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콘을 향한 길고 긴 여정
전쟁 같은 티켓팅, 피겟팅이 팬덤을 휩쓸고 지나갔다.
다행히 비루한 손을 가진 내게도 황금같은 자리가 주어졌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기념일 서포트 영상이 주는 흥분으로 마냥 설레고 있던 2022년 6월 30일, 누군가 커뮤니티 단톡방에 새로 생긴 공식계정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트위터에서 실시간으로 생겨난 사건을 알지 못해 공식계정을 사칭하는 이들이 많으니 조심하자는 말을 답으로 남겼는데 바로 이어 그 계정에 팬들을 위한 공연 안내가 게시되었다. 오후 내내 단톡방과 소셜 담벼락이 시끄러웠다. 사실 여부에 대한 확인과 기대감으로 인해 그야말로 북새통 같은 흥분이 시작된 것이다. 공연에 관한 갖가지 준비에 관한 안내들과 1월 팬미팅때 경험했던 높고 험한 티켓팅의 압박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티켓팅을 걱정하는 설왕설래 속에서 사소한 언쟁들과 시비들이 오가고 여전히 중심 없는 목소리들이 마구 뒤엉켰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그 많은 언쟁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늘 그렇듯 팬 하나하나가 소중한 최애가 오래 된, 혹은 오래 참고 기다려준 팬들에게 애틋하다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그가 지금 특정 그룹에 나눠주고 있는 마음은 오랜 시간 그의 옆자리를 지킬수록 내 것이 될 것이라는 마음의 확신으로 이어진다. 더 많이 가진 누군가를 질투하고 혐오하느니 나도 그만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쪽을 택한다. 특혜니 억지니 하는 말들로 서로를 상처 입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결국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은 군백기 동안 잊고 있었던 최애의 일 욕심이 되살아났다는 것과 그 결과로 쪼개진 시간을 팬들이 나누어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7월 첫 주 내내 ‘홍대 입구역’에 설치된 서포트 영상을 보기 위한 걸음들이 이어졌고 나 스스로 억누를 수 없는 부심이 자꾸만 튀어나와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서포트 개시 열흘 뒤인 7월9일에는 최애돌셀럽 커뮤니티에서 미리 계획했던 부산 방문 일정을 진행했다. 트위터나 공식카페에서 발견한 흔적들처럼 소수의 서넛이 함께 하겠구나 예측했던 일이었지만 생각지 못한 호응에 무려 14명이나 참여한 행사로 변신했다. 드라마 속 최애의 흔적을 따라 걸으면서 소녀처럼 재잘대는 중년의 여자들에게는 두려움이 없었다. 사랑이 본디 그런 것이다. 두려움보다 더 강한 그리움과 부끄러움보다 더 깊은 애틋함이 마음을 꽉 채워,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하든, 그 모든 것이 당당한 것. 나는 이 여행의 제목을 ‘강두야! 놀자~’로 정했다. 강두는 최애의 6번째 필모에 이름을 올린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 주인공 이름이다. 강두를 만나기 위해 부산으로 달려간 우리는 강두와 함께 어울려 부산의 거리, 골목의 곳곳을 탐험하고 손도장과 발도장을 찍으며 행복했다.
서포트 영상 앞에서 만난 그녀들의 미소를 기억한다.
서포트 영상 앞에 서서 가슴에 손을 모으던 우리는 영원한 소녀다.
광안리 백사장에서 함께였던 그녀들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광안리 백사장에서 목청 높여 떼창을 부르던 우리는 영원한 아이다.
제각각인 얼굴과 분위기, 성격, 개성을 가진 우리는 ‘이준호’라는 이름 아래 옹기종기 모여 서로의 등을 다독이고 머리를 맞대는 가족이 되었다. 혹여라도 떼로 몰려다니면서 최애의 이름에 작은 흠집이라도 낼까 하는 걱정에 각기 다른 조로 시간차를 두고 이동하는 과정을 모두가 이해했고 공감했다. 상식을 전했을 때 수긍하는 이들과 함께여서 좋았다. 마지막에 이를 때까지 참고 인내할 줄 아는 최애의 심성을 닮고자 노력했고 그 때문에 조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때보다 강한 결속을 만들어준 가족 여행이었다. 한낮의 더위를 이겨낸 모래를 쓰다듬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누군가는 위로로, 누군가는 즐거움으로, 누군가는 공감과 대리만족으로. 왜 이준호인가?를 서로에게 고백하면서 거울 앞에 선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도 가졌다. 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공통점 없는 사람들이 모여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마음을 공유하는 기적을 본다. 누가 우리에게 이런 마음을 주었는가? 우리에게 이런 시간을 선물한 그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부산 광안리 백사장에서 나눈 여름밤의 열기가 쉬 식지 않고 1주일이 넘도록 밤바다의 너울처럼 흘러간다. 아마도 치명적인 달콤함이 뒤섞인 탓이 아닐까 짐작한다. 며칠 전 업데이트 된 공연의 메인 포스터 속 최애는 여름밤의 요정이었다. 포스터를 보자마자 세익스피어의 고전 작품 ‘한 여름 밤의 꿈’이 떠올랐다. 공작과 여왕의 결혼식이 이루어지는 시즌, 결혼이 아니면 죽음을 강요당하고 있는 비련의 여주인공 헤르미아와 그녀의 연인 뤼산드로스. 귀족 구혼자 데메트리오스, 데메트리오스를 사랑하고 있는 헬레나, 이 두 쌍의 남녀가 숨어들어간 요정들의 숲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요정의 왕 오베론은 사소한 다툼 끝에 별거중인 왕비 티타니아의 약점을 잡으려 사랑의 묘약을 사용한다. 그런데 마침 숲에 들어온 남녀 중 헬레나의 짝사랑을 도우려 나선 것이 장난꾸러기 요정 퍽의 실수로 묘약이 엉뚱한 상대에게 발라지게 되고 그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소동 끝에 왕비의 항복을 받아낸 오베론이 사태를 수습한 후, 3쌍의 결혼식과 함께 마을 사람들의 연극이 상연되며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귀족과 서민, 요정들의 이야기가 혼합된 낭만적인 세계관이 신비한 기운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하지’의 밤에 펼쳐진다. 포스터를 보니 최애의 손에 들려진 빛나는 빛의 굴절이 마치 사랑의 묘약인 것처럼 황홀하다. 그가 뿌리는 빛의 잔영을 따라 깊은 꿈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빠져나올 수 없는, 치명적 달콤함을 덧바른 사랑의 꿈이다.
공연 일정이 발표된 후에 이루어지는 모든 대화의 사이사이 우리의 생각과 상상은 최애와 함께 뛰어노는 공연장에 이미 다다랐다. 우리는 최애가 불러줄 노래들을 예측하고, 가사를 외우겠다는 다짐을 하고, 사소한 응원 방식 하나하나까지 알고자 노력한다. 누구인들 다른 마음일 수 있겠는가?
그리고, 마침내, 오늘, 7월14일 밤,
전석 매진이라는 결과와 함께 1차 티켓팅이 마무리 되었다.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이들의 2차, 3차, 티켓팅이 곧 시작될 것이다. 남은 우리 모두에게 행운이 함께 하기를.
그리하여 우리들의 뜨겁고도 달콤한 여름밤의 열기가 새로운 계절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기를. 최애의 날개가 태양을 향해 날아갈 때 녹아내리지 않는 단단함과 강함으로 그와 함께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