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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녀 Apr 23. 2022

현타, 황홀한 덕질의 잔혹한 결과물


아침 10시, 알람이 울린다. 일어나~ 돈 벌어야지~ 

알람 속의 준호는 더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현실을 일깨운다.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알람은 끄지 않고 계속 떠들게 둔다. 듣기 좋으니까. 아침은 두유와 계란 정도로 가볍게 먹고 출근을 준비한다. 현장은 멀지 않다. 차로 20분 달려가는 곳에 있으니 출퇴근에 딱 적당한 거리감이다. 어렵고 골치 아픈 일이 생길 일도, 곳도 아니다. 현장에서 부딪히는 온갖 사건사고와 상황들에 긴장을 늦추지 못했던 이전의 일들과는 사뭇 달라서 이렇게 편히 일하면서 돈을 받는 게 맞나 싶을 때도 있다. 많은 돈을 받는 것은 아니니 괜찮다고 합리화하는데 1분 정도 걸린다. 배꼽시계가 저녁이야! 외칠 때쯤 퇴근한다. 퇴근길은 출근길과 다르게 도로사정에 따라 엎치락뒤치락 소요시간이 바뀐다. 귀가 후 저녁을 먹고(하루 한 끼라도 잘 챙겨먹자는 생각에 지극정성으로 밥을 해 먹는다), 씻고, 정리할 것도 없지만 나름의 청소를 하고, 그날 쓸 것들과 그것들을 위한 자료들을 정리하면서 밤 시간을 알차게 보낸다. 새벽인지 아침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시간쯤에 잠이 든다.     



이렇게만 쓰고 보니 세상 평화로운 일상이다. 도무지 문제가 생길 것도 없고 생겨서도 안 되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심지어 재미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일상 같다. 그런데 이 평화는 표면일 뿐 실제 시간 속의 나는 어쩐 일인지 차분해지질 못하고 허공에 붕 떠있다. 시간마다 맞춰 놓은 알람에 따라 최애돌셀럽에서 하트를 줍는 나는 저 시간 사이 어디쯤에서 혼자 바쁘다. 트위터와 카페를 들락거리면서 새로운 기사에 첨부된 사진들과 회원들이 공유해준 사진들을 다운 받고 그것들을 차곡차곡 컴퓨터에 저장하는 나도 저 시간 사이 어디쯤에서 정말 바쁘다. 가끔씩 이준호의 인별그램 게시물이 뜨거나 그와 주고받는 개인적인 듯, 개인적이지 않은 ‘버블’이라는 사이렌이 울리면 시공간의 모든 것이 멈춘다. 멈췄다고 여겨지지만 사실은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여전하게 흘러가고 있는 그 시간 속에서 나는 길을 잃고 헤매는 미아가 된다. 이준호와 관련된 온갖 것들이 도착하고, 그것들을 풀어헤쳐 나만의 공간에 정리하는 나는 저 시간 사이 어디쯤에서 나만 아는 암호로 세상을 해독하느라 정신이 없다. 틈만 나면, 아니 억지로 틈을 만들어서라도 전화기에 저장된 준호의 얼굴을 보고 있고, 유툽 영상을 보고 있으며(사실 아직 더 볼 것이 있다는 것도 놀랍다) 심지어 준호의 광고가 자주 나온다는 이유로 특정 방송사 채널을 고정해둔 채로 거의 종일(집에 있을 때)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있다. 텔레비전이 주는 정보들에 유독 둔감한 탓에 집에 텔레비전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보면 혀를 찰 노릇이다. 그뿐인가? 기껏해야 1년에 한 번이거나 혹은 그보다도 더 뜸하게, 배가 등짝에 붙을 지경이 되어서야 마지못해 먹던 라면을, 피자를, 샌드위치를 수시로 먹는다. 1년의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맞춰 한 달 일정을 채우고, 매일매일 시간을 쪼개면서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다양하게 교류하면서 촘촘하게 살아가던 나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이름하여 현. 타.      



첫 번째 타격은 카드대금과 소액결제 요금이다. 근 3개월 동안 별 생각 없이 사들였던 오만가지 물품들은 현실에서 쓸 수 없는(아까워서 쓰지 못하고 모셔두는) 것들이 태반이고 그 마저도 남들에게 샀다고 자랑도 못한 채 혼자만의 공간에 숨겨져 있다. 준호의 인기유지를 위해 밤마다 내질렀던 나의 붉은 하트들은 평생 처음 보는 전화요금으로 고스란히 내 곁에 왔다. 어차피 쓸 판공비 정도에서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한 지출이 생활비를 들어낸 것이었음을 두 눈으로 목도하고 지난 석 달 동안 내가 먹고 마신 것들을 헤아려본다. 코앞에 별다방, 콩다방, 썸다방이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그곳에 가 본 기억이 없다. 수시로 사용하던 글라인더, 드립퍼, 필터들은 먼지가 쌓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일상의 유일한 사치였던 커피를 끊은 모양이다.      



두 번째 타격은 피로감이다. 별로 하는 일도 없다 싶은데 피곤하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잠이 부족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자야 할 시간에 보고 있고, 자야 할 시간에 만들고 있고, 자야 할 시간에 듣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버텨내질 못할 거라고 몸의 이곳저곳에서 경고 신호음이 울린다. 그런데 멈출 수가 없다. 멈춰지지가 않는다.      



세 번째 타격은 현장경험에서 얻어진 괴리감이다. 최애의 공식행사 소식을 접하고 사진을 좀 찍어볼까 싶어 달려갔던 현장, 행사 시작 2시간 전 도착을 목표로 무려 5시간 전에 출발했지만 출근 시간과 맞닿은 도로사정은 그야말로 속이 타들어가는 내 사정 따위에는 일말의 배려도 없었고 덕분에 나는 예상 도착 시간에서 한참 지난 시간에야 현장에 도착했다. 다행히 인파는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고 어찌어찌 사람들 사이에 서 있으면 실물영접은 가능하겠다 싶었지만 사진을 찍기에는 위치가 좋지 않았다. 결국 이리저리 배회하다 출입하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준호가 등장하는 순간, 하필 뒷사람을 배려해 반쯤 앉은 자세를 하고 있던 나는, 하마터면 앞으로 넘어질 뻔 했다. 거센 파도나 세찬 바람에 비견할만한 어떤 힘에 밀렸던 것이다. 잠시의 휘청거림 뒤에 제대로 몸을 세웠지만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듯 떠밀려 행사장 유리벽에 붙은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눈에 띄게 들고 다니지는 않지만 무거운 카메라를 소지하고 있어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영상의 어딘가에 나의 다급한 목소리가 녹음되었을 수도 있겠다. “어머! 어머! 어머!” 처음이라는 어색함과 낯선 경험이 주는 이질감이 극으로 치달아 바로 현장을 벗어났다. 자리를 벗어나면서 오후의 일정도 빠르게 포기했다. 이곳저곳에서 사진들이 올라오고 그와 함께 팬덤들의 무질서에 관한 이야기도 수면에 올랐다. 이해하고 싶지만 이해하기 어려웠다. 괜찮다 하고 싶지만 괜찮지 않았다. 마음이 아무리 급하다 한들, 가깝고 싶다 한들, 쉽게 움켜쥘 수 있는 대상도, 상황도 아니었다. 배려보다 욕심이 앞섰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앞으로 그를 볼 수 있는 곳은 콘서트장이 전부이겠거니 싶다. 그를 향해 달려가면서 자기 앞의 사람들을 밀치는 이들과 같이 있고 싶지 않다. 그 속에 섞여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어느 틈엔가 당연한 행동으로 여기게 될까 두렵기도 하다.      



상상이 착각이 되면 현실이 보이지 않게 된다. 덕질은 상상과 착각 사이의 외줄타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순간, 집중력을 잃는 한 순간에, 추락이다. 행복한 덕질을 꿈꾸면서 스트레스를 안고 갈 이유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것들만 하자. 빠르게 결론을 내고 평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해결책 또한 이준호다. 갖겠다는(가질 수도 없지만) 욕심을 버리고 보는 것으로 만족하면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없다. 새 드라마와 영화 소식을 기다리고 그의 공연을 기다리는 평범한 팬으로 하루를 보낸다. 아, 물론, 시시각각 달라지는 이 마음을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공유하는 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어느 친절한 잊프님이 새 목표를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언젠가, 이준호가 읽게 되기를, 그리하여 그를 향한 내 진심이, 우리의 진심이 전해져 행복해지기를. 사진으로 남기고, 영상으로 남기고, 그림으로 남기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글로 남긴다. 나는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족속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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