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여유, 언어의 유희
방문을 걸어 잠궈 조명은 살짝 켜 둬
은은한 너의 향기 내 기분을 더 들뜨게 해 줘
와인을 따고 한 잔 기울여
붉은 너의 입술에 난 취해
Ah 다홍빛 너의 얼굴이 또 다른 날 깨우네
닿을 듯 말 듯 너의 입술이 내 코를 스치네
조금만 지금을 느껴줘
두근두근 고동쳐 우리 심장소리가
세상 아름다운 음악이야
I love you baby (I can‘t stop)
It's like an airplane
I think I'm in heaven (with a star)
Nothing just you and me
향긋한 언덕 위에 빨간 꽃을 피우고
촉촉한 계곡 안에 부드럽게 날 던지고 싶어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아줘
니 두 다리로 나를 감싸줘
Ah 나무에 붙은 코알라처럼 딱 달라붙어
귀여워 보여도 난폭해 난 지금 화났어
때찌때찌 나를 혼내줘 고분고분 말도 잘 듣지
너의 애기야
계속 만져줘 날 자기야
I love you baby (I can‘t stop)
It's like an airplane
I think I'm in heaven (with a star)
Nothing just you and me
출발 비행기 고도 상승
벨트는 확실히 매 줘
목적지는 나도 몰라
이제부터 많이 흔들릴 거야 좀 참아
야 야 계속 up down 야 야
알잖아 지금 이 기분 이대로
하늘 위 바이킹 타는 기분
I love you baby (I can‘t stop)
It's like an airplane
I think I'm in heaven (with a star)
Nothing just you and me
이준호의 솔로앨범은 2013년 일본에서 발매된 ‘키미노코에’를 시작으로 2014년 한 달 격차로 일본과 한국에서 동시발매 된 ‘Feel'/2015년 'So Good'(일본), ’ONE'(한국)/2016년 ‘DSMN'(일본)/2017년 ’2017 S/S'(일본), 'CANVAS'(한국)/2018년 1월25일(생일)에 맞춰 양국 동시발매로 ‘겨울잠’, ‘想像’(일본)/2019년 ‘TWO'(한국)까지 12개가 있다. 이중 한국에서 발매된 ’ONE'‘TWO'는 베스트 앨범이고 ’겨울잠’은 한국에선 싱글로 일본에선 EP앨범 ‘Winter Sleep’으로 발매되었다. 놀랍게도 12개 앨범 전곡을 작사, 작곡하고 프로듀싱까지 했다.
가사를 옮겨 적은 곡 ‘비행기’는 일본에서 발매된 ‘Winter Sleep’의 수록곡으로 한국에서는 베스트 앨범인 ‘TWO'에 실렸다. 보통 음악을 들을 때 가사에 꽂히는 경우가 대부분인 나는 처음 이 노래를 듣고 순간 귀를 의심했다. 가만, 내가 듣고 있는 게 제대로 듣고 있는 건가? 지금 들리는 가사가 정말 노래 가사인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듣기를 여러 번, 들을수록 더 잘 들리는 가사 때문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섹스에 관한한 이처럼 발랄한 고백을 들어본 적이 없다. 시를 쓴답시고 이런 저런 말들을 뒤섞어 거추장스런 옷을 입힌(엄마의 분을 훔쳐 덕지덕지 바른 사춘기 소녀 같은 글이라고 자괴감에 빠졌던 경험) 나의 글이 생각났다. 화끈하게 솔직하지도 못했고 적당히 아름다운 포장도 못했던 나의 시. 그에 반해 이준호의 가사는 솔직하고 노골적이면서도 질척거리지 않는 명쾌한 표현들과 적당히 귀여운 은유들이 문장을 곱씹게 만들었다. 내친 김에 솔로곡들의 가사를 훑기 시작했다. 놀라웠다. 글을 썼어도 대박 작가가 될 가능성을 점쳐주었을 법한 표현력이었다.
다음 글은 나의 시다.
사랑에 관하여 205
그대의 꽃 같은 입술이 웃네, 벌어지네, 내 입술에 와 닿네.
하릴없이 노니는 낙원이 이보다 더 흡족할 리 없고
세상의 좋은 것들을 다 모아도 이보다 더 충만할 리 없네.
그대의 꿈같은 손길이 오네, 부드럽게 내 몸을 어루만지네.
나는 봄 볕 아래 누운 裸婦, 내 안에 잠자고 있던 情炎이 눈을 뜨네.
살갗은 자잘한 소름으로 돋아 일어나 솜털까지 파르르 떨게 하고
호흡은 끊어질 듯 이어져 실핏줄을 타고 흘러 말초를 자극하고
그대는 한 마리 숭어가 되어 내 안을 자유로이 헤엄쳐 다니네.
사랑하는 이여, 내 안에서 잠드는 이여, 오로지 하나인 사람이여.
고백을 고백으로 만들어주는 이여, 영혼을 영혼으로 살게 하는 이여.
심중에 오롯이 들어 안치고 나보다 더 사랑하는 나의 사람이여.
나를 나누어 가진 나의 절반이여. 사랑하는 나의 사람이여.
지면을 통해 발표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자꾸만 멈칫 거리다 계속 뒤로 번호가 밀려 아직도 미발표작들 틈에 끼어 있는 불쌍한 녀석이다. 표현은 자신감이라고 늘 외치면서도 막상 내 글엔 자신감이 많이 부족한 탓이다. 딱딱하고 논리 정연한 글을 쓸 때는 충만한 자신감이 가감 없는 감정을 드러내거나 감동을 전달하려고 할 때는 움츠러든다. 과하다고 생각하는 지점들에 멈춰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을 겪는 것이다.
이준호의 노래 가사들은 내가 망설이는 그 지점을 통과해서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단거리 선수처럼 죽기 살기로 뛰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달려왔고 긴 시간 호흡을 조절하면서 마지막 단계의 한 발, 또 한 발을 옮기는 마라토너의 뜀박질이다. 때문에 거친 호흡 속에도 안정적인 리듬이 있다. 그것을 나는, 문장의 여유라고, 언어의 유희라고 평하고 싶다. 그는 언어를 적절하고도 아름답게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가수 이준호는 사실 낯설었다. 그는 내게 있어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가수가 아니었다. 화내지 마시라, 그의 음악적 성과와 무관하게 순전히 내 개인적인 판단이니. 나는 일단 노래를 잘하는-이 경우엔 목청이 쩌렁쩌렁한- 가수의 노래를 듣다가 가사도 좋았거나, 가사가 좋아서 듣다가 노래까지 좋아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가사가 잘 들리려면 음악의 속도가 나와 맞아야 한다. 댄스음악 보다는 발라드나 포크송이 익숙해지는 이유다. 또 하나는 그가 한국에서 한창 활동 중일 때 내가 텔레비전과는 담을 쌓고 살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유행과는 다른 시류 속에서 고집스럽게 자기 음악세계를 구축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었고 기껏해야 7080 세대의 인기인들과 소통하는 작가였기 때문에 ‘아이돌’과는 연결점이 전혀 없었다. 생각해보니 방송작가로서의 마지막 시즌에 기회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프로그램에서 하차했고 그 덕분에 지금, 생전 처음으로 지난 일들 중 하나를 기억하면서 후회를 한다.
신은 그에게 가창력 대신 감정의 전달력이 풍부한 목소리를 선물하신 것 같다. 그는 비성과 두성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속삭이다가 단단하게 뭉쳐져 툭 떨어지는 중저음으로 랩을 뱉는다. 흔히 말하는, 목소리를 갖고 노는데 억지스럽거나 불편하지 않게 담백하다. 한 사람의 성대에서 나오는 목소리의 결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야말로 땀과 눈물이 얼룩진 노력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 감히 예측할 수 있다. 춤을 추는 이준호는... 이미 신이니까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내가 몸치라서 그저 놀랍고 신기할 뿐이다.
나는 그를 아이돌이 아닌 배우로 먼저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인가 음악에 대한 그의 진심이 더 감동적이고 그가 쓴 가사를 통해 전달되는 언어들이 세대(30대 초반)의 아이콘처럼 느껴진다. 해서... 세대를 이해하는 공감능력은 작가의 필수 덕목이라 여기며 오늘도 그의 가사를 외운다. (혼자 머쓱해서 웃음;;;) 그의 팬이 되기로 한 이상, 나는 그를 알고자 많은 시간을 그에게만, 그의 재능과 성향, 가치관과 일상을 관통하는 기준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내가 가진 소소한 재능을 그와 공유할 수 있는 지점이 있어 기쁘다. 그에 관해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쓸 것도 많아진다. 요즘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