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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녀 Aug 02. 2022

덕질이라 쓰고 사랑이라 말한다.


특정대상을 향한 달달한 감정의 수위가 보통 상식 기준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면 스스로 인정해야만 한다. 사랑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뇌를 MRI 촬영으로 보면 뇌의 쾌락 중추가 활성화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데 요즘 내 뇌를 찍어보면 어찌 나올까 궁금하다.      



사랑은 뇌과학적으로 호르몬 중독의 과정이다.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끼는 탐색단계, 즉 연애감정에 빠지는 순간 뇌에서는 도파민이 분비된다. 도파민이 왕성하게 분비되는 시기에는 세상이 내 것 같다. 할 수만 있다면 하늘의 별도 따주겠다는 맹세를 망설이지 않고 내뱉는 이유다. 도파민이 마구 분출되는 시기에는 제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감정을 이길 수 없다. 도파민에 의해 두뇌의 ‘쾌락회로’가 폭주를 시작하면 이성적 판단을 하는 회로는 잠시 활동을 멈춘다. 덕분에 장애가 있을수록 더욱 굳건해지고 아름다워지는, 멜로영화나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장면들이 일상에서도 펼쳐진다.      



일방, 혹은 쌍방이 감정을 확인하고 자각하게 되는 순간부터 표현욕구가 일어난다. 이때부터 도파민, 노르아드레날린, 세로토닌은 세트 구성으로 판을 펼친다. 경쟁자가 있을 때 공격성 물질인 노르아드레날린이 다량 분비되는데 질투심에 사로잡히면 노르아드레날린을 비롯한 바소프레신, 테스토스테론 등의 공격성향의 남성호르몬도 분출된다. 상대의 따뜻한 말 한 마디, 다정한 눈빛만으로도 세로토닌이 온몸을 휘감는다. 세로토닌은 행복할 때 생겨난다. 코르티솔의 수치도 높아진다. 코르티솔은 스트레스를 주로 관장하는데 근육, 간, 지방조직 등에 작용해 개체가 스트레스에 저항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염증과 통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으며 그 효과가 아스피린보다 수십 배 강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닐에틸아민도 생겨난다. 페닐에틸아민이 증가하면 하나하나 따지는 이성은 마비되고 샘솟는 열정을 기반으로 행복감에 취한다.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고,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한 줄 모른다. 페닐에틸아민은 체내에서 마치 각성제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정신이 맑아지고 흥분되며, 특정 대상에 대한 사랑이 샘물처럼 솟아나게 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페닐에틸아민이 우리가 먹는 음식 중 초콜릿에 가장 많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자, 이제, 그저 보는 것만으로는, 듣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도파민과 페닐에틸아민이 몸을 한껏 들뜨게 만들면, 뇌는 이제 생명체의 궁극적인 목적인 유전자의 지속과 번성을 목적으로 옥시토신을 분비하기 시작한다. 옥시토신은 번식과 매우 관계 깊은 호르몬으로 짝짓기, 성적흥분의 유도,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출산, 수유 등 모성행동이 필요할 때 다량으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좋은 인간관계의 바탕이 돼주는 신뢰감 또한 옥시토신에 의해 형성된다. 꼭 성적인 접촉이 아니더라도 단순히 누군가와 단란한 시간을 보낼 때도 분출된다. 누군가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믿음이 확고할 때, 가볍게 손을 잡거나 포옹을 할 때도 옥시토신이 분비되고 이는 곧 애착 형성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사랑을 하는 동안에 분비되는 또 하나의 호르몬은 바로 엔돌핀을 포함한 성적 호르몬이다. 이들은 통증을 잊게 하고, 쾌락과 극치감, 오르가즘을 느끼게 하는 물질들이다. 이런 물질들의 효과는 매우 뛰어나서 사람들은 일단 이런 물질이 주는 환희를 맛보게 되면 이를 오래도록 잊지 못하곤 한다. 시간이 갈수록 약물에 중독되어 점점 더 많은 약이 필요하듯이, 사랑이라는 감정 또한 상대에 대해 점차 기대하는 것이 커지고, 단지 서로 바라만 봐도 족했던 시절을 지나 상대에게 점점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약을 끊으면 고통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하는 중독자처럼, 이별 후에야 그 빈자리의 아픔에 괴로워한다. 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를 사랑의 중독자로 만드는 호르몬 엔돌핀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절로 분해되어 인간을 중독에서 구원한다. 그리하여 사랑은 변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최애로 인해 파생된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호수에 잠겨 있다. 나와 같은 이들과 마음을 나누고 가끔은 시간도 나누면서 한 발, 한 발, 최애에게 다가가고 있다. 일찍 알아채지 못한 우둔한 눈이 안타깝다가도 이제라도 알아 다행이라는 안도가 더 크다. 팬콘이 열흘 앞으로 훌쩍 다가온 시점에서 노르아드레날린에 잠식당한 이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거기에 대한 소회를 이야기 하려 한다. 7월 24일은 최애 이준호의 솔로데뷔 9주년 기념일이었다. 뼛속까지 한국 사람인 나는, 이준호의 솔로 데뷔가 일본에서 먼저 이루어졌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고 일본에서 그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사실 감조차 잡지 못했었다. 기념일 저녁, 나를 덕질의 세계로 인도한 ‘우리집’영상의 제작자이기도 하고, 최근 지면을 통해 기고한 기사에 사진으로 도움을 받은 유투버, 오랜 잊프(그야말로 이준호의 애깅이 시절부터 곁을 지켜온)가 주최하는 온라인 영상회를 시청했다.      



네가 뜨겁던 날들에....     



팬미 이후 열렸던 두 번째 영상회와 이번에 만들어진 세 번째 영상회를 보고 나니 그가 뜨겁던 만큼 팬들도 뜨거웠을 그 시간들이 미치도록 부러웠다. 후회는 후회로만 그쳐야 한다. 후회가 지나쳐 질투가 되거나 억지스러운 땡깡이 되면 진상이다. 미안하면 화를 내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나는 아니다. 누군가의 자랑스러운 말처럼 한국이 비록 이준호 보유국일지라도, 그 때문에 당연히 가져야 할 그 무엇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린 수많은 보물들을 해외로 내보냈지만 우리 안에서 그들의 품격을 높여주지 못한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실수를 만회하려면 지난 시간에 대해 원망하거나 억울해 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갈 때 더 좋은 것으로 채울 궁리를 해야 한다. 무지했던 시간이 이후에 이루어지는 열렬한 응원으로 상쇄되길 기대하는 것도 억지다. 지금의 우리가 오늘의 최애를 만들었다 착각하지 말자. 우리는 긴 시간 동안 천천히 기다리고 함께 걸어온 이들이 지켜낸, 빛나는 순간의 최애를 이제야 발견하고 환호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질투가 용솟음치거든 더 많이 사랑하는 쪽에 에너지를 쓰도록 하자. 바다 건너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시간 동안 최애를 위해 쏟았을 그들의 무한한 사랑과 지극한 관심에 감사하면서.           



누구나

마음속에 별 하나

품고 산다.     

길을 잃어도 같이 누워 쉴 수 있는          


-마음의 별 / 이민정_그리운 이름은 눈물로 써도 소금기가 없다 중-          



특정한 누군가에 대한 지칭이 아닌 내 목표, 내 삶의 방향이 되었던 문학에 대한 애정을 담은 시였는데 오늘 다시 보니 말이 씨가 되었다 싶다. 새로 받은 명함 값을 하느라 주말에 다녀온 촬영은 노장의 투혼을 불사른 공연이었다. 모처럼 나선 길이기도 했고 오가면서 비까지 맞았더니 집에 들어서자마자 콧물이 흘렀다. 마른 휴지가 보이지 않아서 장식장의 서랍을 열었다. 주유하면서 받은 휴대용 휴지를 포함해서 꽤 많은 양의 소량 포장 휴지들이 아무렇게나 담겨있었다. 대부분 노란색 겉모습에 초록색 글씨가 새겨져 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순간 생각했다. 꽤 오랫동안 감사하는 걸 잊었구나. 하다못해 기름 한 번을 넣기 위해 찾아간 주유소에서도 찾아준 손님에게 이렇듯 거리낌 없이 감사를 표현하고 있는데 기운 빠져 지루하기 짝이 없던 내 인생의 내리막길에 즐거움과 새로운 길을 열어준 최애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고 있었다.     



나는 이준호를 사랑한다. 

내 마음에 별로 살고 있는 최애를, 길을 잃어도 같이 누워 쉬고 있다 느껴지는 최애를, 말로 내뱉는 것보다 더 많은 깊이와 의미를 내포하고 부를 수 있는 최애의 이름을, 달라진 듯 보이다가도 여전히 그대로인 최애를, 언제 어느 곳에서나 순전한 내 마음의 기쁨으로 비밀스럽게 존재하는 최애를. 비밀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마치 몰래 저축하는 인생의 저금통처럼 나만의 비상금 같다. 허공에서 허공으로 달아나는 형체 없는 그것의 순간적인 반짝거림, 아마도 꿈이 되어 언제나 내 일상의 일부분에 숨 쉬고 있을 그것, 이 비밀스러운 사랑.

긴 인생을 최애와 함께 하는 동안 이 사랑은 희망이 될 거고, 꿈이 되어, 다시 소중한 비밀로 남겠지. 역순환이 아닌 순환의 자연스러움. 그것이 바로 내가 갖고 싶은 비밀의 얼굴, 드러내고 밝혀져서 확실한 그 어떤 소란스러움보다 더 많은 것들을 담고 있을 애틋함과 그리움, 간절함까지.     



열흘 뒤, 내 몸속에서 솟아날 옥시토신을 위해 그를 만나러 갈 것이다. 내가 그의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나의 최애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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