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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녀 Mar 17. 2022

여름나기

-덕질의 시작


본디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현장이 주로 음악 관련 행사이다 보니 가수들이 건네준 CD나 음원들이 꽤 있다. 덕분에 예전 음악들은 좀 아는 편이지만 요즘 유행하는 음악들을 알 도리가 없다. 한 달에 한 번 멜론 챠트를 훑고 유툽 채널에서 던져주는 음악들을 통해 새 노래를 공급받으면서 간신히 시대흐름을 쫓는다. 꽂히면 음원을 다운 받고 집중해서 듣는다. 장르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음식도 음악처럼 잡식성이었으면 까다롭다 소린 안 들었지 싶다.      


2021년 봄, 준비 중인 책을 위한 인터뷰가 주로 지방에서 이루어진 덕분에 음악을 들을 시간이 많았지만 이준호는 그 목록에 없었다. 본격적으로 쓰기에 돌입한 여름 내내 속도가 나질 않아 뜨겁기는 밖이 더한데도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것은 오히려 속이었다. 쓰다 멈추고 쓰다 멈추는 지지부진한 결과에 지쳐 있었을 때였다. 2020년을 강타한 역주행 어쩌고 하면서 콘텐츠 순위를 떠드는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시대를 앞섰거나 시기를 잘못 만난 콘텐츠들이겠거니 하며 봤던 것 같다.      


‘우리집 준호’ 

연관검색어로 바로 잡힌다 길래 검색해봤다. 진짜였다.

아, 2PM! 그 준호가 이 준호구나~

추억이 몽글몽글 솟아나서 백업 파일 속 음원들을 뒤졌다. 

가장 좋아했던 ‘기다리다 지친다’‘니가 밉다’‘미친거아니야’ 등등

그들의 음원 전부가 다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디 가서 ‘2PM이 뭐예요?’라고 물을 정도는 아니었다. 밤새 ‘우리집 준호’영상을 봤다. 몇 개만 보고 말아야지 했는데 끝이 없었다.      


7월, 우리집을 보다가 암욜맨을 보면서 내가 그들의 과거에 사로잡혀 밤을 새고 있는 동안 2PM 전원이 군백기를 마치고 컴백해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유툽 야행은 자연스럽게 ‘해야해’로 바뀌었다. 예전과 다른 카메라들의 동선이 보였다. 준호 위주로 찍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 ‘스물’ ‘협녀, 칼의 기억’을 분명히 봤었는데 불행하게도 이준호가 기억나지 않았다. 다시 봤다. 필모를 뒤졌다. 생각보다 많았다. 전부 봤다. 처음 보는 이준호도 있었고 봤는데 기억나지 않는 이준호도 있었고 다른 준호라고 알고 있던 이준호가 거기 있었다.      


여름이 그렇게, 이준호로 채워졌다.      


작업의 속도가 느렸던 것이 이준호 때문인지 이준호 덕분에 더딘 작업을 견딜 수 있었는지 확실치 않다. 쓰는 일이 본디 그렇다. 어떤 날은 한 번에 쉼 없이 써지다가도 어떤 날은 한 문장을 나아가기도 버겁다. 볼 것도 많고 알아야 할 것들이 산더미라 밀린 숙제하는 기분인데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기억력도 부실했다. 금방 봤는데 또 가물거리는 탓에 자꾸만 다시보기를 해야 했다. 책도 그랬고 이준호도 그러했다. 책이 마무리 될 때쯤 드라마 출연 소식이 들려왔다. 그 순간에 들었던 생각은... 본방사수각이군...이었다. 미쳤;;;;     


솔로앨범의 음원을 다운받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음악이었다.

음악에 진심인 이준호가 거기 있었다. 내 취향이 아니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흥얼거리고 있었다. 점점... 내게서 더 많은 시간을 빼앗고 즐거워하는 이준호가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여기서 더 가면 위험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에 잡히지도 않는 곳에 있는, 새파랗게 어린 청년을 향한, 이 주접스런 감정은 대체 정체가 무엇인가? 딱히 무엇이라 정의내리기 어려운 마음이라 혼란스러웠다. 살면서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실체 없는 환상에 잠식당한, 홀린 듯 취한 듯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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