. 2023

사랑받고 자란 것에 목맬 필요는 없었다

22-12-24


차에 이상한 경고등이 떠서 캘빈에게 연락했다. 그랬더니 정비를 대신 받아주겠다며 차를 끌고 오란다. 그러면서 센서 하나가 고장 나서 그런 거지 차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센서를 고치는 데는 1,000불가량 든다고. 이미 내가 산 가격에 그 금액이 고려된 거였다. 당장 타고 다니는 안전에 문제가 되는 건 아니고, 나에게는 그게 고장나준 덕에 싼값에 차를 살 수 있었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다.


캘빈과 그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나는 5월에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한국에서 봐야 할 시험이 있다. 난 벌써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도 끊어놓은 상태다. 그래서 캘빈의 차는 나에게 더욱 좋았는데 1년짜리 차량 등록을 해둔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새로 등록하는 번거로움이 없다. 돌아갈 날을 말하니 캘빈에게 산가격 그대로 내가 팔아도 될 거라고 말해준다. 캘빈은 내게 무슨 공부를 하는지 물었다.


"저는 심리학을 공부해요"

"심리학? 그거 똑똑해야 하는 건데?

"저 똑똑해요!"

"너 11월에 태어났니?"


갑자기 이런 이상한 대화가 이어졌다. 11월에 태어난 거랑 똑똑한 게 무슨 상관인 거지? 그러더니 갑자기 번역기를 들어 캘빈이 글자를 보여준다. 이유는 바로 "전갈자리"였다. 캘빈도 전갈자리라서 안단다. 그렇게 전갈자리 유착관계가 생겼다. 그 덕에 캘빈은 시드니에 있는 동안 어려운 일이 생긴다면 돕겠다고 한다. 가족 한 명 없이 이곳에서 지내는 나를 캘빈은 또 걱정한다. 고맙지만 내게는 소피가 있음을 설명하고 언젠가 한국으로 놀러 올 캘빈과 위챗을 교환했다. 그리고 옆 문을 통해 캘빈의 가라지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캘빈의 집은 겉으로 봐도 커다랬는데 그 집을 셰어 하나 주지 않고 가족 4명이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 가라지는 이제 셰어를 줄까 해서 공사 중이라고. 시드니에서 내가 오래 지낼 거라면 셰어를 내줄 수도 있다는 말도 덧붙였는데 아쉽게 된 일이다. 캘빈의 가라지 방들은 믿을 수 없었다. 방이 서너 개 있고 거실도 있고 부엌도 있다. 한국에 있는 우리 집보다 더 큰 공간이 나왔다. 혹시 내가 캘빈의 셰어집으로 들어가는 날이 생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니 캘빈의 아내분에게 전혀 몰라봤다고, 캘빈보다 20살은 어려 보인다고 아부를 떨고 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나는 트레인을 타고 시티로 갔다. 백패커스 동생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고백하자면 성인이 된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조금 아픈 날이었다. 제대로 된 크리스마스 선물 하나 받지 못해 본 나를, 크리스마스가 행복한 기억이었던 모든 이들이 괴롭혔다. 크리스마스의 선물은 사랑의 징표 같은 것으로 여겨졌으니까.


언젠가는 그랬다. 받을 수 없는 사랑에 목을 매고, 원치 않는 사랑이라면 내팽개쳐버리는, 이상한 사랑만을 했다. 사랑을 줄 때면 나를 뛰어넘는 마음을 줘버렸다. 그만큼 주고 나면 받는 건 아무래도 작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사랑받고 자라지 못한 내가 제대로 된 사랑을 하지 못하고 살 것이 걱정 됐다. 모두가 사랑받고 자란 누군가를 원하는 것 같은 시류에, 다른 이들만이 사랑받고 자란 태가 난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은 때마다 나를 할퀴었다. 그렇다고 해서 바꿀 수 없는 과거의 사랑을 내가 어찌할 것인가.



전 세계 각지에서 한여름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환상을 품고 시드니로 모여든 듯 본 적 없는 인파에 시달렸다. 그들은 그렇게 크리스마스의 축복을 누렸다. 트리를 보며 행복해하는 사람들 사이로 나 또한 뿌듯했다. 선물은 이제 누군가에게 바라지 않고도 내가 스스로 줄 수 있게 됐다.


나는 이제 모든 내 과거가 너무 고맙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회복탄력성에 대한 책을 읽으며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을 헤아리게 됐다. 많은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지는 오래됐다. 이건 심리학을 배우기 전부터 그랬다. 남들과 비교했을 때 넘치는 사랑을 받진 못했더라도 우리 부모님이 최소한의 도리를 못하진 않았다. 어린 나는 조금 서운했을 뿐 아주 서글프진 않았다. 그때 내 주변의 아이들은 나보다 더 사랑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내가 처한 환경을 미워하게 된 건 주변에 나보다 나은 것들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면서였다. 나는 우리 부모님이 내게 단단한 토대를 심어주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내 긍정성의 원천은 우리 부모님이 내게 심어준 베푸는 마음이었다. 그러니 돌려받지 못할 사랑임에도 넘치도록 퍼주곤 했다. 그 마음으로 밑바닥을 다지고 나는 감사라는 기둥을 세웠다. 정말 우연히, 다이어리가 하나 비어서 감사일기를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감사일기를 적게 된 지 벌써 2년째다. 감사한 마음이 들면 감사일기에도 적고, 사랑에게 편지도 썼다. 그렇게 나는 내가 감사한 점을 이리저리 심어놓고 다녔다.


그러면서 감사하는 마음이 습관이 됐다. 일기는 매일 써야 했고 최악의 날에도 나는 감사한 점을 찾아야만 했다. 한 상황을 봤을 때 그걸 비틀어서 감사할 구실을 살피는 게 버릇이 됐다. 그러고 보면 아주 나쁜 상황은 하나도 없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으니까. 내가 뭔가 잘해서 지금과 같이 긍정적으로 살게 되었다기보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감사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진짜 잘 살게 됐다. 내가 처음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할 때의 나에게는 그리 좋은 일만이 일어나지는 않았었으니까.


그 결과 시기하고 아파하던 크리스마스가 행복하고 감사한 날로 바뀔 수 있었다. 감사의 축복으로 나는 크리스마스의 은총을 한가득 받는 어른으로 자라났다. 그렇다면 나에게 남은 몫이 뭘까? 더 이상 받는다면 계속 넘쳐흐르기만 할 텐데. 받은 만큼 사랑으로 베푸는 것만이 나의 소명이란 걸 희미하게나마 이제는 알겠다.





관련 글


이전 12화 지구별에 여행하러 온 여행자니까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