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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녀 Jun 30. 2022

결국 아무 것도 이루어내지 못할지라도

최애돌셀럽_이준호_커뮤니티 서포트에 관한 단상


누군가의 호의로 못생긴 손톱이 예뻐지는 광영을 얻었다. 그런데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설익힌 기술로 붙인 가짜 손톱이 제구실을 못해서였는지 손톱이 길어졌다는 생각을 못하고 이것저것 겁 없이 만지다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손톱이 찢겼다. 찢긴 손톱쪼가리가 며칠 흔들흔들하더니 가운데 손가락 손톱 끝에 달려있는 살덩이와 함께 뭉텅 잘려나갔다. 불안하게 매달려 있던 손톱 조각을 떨어지면 큰일 날세라 일회용 밴드로 꽁꽁 싸고 호호 불면서 다녔는데 틈새로 들어간 물기에 불었나보다. 손을 씻고 무심결에 수건으로 닦다 악, 하는 비명과 함께 보내드렸다. 그 작은 조각 하나에 손톱의 사활이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누가 손대면 큰일 날 듯 싸두고 엄살을 떨었는데 막상 잘려나가고 나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휘두를 수 있어 그 동안 엄살을 떤 것이 새삼 무안하고 부끄럽다. 쓰라림과 아픔도 손톱이 매달려 흔들거릴 때 보다 오히려 덜하고 무엇보다 손가락이 살아서 숨을 쉬듯 시원하여 좋았다. 아픔은 잠시였을 뿐, 진즉에 떼어내 버릴 걸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으니 사람 마음 간사하기가 참...           



무엇이든 마지막 남은 미련 한 조각이 문제다. 일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고, 살아가면서 겪는 부딪힘이나 관계의 꼬임들도 그렇고. 정리하고 툴툴 털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질질 끌려 나가는 마지막 순간 때문에 추해지고, 구차해지고, 비루해진다. 안타깝게 남은 마지막 정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붙들어도 결국 미련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밖에 없는 것들, 그것들이 문제다. 나는 그렇다. 전부를 쏟았기 때문에 말끔히 비워지고 새로 채울 공간이 생긴다. 이 말은 곧, 전부를 쏟지 않으면 비울 수도 없다는 얘기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가질 수 없다면 잊어라. 머리든 가슴이든 필요한 순간에 자주 떠오르는 문장들이다. 타고난 성정과 훈련된 태도가 이러하다 보니 누군가는 맺고 끊음이 명확하다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덧정 없는 사람이라고도 한다. 스스로 돌아봤을 때 후자다. 사람이든 일이든 신기할 정도로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사라지는 지라 변명의 여지도 없다. 유일하게 묶여 있는 끈이 가족들인데 그나마도 넘치는 애정 때문은 아닌 것 같고 가족이라서, 가족이기 때문에, 가족이니까, 이다. 그런데 이제 한 부분이 더 생겼다. 팬을 자처하게 하는 최애라는 존재. 그로 인해 만나게 된 이런 저런 인연들, 그게 무엇이든 아니다 싶으면 미련 없이 돌아섰던 사람인데, 어찌 된 일인지 칼날처럼 날카롭던 관계정리 방식을 쓸 수가 없다. 쉽게 써지지가 않는다. 세상에 이런 미련, 이런 주접, 이런 진상을 보았나? 이유도 모르겠고 원인은 더더욱 모르겠다. 같은 사람 좋아한다는 이유로 이렇게까지 너그러워질 수가 있는 건가?                 



연예인의 팬을 자처하는 일은 한창 나이인 사춘기 때도 안했던 행동이라 스스로 기준치가 없음은 물론이고 살면서 주변에 간혹 등장하던 덕질러들에게 집중했던 기억도 없다. 덕분에 덕질을 시작하고 나서 만나지는 모든 사건들과 팬덤 안의 관계를 통해 알아지는 모든 것들이 어설프고 서툴다. 나는 포카도 못 모으고, 탑꾸도 못 만들고, 기타 등등의 궂즈 가지는 일에 흥미도 없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호불호가 뚜렷해서 어떤 것들은 탐나고 어떤 것들은 관심 밖인데 그조차도 열심이 아니라서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 식이다. 음반과 영상을 사고는 있는데 덕질 초기에 엉뚱한 곳에 소비를 하는 바람에 텅장이 된 후로 구매 멈춤 상태라 아직 전부 갖추지는 못했다. 그러다 보니 팬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일들에 둔감하다. 기껏해야 트위터인별그램덕질용 계정을 만들고 공식 카페에 가입해 있으며 최애의 소속사와 팬클럽, 그룹을 팔로우 중이다. 아, 나의 최애가 아직 아이돌인지 아닌지 구분도 못하는 주제에 아이돌 덕질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사이트에도 가입했다. 이만하면 잘 하고 있는 것일까? 가끔씩 궁금하다.           



팬미팅을 놓치고, 이벤트를 놓치고, 심지어 실물영접의 기회를 가졌을 때는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겁을 잔뜩 집어먹고 후퇴를 했다. 모양은 비슷하지만 현실은 다른 현장에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편하게 일을 하고 살았는지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결국 다른 사람들 틈바구니에서는 도무지 답을 얻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옛 전우들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다 늙어서, 덕질을 하겠다고, 현장에 복귀를 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남들은 오죽할까? 하지만 어쩌랴? 엄마들의 세계는 이미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최애는 하늘의 별처럼 멀고 아득하니 물에 뜬 지푸라기라도 고맙게 잡을 지경인 것을. 음악잡지의 취재와 기고를 핑계로 10년 만에 다시 명함을 갖게 되었는데 현장을 뛸 때도 이름 건네는 걸 아꼈던 편이라 명함은 여전히 낯설고 생경하다. 이제 최애의 신곡, 앨범 소식이 들리면 취재를 할 것이고 최애가 활동하는 행사에 당당히 입장할 것이다. 운이 나빠 새 앨범은커녕 공연도 귀한 지경이 된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너무 늦게 알아본 내 눈을 탓할 수밖에.     


      

실제 소녀시절엔 해본 적 없는, 떼로 몰려다니는 일들을 거리낌 없이 해치우면서 최애의 사소한 부분들을 이야기하며 꺅꺅거린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에게 이처럼 빠져든 것일까? 모여서 얘기를 나누다 보면 최애에게 바라는 것들이 같을 때도 있고 전혀 다를 때도 있다. 우리 마음을 좀 더 길게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과 단편적일지라도 최애가 알 수 있게 콘텐츠로 만들어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가 우리를 보고 있는 것과, 우리가 그를 보는 것, 서로를 보는 것과 다른 시선으로 우리 스스로 우리를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무엇을 하든 기록으로 남겨야 하고, 기왕지사 하자고 들면 좀 더 재미있고 그럴싸한 모양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나를 콘텐츠 기획자의 길로 이끌었다. 내가 나다워지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인생 최대 이슈, 최애의 배우 데뷔 9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최애돌셀럽 이준호 커뮤니티에서 진행된 서폿에 영상을 제출했고 오늘 그 영상이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향해 길을 열었다. 가슴이 뛴다. 내가 만든 영상이, 사람들이 숱하게 오가는 길목에서 최애를, 최애의 눈부신 활동을, 최애의 지난 시간의 노력과 결실을 보여준다. 날뛰는 마음과 별개로 주변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과 함께 성공한 서포트를 자축하러 구경도 갈 예정이고 그 앞에서 인증샷도 남기려 한다. 이 마음을 무엇이라 얘기해야 좋을까?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연애감정도 아닌, 막연한 동경이나 연민도 아닌, 분명히 모르는 사람인데 마치 잘 아는 사람인 것만 같은 이 동질감을, 그저 한 사람의 웃음, 한 사람의 말, 한 사람의 몸짓, 한 사람의 표정만으로 꽉 들어찬 마음의 가득함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담고 싶은 것들을 다 담아내지 못해서 아쉽지만, 그래서 많이 부족하다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누구의 도움에 기대지 않고 오롯이 내가 해낸 일이니 오늘 하루는 마음껏 기뻐하려 한다.           



하다하다 결국 아무 것도 이루어내지 못할지라도. 

오늘의 덕질은 후회 없이, 남김없이, All or N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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