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녀 Apr 09. 2022

‘팬덤’이라는 이름의 두 얼굴

결국 여기에도 사람들이 있었다.


고양이가 우유접시 핥듯이 솔로 앨범 수록곡들을 듣고 있던 참에 이준호의 음악 얘기를 더 해볼까 하다 멈췄다. 한두 번으로 끝낼 이야기도 아니고 곰삭은 김치처럼 숙성한 맛까지 알 수 있을 만큼 들은 뒤에 해도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생 처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주 겪는 일은 확실히 아닌, 복잡한 이슈가 터져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2022년 1월, 새해가 되었으니 올해는 무엇으로 내 일상을 반짝반짝 빛나게 닦아야 하나 궁리 끝에 제대로 된 팬질, 덕질에 낙점하고 ‘공식 팬 카페’를 검색해봤다.      


이준호 1호 공식 팬 카페 ‘소울준호’     


다른 팬 카페들도 목록에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제나 그렇듯, 1호, 1등, 1회에 꽂히는지라 결정이 빨랐다. 정회원이 되어야 가입인사도 쓸 수 있는 곳이었다. 눈에 보이는 게시판 상의 아무 글에나 25개의 댓글을 달면 등급이 오른다. 하나의 글에 댓글 25개를 시도해 볼 걸;;; 갑자기 든 생각이다.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인 인사 댓글 25개를 달고 나니 정회원이 되었다. 여러 게시판에 각각 궁금했던 일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광장이라 여겨지는 자유게시판은 새로 들어오는 회원들의 인사로 붐볐다. 가입인사를 쓰기 전에 기사와 공지들을 읽었고 적지 않은 정보들을 새롭게 만났다. 아이돌스타로 살아 온 이준호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곳이었다.         


(가입인사 게시글 전략)

그도, 오래도록 그를 사랑하는 분들도,

지치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함께인 당신들처럼

저도 오래 그를 지켜보고 싶어 이곳에 왔습니다. 

당신들처럼 

그의 빛을 받고, 그 빛을 되돌려 보내는 하나로,

함께 하겠습니다.            


내 글에 담긴 진심을 오랜 시간 카페를 지켜온 이들이 읽어주길 바랐다.   

  

‘생일카페’라는 생소한 이름의 이벤트를 보기 위해 일요일 오후의 휴식을 반납했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생일 축하를 위한 ‘일일찻집’(단어가 너무 올드해서 민망하다) 개념의 3일 혹은 1주일 카페였다. 특별할 것 없는 그 행위들이 단지 한 사람만을 위한 집중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같은 사람을 여럿이 좋아하면서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었다니. 각자의 방식에 따른 일방적 사랑이긴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감정의 순도가 높을수록 불특정 타인과의 공유는 불가능하다 여겼던 내게는 꽤나 충격이었다. 서로 얼굴을 모르는 이들이 삼삼오오 앉거나 서서 귀염뽀짝하게 전시된 가지각색 이준호를 감상했다. 딱 봐도 20-30대의 젊은 여성들이 주였고 간혹 나이가 어리거나, 더 높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내 또래는 눈 씻고 봐도 없었다. 그렇다고 민망해하거나 부끄러워할 성격은 아닌지라 당당하게 홍대 인근의 생카 일곱 군데를 다 돌았다. 

이준호로 대동단결이다.     



팬 카페에서 오가는 정보들은 때로 무지하다 못해 무례한 지경의 것들부터 생각지도 못한 고급스러움을 넘나드는 것들까지 다양했다. 어느 곳에나 있을 법한 새 인물들의 파격이 가끔씩 드러났고 그에 상응하는 오랜 세력들의 인내도 보였다. 공식 카페를 시작으로 최애를 인기순위에 올리는 투표활동을 하는 곳에도 진출하고 그 시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 한 순간도 관심이 없었던 트위터에도 계정을 만들었다. SNS팔로우와 기획사 홈페이지 팬클럽 회원등록은 기본중의 기본이었다. 나를 비롯한 수많은 늦덕들이 전력질주 끝에 막차에 올라탄 승객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앉을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조직들은 우연이든, 계획이든 그 시작을 공유한다. 시작을 함께 했던 이들이 있고 그 중심에 분명히 리더가 있었다. 얼개가 갖추어진 조직 안으로 흡수 된 사람들은 대부분 보이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 그런데 가끔, 이미 만들어진 틀을 깨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본다. 자기능력의 과신이거나 상대에 대한 평가절하가 만들어내는 결과다. 나는 그곳이 어디든, 무슨 일이든, 쌓인 시간을 믿고 지지하는 쪽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따르는 길, 방법, 가치, 기준으로 함께여야 한다는 것. 잠시의 눈속임이나 개인의 이익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그 중심이 튼튼하게 자리 잡은 조직이 건강한 조직이고 성공하는 조직이라고 믿는다.      


팬덤이 무슨 조직이야? 라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조직생활이 끔찍하게 싫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조직에 몸을 담고 살았던 사람으로서 말한다. 열이고 스물이고 모여서 무엇인가를 하기 시작했다면 당신들은 이미 조직이다. 이준호라는 스타를 사랑하고 아낀다는 이유로 모여든 사람들, 나와 당신,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엮여진 여러 조직과 단체 안에서 각자의 자리를 만들어내느라 고군분투중이다. 개인으로는 더 없이 착하고 매력적인 누군가인데 조직 안에서는 규칙과 기준을 망가뜨리는 사람들, 시작할 때는 누구라도 먼저 나서는 사람이면 괜찮다고 생각했지만(그 때문에 뒷짐 지고 구경만 했으면서) 어느 순간, 갖춰야 할 덕목과 능력이 없다면서 가차 없이 리더를 매도하는 사람들, 때로는 논리가, 때로는 감정이 앞서 수시로 바뀌는 상황판단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사람들, 결국 이곳에도 사람들이 있었다. 



이준호를 바라보는 우리는 어린아이의 순수함과 엄마의 다정함, 아빠의 듬직함을 한 몸에 담고 오로지 이준호를 위해서만 특별한 힘을 내는, 엄청난 슈퍼히어로들이다. 

이준호를 등지고 서로를 마주 대할 때 우리는 편협하고 독선적이면서 비협조적인, 그러면서 평범함을 방패로 내세우는 영리함까지 갖춘, 그저 보통의 인간이다.



기록이 업이라는 이유로 나는 종종 무리에서 떨어져 무리를 관찰한다. 사람의 무리에 섞여 있으니 가타부타 할 일들이 끊임없이 생기기는 해도 가능한 범위 내에서 무관하게 살고 싶다. 다만 한 가지, 그것이 누구의 실수였든, 누구의 고집이었든, 혼자 갈 길이라 결정한 것이 아니라면, 함께여야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그에 걸 맞는 판단과 행동들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그냥 사족 같은, 이런 말이 먹힐 사람들이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하면서 던지는 말이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덕질이라고 예외로 두지 않고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나는 혼자 행복할 작정이니까.        



팬덤 안에서의 얼굴만 보고 섣부른 판단으로 뾰족한 말들을 주고받는다.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내용들에 대해 갑론을박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최애를 향한 과몰입에 현실을 망각한 채 전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에 이른다. 그뿐인가? 최애가 원하는 팬의 모습을 강조하는 이들도 있다. 이준호를 좋아하다 못해 빙의라도? 내 덕질의 기간이 짧아 그런지 팬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이준호를 접하지 못했다. 집에 찾아오지 말라는 포스팅과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는 영상 멘트 정도? 우리 모두는 결국,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갖고 싶은 팬의 얼굴로 최애를 대할 것이다. 선택은 최애의 몫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다양한 방향성상대적인 모습을 이해하는 이들은 개성을 보편성 안에 가두려고 하지 않는다. 쉬운 말로, 내게 최악이었던 상대가 다른 사람에게도 최악은 아니고 내게 최고였던 상대가 다른 사람에게도 최고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니 오늘 우리는 그저 이준호를 사랑하는 일에만 각자의 방식대로!!! 집중!!!!          



이전 04화 비행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