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BEFORE_MIDNIGHT
열 번째 덕질기록에, 열망하고 동경하지만 최애의 곁에 머물 수 없는, 보답 받지 못해도 기꺼이 자신을 던져 거품이 되어도 행복한 팬들을, 나는 인어공주에 비유했었다. 최애 이준호를 곱상하고 아름다운, 적당한 품격이 있는 이웃나라 왕자 정도의 반열에 올려놓고 나름의 만족감을 느끼는 오류도 범했다. 한 여름, 해가 저물어 어스름한 저녁부터 자정이 되기 전까지의 밤, 이틀을 함께 했고 이제 하루를 남겨두고 있다. 일본행이 어려운 현실이 안타깝고, 무엇보다 그간 자부해왔던 내 운신의 자유가 생각보다 제한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인정하기 싫지만 어쩌면 덕심의 부족일 수도 있겠다. 곧 생각을 고쳐먹는다. 덕심은 차등으로 분류하거나 나눌 수 없는 것이고 방향만 다를 뿐이라고.
SK 핸드볼 경기장에 마련된 무대 위의 이준호는 날개달린 장화를 신은 헤르메스였다. 술이 아니어도 취기가 오르게 하는 디오니소스였다. 눈빛과 손짓만으로도 마음에 사랑을 일으키는 에로스였다. 열정으로 활활 불타오르는 태양, 아폴론이었다. 망설임 없이 심장에 칼날을 들이대는 아레스였다. 타고나길 우두머리로 태어난 제우스였다. 그는 적당한 동경의 대상인 이웃나라의 왕자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나의 삶을 지배하는 신이다.
believe / 이준호
이 어둠 속에 나라는 존재가 보일까
늘 고민 속에 끝이란 답은 찾지 못해
혹 이 모습이 지금 네게 보인다면
날 지켜봐 주렴 이끌어주렴
oh my heart
I believe you
I will sing this songs for you
never give up and fight for you
oh I
I believe you
I will always pray for you
you don't have to cry no more
oh I
내 두 눈 속에 반짝이던 빛이 꺼질 때
내 두 어깨가 초라해져 숨 죽어갈 때
널 생각하며 버텨왔어
이젠 내가 널 지켜줄 테니 안아줄 테니
oh my heart
I believe you
I will sing this songs for you
never give up and fight for you
oh I
I believe you
I will always pray for you
you don't have to cry no more
oh I
어떤 노래에는 실밥 같은 것이 들어 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던 일을 멈추고, 생각을 멈추게 하는 힘. 노래가 나를 끌고 간다. 그때의 장소로, 그때의 온기로, 그때의 감동으로. 마치 실밥들이 가만히 옷 솔기 밑에 숨어 있다가 슬슬 풀려지듯이 시간들이 걸어 나와서 그때의 그 사람을 만나고, 그때의 말들과 행동들을 기억해내고, 그때 그 순간, 그 삶이 나를 지배하는 착각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를 발견할 때 즈음에 이미 나를 집어 삼킨 그 노래가 내입을 통해 콧노래나 허밍으로 읊조려지는 것이다. 감정에 취한 내가 그 실을 잡아당기는 순간,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추억들, 기억들이 그 노래 속에 담겨 있다.
앞으로 남은 시간, believe를 들을 때 마다 오늘이 떠오를 것이다. 나도 모르게 흘러내린 눈물과 뜨겁고도 벅차게 가슴을 압박하던 심장소리, 보이지 않은 어딘가로 뻗어나가던 최애의 목소리, 그런 것들이 한꺼번에 이어져 기억나게 될 것이다. I will always pray for you. 듣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공연의 컨셉이라는 로맨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진지함 때문에 들을 수 없겠지, 라고 포기했던 노래. 피아노 소리가 묵직하게 들렸다는 이유만으로 피아노가 있는 무대만을 상상 속에서도 고집하게 만들었던 노래. 화려한 조명도, 격렬한 움직임도 없이, 마치 모든 것이 멈춘 듯 시공간을 흘러 파도처럼 내게 다가왔다. 그 순간, 알게 되었다. 사진을 찍겠다는 일념으로 왔지만 오히려 그의 음악이 나를 찍어 눌렀다는 것을. 가수로서의 그가 가진 힘을 얕보았던 지난날의 나를 반성한다. 카타르시스. 성취의 전율이 아닌 상처의 정화로 인한 해방, 또 한 번의 동질감이 최애와 나 사이에 놓인다.
하나 하나 세심하게 공들인 무대인데 무엇인들 마음에 차지 않겠는가? 우스개로 주고받는 ‘어제도 예쁘고 오늘도 예쁘고 내일도 예쁠 것이 너무나 당연한 우리 슈스’라는 말처럼 최애의 모든 무대가 아름답고 황홀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남는 장면들이 각자에게 남는다. 그게 취향이다. 나는 그의 비성과 두성 사이가 너무 좋다. 일본어와 영어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가 모국어인 한국어보다 더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를 부를 때 배우로서 가진 연기력이 얹어져서인가 가사전달력이 월등하다. 보통 남자가수들이 두성을 쓸 때 거친 쇳소리가 섞여 거칠게 터지는 느낌인데 이준호는 소리 자체가 매끄럽기도 하고 힘 조절도 잘해서 정말이지 아름답게 들린다. 요즘 유행하는 가수들의 간지러운 창법과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완전히 틀렸다. 춤도, 노래도, 심지어 연기까지도 군더더기가 없다.
이준호의 부모님은 그의 이름을 지으면서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들은 이준호라는 이름이 이처럼 깊은 감동의 옷을 입고 숭배적으로 불릴 것을 예상했을까? 그의 이름이 다름 아닌 이.준.호.라서, 그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그 이름을 준 부모라는 이유만으로도 그들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질 거라는 걸 예감했을까? 나는 이준호가 이준호일 수밖에 없는 주변을 이끌어내고 만들어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최애의 부모님과 형제들과 친척들과 친구들, 가족들, 이웃들과 직장동료들까지. 공연장에서 목이 터져라 외쳐 부르는 최애의 이름이 신에게 이르는 주문과도 같이 강력한 힘으로 내 안의 에너지를 끌어 모으는 것을 느꼈다. 웃겨도 어쩔 수 없다. 사실이니까. 그냥 이렇게 되버렸다.
한동안 나는 일상적인 사랑의 평화로움에 목멘 나머지 억지로 나를 숨기고 억눌렀었다. 나와는 맞지 않는 옷처럼 거북하고 불편한 행동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보통의, 보편적인 정의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던 탓이다. 마치 적정 연령이 되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야만 정상임을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 여겨져서 미친 듯 선을 보는 여자처럼 안정, 평화, 보편 같은 단어에 묶여서 이미 터지기 직전의 물풍선처럼 꽉 차 있는 비명을 숨기고 살면서 주는 만큼 돌려받으려고 하는 일반적이고도 평범한 사랑과 연애를 끊임없이 추구해왔다. 그런데 이제 알겠다. 내 사랑은 맹목적이고 일방적일 때 더 큰 힘으로 나를 지배한다는 것을. 오로지 한 방향으로의 집중이 나로 하여금 쓰게 하고, 찍게 하고, 노래하게 한다는 것을. 미친 듯 사랑하되 고요하게 자리를 지키는 내가 되려고 한다.
2022년 8월, BEFORE_MIDNIGHT.
그가 만들어준 여름밤의 정취와 감동이 마음속에서 빛난다.
이나츠 in hea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